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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콩 Sep 14. 2022

어머니 제사상에 대봉 좀 놓아드리세요.

아파트 한편에 알뜰장이 열렸다. 둘러보니 마침 대봉이 있길래 배달을 요청했다.


"또 그 할머니 댁? "


두세 번  배달시킨 것 같은데.... 과일가게 사장님 기억력이 좋다.

그 할머니 최여사님과는 15년 전 악연(?)으로 만났다.


"사장 나와 봐!  어떤 년이야!"


키 150이 될까 말까 한 작은 체구에 특유의 뽀글 파마머리를 한 할머니가, 사무실 문을 소리 나게 밀치더니 냅다 욕부터 퍼부었다.


며칠 전 어느 젊은 여성이 아파트 급매물을 물어보더니 집을 살펴보고 계약을 했다. 계약 하루 지난 후에 전화를 하여 실제 거래한 매매가보다 높은 금액으로 계약서를 작성해줄 것을 요청했다.  일명 업(up) 계약서이다. 업계약서는 실제 거래가보다 높은 금액으로 계약서를 이중 작성해서 거래신고와 등기를 하는 것인데, 다주택자가 단기간에 매도할 경우 양도세를 줄이기 위해 행하는 불법행위이다.


당시에는 이런 불법계약이 음성적으로 성행하던 시절이었으나 나는 불법은 안 한다는 철칙을 가진 사람이었다. 더군다나 매도인이 양도세를 내야 하는 상황이라서 매매가를 허위로 올려 쓰는 업계약서는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단칼에 거절했더니 매수인이 적반하장 격으로 '그러면 계약을 해제할 테니 계약금을 배액 배상해달라"라고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렸다. 비일비재한 일이라 당연히 가능할 줄 알고 계약을 하였는데 중개사가 거절하여 계획이 틀어졌으니 당장 배액 배상을 하라고 난리를 치는 것이었다.   


어이가 없어서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 하고 끊은 직후에 이 난봉꾼 할머니가 들이닥친 것이다.

이 할머니는 매수인의 친정어머니였다.


할머니는 계약금을 배액 배상하든지 업계약서를 써주든지 선택을 하라고, 아니면 당장 세무서에 고발하겠다며 세금은 잘 내고 있느냐, 네가 그렇게 법대로 일 잘하고 있느냐. 부동산이 털어서 먼지 안나는 곳 있느냐....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너무 어이가 없어서 대꾸 안 하고 듣다가 차키를 빼들고 서서 말했다.


"가시죠~ 모셔다 드릴게요~ 여기저기 들러 민원 넣으시고 세무서에도 가서 세무조사 의뢰하세요~!"


했더니 눈만 끔뻑거리는 사이, 딸들이 뛰어들어와서  끌고 나갔다.


그리고 며칠 후 갑자기 웬 남자가 박스 하나를 낑낑대며 들고 들어와 내려놓았다.

바로 뒤이어 그 할머니, 최여사님이 쭈뼛쭈뼛 들어오셨다.


"김장 안 했재?  한 김에 좀 더 했어. 먹어. 그리고 농사지을 땅 좀 하나 알아봐 줘."


그렇게 악연이 인연으로 되어서, 조그만 농지도 구입해드리고 딸들 이사 갈 때마다 옮겨드리는 나름 단골 고객이 되었다.


보기엔 진짜 성깔 사나운 시골 할머니였는데, 나름 챙겨둔 돈도 있고  부동산에 대한 안목도 있어서 본인이 지정하는 위치의  물건을  골라드리면 그다지 까다롭지 않게 매입하였고, 중개보수도 항상 두말없이 챙겨주셨다. 


최여사님은 젊어서부터 부동산 투자에 눈을 떠서 샀다 팔았다 하며 돈 좀 모으셨고,  그래서 자식들도 남부럽지 않게 키웠다고 하셨는데... 돈은 좀 벌었는지 모르지만  자식농사는 영 아니었다.


계약 시마다  딸들이 동행하는데  엄마한테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는 법이 없고,  서로 좋은 건 자기가 갖겠다고 자매간에도 한겨울 칼바람 같은 날 선 대화가 대부분이었다.


할아버지가 암에 걸려 투병하실 때도 최여사님 혼자 뒷 수발하다가 장례 치르고 몸져눕기도 하였다.

외모로 보아 연세가 70 중반은  된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계약서 쓸 때 신분증을 보니 겨우 60세.


딸자식들은  한눈에  보기에도 여유 있게 꾸미고 다니는데,  최여사님은  독거노인이라 해도 믿어질 만큼 낡고 해진 옷차림에 제때 염색이나 파마를 안 해 희멀겋고 부스스한 헤어스타일.... 돈은 있으나 자신을 위해 써본 적도,  쓸 줄도 모르는 푸석푸석한 삶을 살고 계셨다.


언젠가 손님이 가져다준 대봉 한 개를 드렸더니 반색하시며 대봉만으로 며칠 끼니 때울 정도로 좋아한다며 맛있게 드셨다. 그간 다른 음식들은 챙겨드려도 깔끔한 성격답게 거절하시더니 대봉만은 주머니에 곱게 담아가셨다.


"우리 딸년들도 내가 유일하게 대봉을 좋아하고 잘 먹는 걸 알아.  근데 그걸 알면서도, 집 사달라, 돈 달라 한 적은 있어도 여태 대봉 한 개 사다준 적은 없어  못된 년들이재? ㅎㅎ"


그러던 어느 날 최여사님이 저녁 늦게 전화하셔서


"아파트 옆 주택가에 오래된 구옥이 비어있는 것 같던데, 그거 월세로 좀 알아봐 줘."


하시길래 좋은 집 놔두고 웬 구옥살이냐 했더니


딸들이 얼마 되지도 않은 재산 가지고 매번 투닥거리고 싸워대는 거 스트레스받아서 바람도 쇨 겸 별장처럼 왔다 갔다 하고 싶다고 했다.  사실 최여사님은 그즈음 명절 때 자식들이 종중 땅 관련해서 크게 한판 싸우는 통에 하나 있는 아들이 짐을 싸서 가출해버린 사건이 있었다.


젊어서 악착같이 재산을 끌어모으면서도 자신을 위해서는 한 푼 쓰는 것도 아까워하던 최여사님은, 늘그막에 자식들이 그 재산으로 남보다 못한 사이로 변해가는 것이 속상하다는 말을 자주 했다. 그래서 이 꼴 저 꼴 안 보고 혼자 있고 싶다며 버려진 구옥을 대충 수리해서 입주했다.

예전의 빳빳한 기상은 온데간데없고 갈수록 야위고 기가 꺾여 보이는 모습이 안쓰러워서, 탐스런 대봉이 눈에 띌 때마다 배달을 해드렸다. 


처음에는 별장처럼 들르신다더니, 어느 날부터인가 아예 그곳에서 혼자 기거하시는 듯했다.  최여사님은  병들어 먼저 가신 할아버지에다 하나 있는 아들까지 집을 나가 소식이 끊기니 정신적인 충격이 컸는지 연락을 주고받는 횟수도 줄고 발길도 뜸해지셨다.


그러다  또 가을이 되어 마침 아파트 장터에 놓인 대봉을 보고 생각나서 배달을 시킨 것인데, 그날 저녁 둘째 딸로부터 연락이 왔다.


"우리 엄마가 중개사님 보고 가고 싶으셨나 보네...

내일이  발인이에요. 잠깐 엄마 집에 들렀다가 대봉이 문 앞에 놓여있길래....."


최여사님은  딸들하고도 연락을 끊고 집 안에만 틀어박혀 계셨는데, 처음엔 걱정되어 한두 번 들여다보던 딸들도 결국 발길이 끊어졌다. 그러다 어느 날 어머니 생신 때가 되어 한번 찾아가 보았더니......


가진 것은 남부럽지 않았으나 결코 행복하지도 평안하지도 않았던 최여사님의 건조한 인생이 가슴을 후벼 팠다.


나라도 한번 들여다볼걸....

잘 계시나 궁금해질 때 나라도 한번 들여다볼걸....

대봉도 진즉 사서 들고 나라도 한번 들여다볼걸.....

돈밖에 모르는 독한 딸년들 사이에서 어찌 사나

가서 험담이라도 들어드릴걸...


그나마 가시는 길 알리려고 마침 대봉이 눈에 띄었나 싶어 마지막 인사를 드리러 갔다. 심장에 짠 소금이 뿌려진 듯 쓰라려서 일어서 나오는데 둘째 딸이 졸졸  따라 나오길래..


어머니 기일에는 잊지 말고  대봉 좀 사서 올려드리세요.


했더니 눈만 껌뻑 껌뻑했다..


부동산을 십수 년 하다 보니 가장 행복한 사람이 돈 많은 사람이 아니고,

가장 불행한 사람이 돈 없는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돈이 있어서  화목이 깨진 경우가 더 많았고, 끊이지 않는 분쟁의 원인은 늘 돈이었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절대 불변의 진리!   

왜 다 가진 사람은 없는 걸까?


돈을 가졌으면 건강을 잃기도 하고 돈도 건강도 가졌으면 삶이 불행하기도 하고...

다 가지면 좋겠지만 그게 불가능한 일이라면 돈보다는 죽는 순간까지 외롭지 않은 걸 선택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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