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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콩 Feb 03. 2022

집주인이 또 문을 따고 들어왔다.

2년 전 어느 토요일,  대학생 딸아이가 살고 있는 학교 근처 원룸 임대인이 전화를 했다.


"따님이 전화를 안 받네요? 혹시 지금 집에 있을까요"


이사 가자마자 보일러가 말썽이었다. 임대인한테 몇 번 연락해도 별 반응이 없더니 토요일 오후 딸아이가 본가로 오고  있는 사이 전화를 한 것이다.


"아니에요. 지금 여기로  오고 있을 거예요."


"아 그래요? 집에 좀 가보려고요."


딸아이는 월요일쯤 돌아간다는 말을 하려는 사이, '철컥'하는 소리가 났고 이어서 임대인이 말했다.


"아유 불을 켜놓고 갔네요?  깜빡했나 봐요.  제가 꺼 놓을게요."


엥? 불이 켜졌다는 게 무슨 말이야? 혹시 우리 딸 집에?


"네??? 지금 어디신가요? 혹시 집안에 들어가신 건가요?"


"네. 보일러 좀 보러 왔어요."


"아니 말도 없이 남의 집엘 들어가시면 어떡하나요?"


"제가 좀 전에 집에 한번 가본다고 말씀드렸잖아요."


임대인이 1분 전에 딸이 집에 있는가를 묻고 "집에 좀 가보려고요" 했던 말을, 나는  딸이 있는 시간에 가보려고 한다는 의미로 들었는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는 딸아이 집을 방문하려고 문 앞에 와서 딸에게 전화를 했고 받지 않자 나에게 전화를 한 것이다.


"비번은 어떻게 아셨죠?"


"아 스페어 키가 있거든요.  어머니. 보일러는 별 문제 없는데요? 따님이 작동법을 잘 몰랐나. 고장은 아닌 것 같아요"


말문이 막혔다.. 임대인은 스페어 키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지금 보일러가 문제인가... 언젠가 뉴스에서 보았던, 임대인이 집 키를 가지고 드나든다는 이야기가 남의 이야기가 아니었네... 그는 언제든지 필요하면 딸아이가 사는 집에 들어올 수 있었다.


임대인은 내 황당해하는 반응에도 불구하고, 이런 일이 흔하고 대수롭지 않다는 듯 건성으로 흘렸다. 아마도 임대를 놓은 원룸 전 세대의 스페어 키를 가지고 이렇게 관리해온 듯하다. 그러나 이것은 엄연히 주거침입이다.


** 주거침입죄(住居侵入罪):  사람의 주거·간수하는 저택·건조물이나 선박 또는 점유하는 방실(房室)에 침입(주거침입)하는 죄이다.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319조 1항·2항)



큰 집이든 작은집이든,  좋은 집이든 나쁜 집이든, 전세든 월세든,  임차인이 사는 동안은 임차인의 집이다. 아무리 집주인이라도 함부로 드나들 수 없다. 사실 집주인이 스페어 키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문제가 될 수 있다.  


몇 년 전 지인 중개사가 형사 고소된 일이 있었다.

주변 원룸을 관리하고 있었는데 임차인이 월세를 안 내고 연락도 두절되자, 임대인이 저녁때 문을 따고 들어갔다. 그리고는 인근 식당에서 식사 중인 중개사를 불렀다.


급한 호출에 무슨 큰일이 났나 달려가 보니 임대인과 임차인이 험악한 표정으로 대치 중이었다.  중개사는 월세 때문에 언쟁이 있었나 보다 하고  집 안으로 들어가며


"아니 왜  그동안 연락도 안 되신 거예요?  뭐 안 좋은 일이라도 있으셨나요? 그러지 말고 두 분이서 잘 해결하세요"


라는 투의 말을 했는데, 임차인이


"어딜 들어오냐 나가라!"


는 말을 반복했고 경찰을 불렀다.


각각 주거침입죄, 퇴거불응죄로 기소되었다. 문을 따고 들어간 임대인은 주거침입죄, 중개사는 현관에서 신발을 벗을 때 임차인이 나가! 나가! 하던 장면을 폰으로 촬영해서 퇴거불응죄(退去不應罪).


그 후 임대인은 별도로 합의하고도 300만 원의 벌금을 냈지만, 중개사는 현관에서 신발 벗다 경찰이 왔을 땐 뒤로 물러서 있었기 때문에 기소유예 처리되었다.


또 한 번은 어느 가족이 타 지역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는데, 여러 사정으로 짐의 일부를 몇 개월간 원룸에 보관하게 되었다. 어느 날 임차인이 주인한테 전화하여


"오늘 짐 다 뺍니다. 이사 나갈게요"


라고 했고, 임대인과 중개사는 '이제 짐 다 뺐겠지!' 하고 저녁에 둘러보러 가서 벨을 한번 누르니 조용하길래 스페어 키로 문을 열었다. 그런데 안에서 학생이 컴퓨터로 게임을 하고 있다가 화들짝 놀랐다.

곧바로 주거침입죄로 고소되었고 50만 원의 합의금을 제시했지만 상대편에서 200만 원을 요구해서 공갈협박죄로 맞고소하겠다 어쩌고 하다 조용해져서 겨우 마무리된 적도 있었다고 한다.


중개업을 하다 보니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지만, 직접 내 딸이 살고 있는 집의 주인이 스페어 키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못내 당황스러웠다.  물론 관리하는데 필요하여 스페어 키를 따로 소지하는 것은 이해 못 할 것도 아니지만, 사전 동의를 제대로 안 받고 필요에 따라 들락거리는 것은 못내 불쾌하였다. 사실 무섭기까지 하였다. 얼마나 험난한 세상인가...


임대인은 문 앞에서


"집에 있나요? 한번 가보려고요"


라는 투로 말을 할 것이 아니라


"보일러 확인 차 한번 방문해보고 싶은데요? 언제가 괜찮을까요?

혹시 시간이 안 맞으면 제가 가지고 있는 키로 문을 열고 들어가도 될까요? "


라고 분명한 의사 전달을 했어야 한다. 물론 그럼에도 스페어 키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놀라웠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2년이 지난 며칠 전 원룸 임대인이 또 전화를 했다.


"어머니 따님이 지금 집에 있나요?"


"아니요 학원 수업 중일 텐데요."


"아 네  집 좀 가보려고요."


네? 아니 이 말은? 말을 이어가려는 순간 다시 임대인이 말했다.


"아이고 아직 짐을 안 빼셨네요.. 짐을 다 빼야 집이 나가요. 어머니 짐을 빨리 좀 빼주세요"


나는 다시 황당했다. 임대인이 또 집 앞에서 전화를 하고 바로 문을 따고 들어간 것이다.  2년 전 그런 일이 있었을 때 나는 항의를 했고 임대인은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했었다.  그 후 집 내부에 보조 잠금장치를 했었는데 아마도 딸이 보조장치는 잠그지 않고 외출한 모양이었다.


불쾌하다. 그러나 임대인을 주거침입죄로 고발할 생각이 없다. 왜냐하면 임차권등기명령을 접수해놓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코로나 시국이라 비대면 수업 등으로 학교 앞 원투룸이 안 나가고 공실이 많아졌다. 그래서 만기일이 지나도 집이 안 나가 몇 개월을 기다리다가 학원 문제로 거주지를 옮겨야 해서 부득이 임차권등기명령을 막 신청해놓은 상태였다.


이로 인해 내심 임대인한테 미안한 마음이었는데, 그 미안함이 또다시 동의 없이 문을 따고 들어간 임대인의 주거침입 행위로 모두 상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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