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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콩 Sep 28. 2020

신혼부부가 손잡고 산으로 간 까닭은..

20여 년 전 이맘때..


결혼한 지 한 달쯤  지난 어느날,  친정에서 선산에 묘지 이장을 하는 작업이 있었다.  결혼 후  일가친척이 처음으로  다 모이는 행사라, 새신랑 새신부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인사드리러 갔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5형제 중 장남이신데,
둘째 작은아버지부터~ 다섯째 작은아버지까지 줄줄이 모여 계셨다.  일가친척 30여분이 모였는데, 단연코 최대의 관심사는  새신랑이었다,

셋째 작은아버지께서 새신랑을 부르셨다.

" 어이 이서방 자네 일루 오게~ "

군기 바짝 든 신랑은 조르륵~ 달려갔고, 어르신들이 권하는 자리에 덥석 앉아 주거니 받거니 했다.

때는 입이 쩍 벌어진 밤송이가 눈짓만 해도 툭 툭 떨어지는 무르익은 가을인데다, 이름 모를 풀꽃들이 많이 피어 있어서 여기저기 풍광이 예술이었다.

청명한 하늘도 보고 열매 주렁주렁 달고 있는 나무도  보고 그저 피어났다는 사실만으로도 눈길 가게 예쁜 꽃도 보고,
그러다 가끔 한 번씩 새신랑 쪽도 쳐다봤는데....

원래 예의는 바르나 숫기는  없는 사람이
어르신들과 주거니 받거니 화기애애하게 잘 어울리는 모습이 대견했다.


그러다 나랑 눈이 마주치면 평소 안 하던 윙크도 하고 자꾸 움찔움찔 몸짓도 하길래


' 아이고~취했나? 애교?'


하며  낄낄 웃고 고개 돌렸다.


그러다 생각 나 다시 쳐다보면  고운 한복 입고 앉은 남편이 여전히 내쪽을 보면서 자꾸 눈짓도 하고 까딱까딱 손짓도 했다.


' 그냥 어른들이랑 어울리지 멀 그렇게 쳐다보나~
내가 그렇게 좋은가~ ㅋ'  

그런데 급기야  남편이 나한테로  뛰어오더니,
갑자기 내 손을 잡아끌었다.

왜....??

남편은 그저 알 수 없는 미소를 띤 채, 내 손을 잡고 앞서 걸었다. 그런데 가만 보니 길쪽이나 산 아래로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수풀 우거진 산 위쪽으로 끌고 가는 게 아닌가?

ㅡ 왜 그래 어디 가는데...  
ㅡ 그냥 와봐...

머야  취했나?

색동 한복 곱게 차려입은 새신랑이 새색시 손을 잡고 자꾸 수풀을 헤치고 우거진 산속으로 들어가니, 당연히 사람들 관심이 따라왔다.

ㅡ 니네 어디 가냐!  새신랑이 급한 거 아녀?

ㅡ 집으로 가지.  산으로까지 들어가냐~~

우하하하~~

짓궂은 어른들은 이때다 하고 온갖 농을 주고받으며 왁자하게 웃어제꼈다. 단풍 맞을 준비에 한창이던 가을산이 찬란하게 흔들렸다.

ㅡ 아이 창피해 진짜... 왜 자꾸 산속으로 들어가.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보잖아!

ㅡ 잔소리 말고 따라와~


ㅡ 혹시  일 보려면 혼자 다녀와. 남자가 뭐 어때.


화려한 한복 때문에 도드라지는 우리 걸음걸음만 쫓아오는 사람들 눈치가 보여서 손을 뿌리치고 싶은데.... 그럴수록 남편이 손목에 힘을 주어 잡아끄니  끌려 올라갈밖에...


아.. 진짜 이상하네? 왜 이래 진짜~~


갖은 농담을 하며 키득거리는 시선을 피해 키 큰 수풀을 헤치며 한참을 올라가  어느 요새같은  곳에 도착하자,
남편이 그제야 주변을 한 번 둘러보고 손을 놓더니  갑자기 주섬주섬 허리춤을 풀고 바지를 밑으로 확 내렸다.

으악~~

이게 대체 뭔 짓이야!

외마디 비명과 함께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확 돌아서 나오려는데, 남편이 잽싸게 팔을 낚아챘다.

ㅡ 지금 뭐 하는 거야~!  빨리  바지 안 올려?

그런데... 남편의 목소리가 의외로 차분다.

ㅡ 가시 좀 빼줘...... 아..

가시?
그제야  손을 떼고 보니 눈앞에 덩그란 남편 엉덩이... 여기저기 빨간 점.... 간혹씩 핏물 자국.




사건은..... 셋째 작은아버지께서   
"어이 이서방 자네 일루 오게~"

하고  손짓하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돌아가신 장인어른 얼굴은 못 뵈었지만 하늘 같은 어른이 부르시니 군기 바짝 든 새신랑은 총총걸음으로 달려갔는데...
셋째 작은아버지께서  "이서방 자네 여기 앉게!" 하면서 팔을 잡아끌어  당신 바로 옆자리에 털썩 주저앉히셨다. 
순간 바닥에 떨어져 있던 입 쩍 벌린 싱싱한(?) 밤송이가 엉덩이에  콕!!

콕콕콕... 코코 코콕

차마 소리는 못 지르고  반사적으로 다시 벌떡 몸을  일으키자


"아따 편하게 앉으라니까 ~ 괜찮아 이 사람아 편히 앉아 뭐 이런 데까지 와서 격식을 차리나~"


 하고 다시  어깨를 꾸욱 눌러 앉히시는 셋째 작은아버지.  덕분에 찔린 데 또 찔리고 안 찔린 데도 마저 찔리고..

일어서려면 붙잡아 주저앉히고 다시 주저앉히고 하는 바람에  순딩이 새신랑은 다시 일어서지 못하고, 그렇게 말 그대로 진짜  " 가시방석"에
2시간가량을 눌러앉아 있었던 것이다.

워낙이 말 많으신 어르신들이 산 좋고 물 좋은 곳에서 술까지 들이켜시니  정치 이야기부터 경제 이야기 등 온갖 나라 걱정 다 하시다가,  집안의 여자 다스리는 법 등등
끝없이 설교를 하시다가...


셋째 작은아버지가 드디어

 " 소변 좀 보고 옴세"  하고 일어나시길래,  이때다 하고 엉덩이를 세우니  그 옆에 앉아 있던  넷째가...

" 어딜 가나 이 사람아~  내 술도 한잔 받게~"

하고 눌러 앉히고,
넷째가 잠깐 누가 불러 일어서
그다음엔 다섯째가...
다섯째는 좀 덜  어려워서  " 잠깐 좀~ " 하고 일어서려니
한쪽에서 졸고 계시던  서열 1위 둘째가 오셔서 소주잔 내밀며
" 새신랑 잔 한번 받아보세~~~"
그렇게 2시간..

속없는 마누라는 아무리 눈짓을 하고 손짓을 해도

그 간절한 SOS를 못 알아채고 그냥 웃음으로 때우고 말더란다.

이런 바보 멍청이!!!!!!!

그래서 그 풍광 좋고 아름드리 수풀 우거진 깊은 산속에서 나는 남편 엉덩이에 코를 바짝 갖다 대고 밤송이 가시를 뽑아내느라 낑낑대야 했다.

혹시라도 깊이 박혀 못 빼낸 가시가 있을까봐 눈을 바짝 대고 샅샅이 뒤진 후에 다시 의관을 정제하고
어른들 계신 곳으로 내려가니,  우리가 보이자마자
안주거리 삼아 한바탕 웃어대고 손뼉을 쳐대고  난리가  났다.
어이도 없고  둘째부터 다섯째~가 밉기까지 한데,
새신랑이 민망스러우니 절대 말하지 말라 해서
그냥  어설픈 웃음으로 때웠다.

딱 요맘때 일이라 추석명절 때 성묘를 가게 되면 그 옛날 생각이 절로 떠오르는데,
아마도 지금 똑같은 상황이어도 남편은 가시에 찔렸다고  벌떡 일어서 나오진 못할 것이다.


그때 온갖 잔소리 하며 눌러 앉히시던 둘째~~ 넷째까지도 모두 그 아름다운 산에 묻히시고  
색동 한복 입고 산을 누비던  그때 그 새신랑 새신부는 이제 무르익은 밤송이 같은 시기를 맞아서
나무 한 그루를 보아도, 돌멩이 하나를 보아도 옛 생각에 접어드는 나이가 되었다.


그 시절의 밤나무, 이름 모를 꽃들은 다시 피고지기를 반복하는데, 들판을 가득 채웠던 웃음소리들은 이제 다시 들을 수가 없다

'오백 년 도읍지를 필마로 도라드니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듸없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인가 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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