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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콩 Sep 22. 2020

임대인의 마음을 움직인 문자메시지

임대아파트 투자자와 쫓겨나는 임차인

" 어떡해요...우리 쫓겨나요. 한달 후에 집을 비우래요!"

2004년 10월 어느날, 60대 초반의 임차인이 뛰어 들어오며 소리쳤다.
당시 인근에는 민간 임대아파트 단지가 있었는데, 매매나 임대는 불법이었지만 공공연하게 거래가 성행했다. 소형 임대아파트를 여러채씩 사두었다가 건설사 보증금보다 많은 금액으로 전세나 월세를 놓는 투자자들이 많았다.

당시 신출내기 중개사였던 나도, 여러채를 소유하고 있는 분의 한채에 월세계약을 하게 되었다.  안전한 일반아파트를 권했는데 전월세 금액이 현저히 싸니 돈없는 임차인은 그 아파트만 고집했다. 병약한 8순 노모를 모시고 사는  60대부부였는데 두배쯤 비싼 일반아파트는 엄두가 안난다고 했다. 어쩔수없이 보증금 1500만원의 저렴한 월세로 유도해 계약을 체결하였다. 건설사에 입금돼 있던 보증금보다는 적은 금액이라 나름 안전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이후 건설사의 임대료를 장기연체하여 계약해지 통보를 받는 세대가 대거 발생했다. 내가 계약해준 106동 404호에도 계약해지 통지서가 날아들었다. 사색이 된 임차인이 통지서를 들고 뛰어 들어왔는데, 알아보니 그 임대인이 소유하고 있던 다른 세대들도 똑같은 상황이라고 했다. 이미 명도되어 한푼도 못받고 쫓겨난 세대도 있었는데, 임대인의 거주지까지 찾아가 보았는데도 이미 다른곳으로 이사간 뒤였고 전화는 받지 않는다고 했다.

집주인도 도망가버렸다는데 이제 어떡하냐고~
한달 후까지 집을 비우라는데 우리 어디로 가냐고...

임차인은 끝없는 한숨에 눈물바람을 했다. 계약시에 내가 만류하였던 이유를 잘 알고 있기에 '중개사님 말 안들은 자기 잘못이 크지만 제발좀 도와달라'고 사정을 했다.


 알면서도 악수를 두는 경우가 있다.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돈이 없으니 리스크가 있음을 알면서도 선택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 필연적인 선택 때문에 다시 빈곤의 터널로 빨려 들어가기도 하는 것이다.    

계약서를 확인해보니 명의자는 여자분이었는데, 임대계약서, 인감증명서 위임장을 들고 온 남편과 계약을 하였다. 당시 여자분과 전화통화하여 위임사실을 확인하였던 내용이 기재돼 있었다.  통화는 했지만 위임장으로 대신하였기에 실제로 얼굴을 본 적은 없었다.

아무튼 당시 임대아파트에 대한 투자가치 하락으로 소위 마이너스 P가 형성되자 투자자들은 손익계산을 통해
임대료 납부를 중지하였고, 장기연체로 인해 보증금에 대한 압류 및 임대계약 해지가 진행된 것이다.

그들이야 전전세를 놓은 상태이니 계약해지가 되어도 손해볼게 없었지만, 임대아파트 불법전대로 거주하고 있다가 보호받지 못하고 쫓겨나야 하는 불쌍한 임차인들은 어떡하란 말인가...

어떤 임차인은 길길이 날뛰고 어떤 임차인은 임대인을 찾아 사방팔방을 헤매고...그러다가 결국은 체념해갔다. 그렇게 다들 현실을 받아들이며 피할 수 없는 일상으로 돌아갔는데,,,,오로지 나만은 그 사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신출내기인데다 이론으로만 알고 있었던 임대아파트 실상,  잠적한 임대인, 그리고 쫓겨나는 임차인..뇌세포가 산산조각 나는 느낌인데 전쟁처럼 명도일은 다가오고 있었다.

왜 그때 더 강하게 만류하지 못했을까...
왜 임대인은 이 상황을 책임지고 해결하지 않는 것인가..

초보 중개사의 모든 것은 의문이었고 쓰라린 후회였다. 임차인이 한푼도 받지 못하고 쫓겨난다면  평생 자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렇게 잠못 들며 뜬눈으로 지새던 어느 아침..창밖의 빗줄기를 바라보던 나는 불현듯 얼굴도 본적없는 임대인이 궁금해졌다.

그래서 보내게 된 첫 문자메시지..

-안녕하세요.  106동 404호 계약한 OO부동산대표 OOO입니다.
비가 오네요. 가뭄을 해갈하는 단비입니다.
어디에 계시든지 건강하시고 힘내세요~

다음날도 또 다음날도 눈을 뜨면 제일 먼저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 어제 뉴스에서 본 서울 아파트 화재소식.
갑자기 변을 당한 분들은 얼마나 놀라고  황당했을까요?
살다보면 참 예측하기 어려운게 삶이지만, 8순 노모를  봉양하는 60대 세입자가 이 어려움을 겪고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요?

- 어젯밤 잘 주무셨나요?
저는  요새 잠을 잘 못자지만 사모님이나 세입자분들에겐 부디 편안한 밤이었길 바랍니다. 힘내세요~

- 낙엽이 떨어지기 시작했어요. 올해는 추위가 빨리 시작된다죠?   
없는 분들에게 가장 힘든 계절이 겨울이랍니다.
조금 힘드시더라도  세입자분들에게 희망을 주세요...

- 사모님도 얼마나 힘드실까요..그렇지만 다른 사람 가슴에 한을 남기는 일은 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순리대로 행하시면  다시 좋은 날을 맞게 되시리라 믿습니다. 아침저녁으로 많이 쌀쌀해요 독감주사 꼭 맞으시고 건강 잘 챙기시길요...

등등.. 이 메시지가 전달이나 될까...전화번호가 바뀐건 아닐까...
속절없지만 아무것도 안할 순 없어서 습관처럼 문자메시지를 발송했다. 당시에는 2G폰이어서 카톡도 없고 상대방이 문자를 읽었는지 말았는지 확인할 방도도 없었다. 다만 힘없는 초보중개사인 내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이었을 뿐이다.

2주쯤 지났을까....

그날도 막 문자메시지를 보내자마자 전화벨이 울렸다. 깜짝 놀라 전화기를 떨어트릴 정도였다. 심호흡을 한 후 숨죽이며 받은 전화기 속의 목소리..

" 언제 가면 되겠습니까? "

전화기 속의 여자가 물었다.  세입자들을 길거리로 나앉게 만든 뒤 연락끊고 잠적했던 임대인이었다. 너무 놀라 아무말도 못하는 나에게 그녀는 다시 혼잣말처럼 되뇌였다..

"오라는 날짜에 갈게요! 대신에 비밀로 해주세요.
비밀을 지켜준다면 조용히 가서 그 세입자 보증금만은 돌려드릴게요.."

꿈인가 생시인가..
지성이면 감천이라는게 이런거구나..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세입자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둘만의 비밀을 유지하기로 했다. 그러나 약속한 날이 다가올수록 나는 다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임대인이 정말 나타날까? 정말 보증금을 마련해올까? 경제적 위기에 처해서 다른 임차인들한테는 한푼도 못주고 잠적했다는 임대인이 이 한사람을 위해서 돈을 가져올까? 어차피 많은 것을 포기했다면 굳이 그럴 이유가 없지 않을까? 세입자는 기대에 부풀어 있는데 나타나지 않으면 그 실망감을 어떻게 감당할까...
예민한 성격탓에  거의 밥을 먹지 못했다.

드디어 약속한 날이 되었고 이삿짐을 쌓아놓은 방한구석에서 우린 초조히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후  선그라스에 모자를 뒤집어쓰고 나타난 중년여성..
우리는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고 조용히 봉투만 주고받았다.
정산이 끝난 후 그녀는 돌아서 나가려다 말고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어떻게 매일 문자메시지를 보낼 생각을 하셨어요?
내가 아침에 폰이 올릴 때마다 얼마나 괴로웠다구요,....

허탈한 미소를 끝으로 그녀는 떠나갔고 나는 세입자가 울먹이며 쥐어준 음료수만 만지작거렸다.

그리고 나는 그녀를 잊었고 10여년이 흘렀다. 지금도 가끔 그때 그 세입자가 안부전화를 걸어오기는 하지만 다시는 생각하고싶지 않은 아찔한 추억일 뿐이다.

집값상승으로 인생역전을 노리는 투자자들은 그뒤로도 끊임없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그들에게는 단지 돈버는 수단일 뿐이지만 그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경기리스크와 쫓겨나는 세입자들... 정부는 23번째 초강력대책을 통해 갭투자를 차단하고 집값을 안정시키겠다고 선포했지만, 여기에도 여전히 그늘은 있다. 갭투자자들의 집에 전세로 들어가있던 임차인들은 집값이 하락하여 투자자들이 손을 놓아버리면 어떻게 될까...   

16년 전의 나는 운이 좋았지만 이제는 운에 기대어 중개업을 하고 싶지도 않고,
이 척박한 시대에  또다시 문자메시지 따위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자신이 없다.

어느 매도인이 집 팔아줘서 고맙다고 택배로 보내온 홍삼파우치에 빨대를 꽂으며 나는 중얼거린다..

집 보다 중요한건 사람이야~
임대인이고 임차인이고 상관없이 중요한건 사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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