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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콩 Jan 28. 2022

밥 먹고 나니 신발이 없어졌다.

지난 토요일에 모처럼 맛집을 찾아  점심을 먹으러 갔다.

맛집답게 손님이 북적북적했다. 1시간쯤 후 맛있게 식사를 하고 나와서 신발 벗어놨던 곳을 보니 신발이 없었다.


어라~  


이쪽저쪽 다 뒤져도 내 신발만 안 보였다.

종업원에게 신발이 없어졌다고 했더니, CCTV가 설치돼 있으니 손님 없는 한가한 시간에 확인해보고 연락 준다고 했다. 어떤 신발인지랑 연락처를 적어놓고 가래서


'검은색 가죽 반부츠'라고 적어 연락처와 함께 남겼다.


그러나 맨발로 올 수 없으니 식당에서 낡은 슬리퍼를 주었다.

겨울이니 패딩 롱코트에 누가 끌고 다녔는지도 모르는 낡은 슬리퍼를 신고 위험하게 운전을 하여 사무실로 복귀하였다. (같이 갔던 친구가, 무좀 걸린 아저씨가 신던 슬리퍼면 어쩔 거냐고 겁을 주었다...)




하.. 구입한 지 한 달밖에 안된 신발이라 아까비.

신발은 자기가 신던 게 아니면 느낌으로 알고 또 여성 부츠라 헷갈리기가 쉽지 않을 텐데 이게 머선 일이고~~


신발 잃어버린 건  평생 처음이었다.

어렸을 때 저녁 늦게 얼큰히 취해 들어오신 아버지가 신발을 짝짝이로 신고 오거나 슬리퍼를 신고 와서 엄마랑 한바탕 하는 걸 구경한 기억은 있다. 아무튼 누군가 잘못 신고 가서 금방 연락 오겠지  했는데 주말이 지나고 한 주가 시작돼도 연락이 없었다.


식당에 전화했더니, CCTV를 확인해보았지만 못 찾겠다고 말끝을 흐렸다.

다시 찾아보겠다며 식당 방문 시간대랑 밥을 먹던 탁자 위치를 묻길래 대답해주고 끊었다.


아 다시 사야 하나. 같은 신발로 살까 다른 신발로 살까..


사람 마음은 참 이상타. 다른 부츠들도 있는데 왠지 잃어버린 부츠가 제일 좋았던 것처럼 느껴져서

다른 신발에 눈이 가지 않았다.  포기 지심이 굳어갈 무렵인 일주일쯤 후에 식당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신발을 찾았어요.

손님이 방문한 12시 30분 이후 계산하고 나간 사람 중 손님 신발이 있는 출입구 왼편 코너에서 부츠를 신은 여성을 발견했는데,,,

그 손님이 만약 현금 결제를 했다면 찾을 수가 없었을 거예요.

그런데 마침 카드 결제를 해서 카드사로 역추적하여 연락처를 알아냈어요."


유레카~

식당에서 신발을 잃어버리는 일은 드문 일이 아닐 텐데 식당에서는 애를 써주었고

끈질긴 역추적으로 신발을 바꿔 신고 갔을 거라 추정되는 여성 연락처를 알아낸 것이다.

여성은 신발을 잘못 신고 온 게 맞다고 순순히 인정하며 다시 가져다주겠다고 했다.


신발이 도착했다는 연통을 받고 퇴근길에 음료수 한 박스를 사들고 방문했다.

식당 종업원에게  거듭 감사를 표하다 보니, 입구 한쪽에 "신발 분실 시 책임지지 않습니다."라는 글씨가 그제야 보였다.




식당에서 신발 관리를 스스로 알아서 하라며 저렇게 경고문까지 붙여놓았을 경우에도

신발을 분실하면  그 책임이 누구한테 있을까?


한국소비자원 분쟁조정위원회는 신발 분실 분쟁 관련 첫 결정문에서 ‘분실 시 책임을 지지 않는다’라는 문구를 부착했더라도 업주의 책임이 더 크다고 밝혔다.


해장국집에서 새로 산 부츠(23만 7000원)를 잃어버린 A 씨가 업주를 상대로 보상을 요구하는 사건이 분쟁위에 접수됐다. 업주는 ‘신발 분실 시 책임지지 않습니다’라는 문구를 게시했고, 비닐봉지를 준비하는 등 자신의 역할을 다 했기에 5만 5000원만 배상하겠다고 주장했다.


조정 결과 식당에는 분실주의 문구가 게시돼 있지만 별도의 신발장이 없었던 점과 손님이 휴대한 신발 등을 관리할 책임이 있다는 점, 신발의 사용일 수를 고려해 15만 7000원(70%)을 배상하라고 결정했다. 다만 비닐봉지가 준비돼 있었지만 자신의 신발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은 A 씨의 책임을 일부(30%) 인정했다.


상법 제152조에는 식당에서 손님이 무언가를 잃어버렸을 때,

고객으로부터 임치 받은 물건의 보관에 관하주의를 게을리하지 아니하였음을 증명하지 아니하면 그 물건의 멸실 또는 훼손으로 인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되어 있다.


즉 손님이 맡긴 물건이 사라지거나 훼손되면 식당 주인이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것이다.

손해배상을 하지 않으려면, 맡긴 물건이 도둑맞지 않도록 노력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고,

노력에는 신발장 앞에 CCTV를 놓는다거개인 사물함을 두고 잠금장치를 한다거나 하는 것들이 포함된다.


결론은 분실 시 책임지지 않는다는 경고 문구만으로는 아무런 법적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기 때문에 문구가 쓰여있어도 손해배상 책임은 남아있다는 것이다.


또 하나 주목할 만한 건, 상법 제152조 2항을 보면 임치 받지 아니한 경우에도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되어있다.  즉 신발처럼 현관 신발장에 벗어두고 들어간다든지 하는 식으로 물건을 맡기지 않았어도,  일단 식당에서 무언가를 잃어버리면 식당 주인에게 어느 정도의 책임은 있다는 것이다.


반면에 헬스장이나 목욕탕에 가면 '귀중품은 카운터에 보관하라'는 문구가 있는데

이것은 신발 분실 시 책임지지 않는다는 문구와는 다른 효력이 있다고 한다.  고가물에 대해서는 고객이 그 종류와 가액을 명시하여 임치 하지 않으면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없기 때문이다.


새해 벽두에 신발을 잃어버리면서, 한해 시작이 왜? 이러면서 좀 찜찜했는데 찾으니 기분이 급 좋아졌다. 어쨌든 누구에게 책임이 있건 없건 내 신발 관리는 내가 잘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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