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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 기 홍 Jun 15. 2020

일사병. 그리고 짜장면 3

나에게 짜장면이란....

"짜장 곱빼~이~기! " 주방장의 걸쭉한 목소리와 배식구의 나무판을 손으로 탁탁 치는 소리가 들리면 그토록 기다리던 짜장면이 내 앞에 놓인다. 받침도 없이 엄지와 손바닥으로 걸고 한 손으로 나를 향해 들고 오는 아줌마를 보면 내 눈은 이미 동공이 확장되어 마치 대단한 발견을 한 탐험가의 눈동자처럼 커다랗게 흰자가 보일 정도였다.


널찍한 대접 같은 큰 그릇의 검은색의 짜장이

김을 모락모락 올리면 성급히 잘라놓은 나무젓가락을 잠시 내려놓고 그 황홀한 냄새를 맡으며, 목다심과 함께 잠시 동안 짜장면을 내려다본다. 먹는 만큼 사라진다는 안타까움이 시작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하지만 참는 것도 아주 잠깐. 옆의 그 식초병을 들고 짜장과 그릇 안쪽 주위를 정성스럽게

살 뿌려준다. 이유는 주인아저씨가 그렇게

하면 면이 훨씬 맛있고, 쉽게 불지 않아 다 먹을 때까지 맛있다고 해준 말을 이유도 모른 채

그냥 더 맛있고 좋다고 하니 기억하고 따르고 있었다. 그 방법을 아직도 하고 있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적당히 볶아진 양파의 그을림 향과 단내를,

가장 큰 숨을 들이마시며 폐부 깊숙이 들이

마신다. 그게 첫 번째 의식이다. 어른 엄지

손가락 크기의 잘 익은 감자조각 몇 개가

짜장의 넉넉한 코팅에 그 윤기 있는 어깨를 드러내고, 짜장 입은 돼지고기 덩어리는

물컹한 비계의 느끼함도, 붙어있는 살코기의 꼬들함도 모두 숨긴 채, 짜장 속 하나의 구성원으로서, 결코 나대지 않고 겸손하게 

그 질을 높이는 것만으로 소임을 다하려는

듯이 조그만 녹색의 탱글 거리는 완두콩들

사이로 누워있다. 한쪽에서 보이는 연한 베이지색의 찰지고 통통한 면발이 어서어서 비벼달라고 아우성을 치면, 드디어 깊은 짜장의 속을 이리저리 헤쳐가며 첫사랑의 그녀의 볼을 처음 만지는 설렘과 떨림으로 조심스러우면서도

천천히, 귀한 짜장이 튀거나 넘치지 않고 서로를 충분히 품을 수 있을 때까지 섞어준다.


후루룩 하며 입안에 가득 넣고 씹다 보면 되새김질하는 소(牛)의 위(胃)가 되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든다. 이걸 한 번으로 끝내야 하는가. 하는 깊은 아쉬움에 잠시 씹기를 멈추면

가득 고인 짜장의 달고, 짜고, 시큼한 단. 짠. 시의 황홀함이 찾아온다. 우물거리며 씹으면 씹을수록 적당히 아삭이는 양파와, 꼬들 거림과 부드러움이 동시에 느껴지는 돼지고기의 끈적이는 맛. 그리고 퍽퍽하지만 묵직하면서도 담백한 맛을 더 해주는 감자. 그러길 몇 번의 반복 끝에 넘기면 부드럽게 타고 들어가며 혀 끝의 융모에 전달되는 단맛을 남긴다. 이 모두가 합해진 맛과 식감이 식도를

넘다 일부는 콧구멍으로 나오는 그 만족스러운 향기에 또 한 번 어찔 해 진다. 그렇게 일련의

구강 동작을 반복하며 정신없이 먹고 나면 입가에는 커다란 만족감에 미소가 지어지고, 그만큼 짜장이 묻은 입가도 창피하지도, 부끄럽지도 않은, 짜장을 먹으면 남는 화려한 훈장과도 같은 흔적이 되어준다.


이 처럼 그 이후부터는 짜장면을 너무 사랑하게 되었고, 그 날 이후의 모든 약은 거의 짜장면이 되었었다. 어디가 아프면 약이 아니라 짜장면을 먹으면 실제로 나아버렸다. 그러니 먹고 싶으면 일부러 연기를 하는 꾀병을 부린 적도 있었는데, 뜨거운 솥에 수건을 올려 이마를 대고 열감을 만들어서 이마를 수건으로 감싸고 한달음에

엄마가 일하시는 공장으로 달려가 이마를 들이밀기도 한 적도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당연히 엄마가 모르실 리가 없었지만 엄마는 웃으시며 손에 150원을 쥐어주시고 얼른 가라고 하셨다. 하지만 두 번이 끝이었다 비록 어리지만 가난한 것은 알고 있었으니....


나에게 짜장면이란.... 엄마의 웃음 속에 가려진 애환의 음식이다.
엄마가 쥐어 주신 몇 번의 150원의 가치는 엄마의 고된 하루의 노동의 댓가였다.
그러기에 가끔씩 그때의 엄마를 느끼는 먹먹해지는 음식이다.  


요즘도 짜장면을 좋아한다.

성북동 초입에 약 40여 년 된 짜장면 집이 있다.

노 부부가 운영하시다 어느 날부턴가 아들 며느리도 합류한 가게다.

 가게 외양이나 내부 구조, 배치 등이 아직은

옛 모습이 남아있는, 주인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에겐 아늑하게만 느껴진다. 짜장면의 맛은? 40여 년 되었다 말했으니 가늠이 될 것이다.


이 글을 마치면 나는 그 집을 갈 것이다.

양 껏 곱빼기를 시켜서 다 못 먹더라도 한 가득

입에 넣어 볼을 터뜨려 볼 모양으로 먹어 볼 참이다. 입가에 묻어도, 후루룩 소리가 나도, 별도로 나무젓가락을 가지고 가 그렇게 먹어볼 테다. " 엄마 자알 먹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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