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한 지 한 달쯤 지난 어느날, 친정에서 선산에 묘지 이장을 하는 작업이 있었다. 결혼 후 일가친척이 처음으로 다 모이는 행사라, 새신랑 새신부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인사드리러 갔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5형제 중 장남이신데, 둘째 작은아버지부터~ 다섯째 작은아버지까지 줄줄이 모여 계셨다. 일가친척 30여분이 모였는데, 단연코 최대의 관심사는 새신랑이었다,
셋째 작은아버지께서 새신랑을 부르셨다.
" 어이 이서방 자네 일루 오게~ "
군기 바짝 든 신랑은 조르륵~ 달려갔고, 어르신들이 권하는 자리에 덥석 앉아 주거니 받거니 했다.
때는 입이 쩍 벌어진 밤송이가 눈짓만 해도 툭 툭 떨어지는 무르익은 가을인데다, 이름 모를 풀꽃들이 많이 피어 있어서 여기저기 풍광이 예술이었다.
청명한 하늘도 보고 열매 주렁주렁 달고 있는 나무도 보고 그저 피어났다는 사실만으로도 눈길가게 예쁜 꽃도 보고, 그러다 가끔 한 번씩 새신랑 쪽도 쳐다봤는데....
원래 예의는 바르나 숫기는 없는 사람이 어르신들과 주거니 받거니 화기애애하게 잘 어울리는모습이 대견했다.
그러다 나랑 눈이 마주치면 평소 안 하던 윙크도 하고 자꾸 움찔움찔 몸짓도 하길래
' 아이고~취했나? 웬 애교?'
하며 낄낄 웃고 고개 돌렸다.
그러다 생각 나 다시 쳐다보면 고운 한복 입고 앉은 남편이 여전히 내쪽을 보면서 자꾸 눈짓도 하고 까딱까딱 손짓도 했다.
' 그냥 어른들이랑 어울리지 멀 그렇게 쳐다보나~ 내가 그렇게 좋은가~ ㅋ'
그런데 급기야 남편이 나한테로 뛰어오더니, 갑자기 내 손을 잡아끌었다.
왜....??
남편은 그저 알 수 없는 미소를 띤 채, 내 손을 잡고 앞서 걸었다. 그런데 가만 보니 길쪽이나 산 아래로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수풀 우거진 산 위쪽으로 끌고 가는 게 아닌가?
ㅡ 왜 그래 어디 가는데... ㅡ 그냥 와봐...
머야 취했나?
색동 한복 곱게 차려입은 새신랑이 새색시 손을 잡고 자꾸 수풀을 헤치고 우거진 산속으로 들어가니, 당연히 사람들 관심이 따라왔다.
ㅡ 니네 어디가냐! 새신랑이 급한 거 아녀?
ㅡ 집으로 가지. 뭘 산으로까지 들어가냐~~
우하하하~~
짓궂은 어른들은 이때다 하고 온갖 농을 주고받으며 왁자하게 웃어제꼈다. 단풍 맞을 준비에 한창이던 가을산이 찬란하게 흔들렸다.
ㅡ 아이 창피해 진짜... 왜 자꾸 산속으로 들어가.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보잖아!
ㅡ 잔소리 말고 따라와~
ㅡ 혹시 일 보려면 혼자 다녀와. 남자가 뭐 어때.
화려한 한복 때문에 도드라지는 우리 걸음걸음만 쫓아오는 사람들 눈치가 보여서 손을 뿌리치고 싶은데.... 그럴수록 남편이손목에 힘을 주어 잡아끄니 끌려 올라갈밖에...
아.. 진짜 이상하네? 왜 이래 진짜~~
갖은 농담을 하며 키득거리는 시선을 피해 키 큰 수풀을 헤치며 한참을 올라가 어느 요새같은 곳에 도착하자, 남편이 그제야 주변을 한번 둘러보고 손을 놓더니 갑자기 주섬주섬 허리춤을 풀고 바지를 밑으로 확 까내렸다.
으악~~
이게 대체 뭔 짓이야!
외마디 비명과 함께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확 돌아서 나오려는데, 남편이 잽싸게 팔을 낚아챘다.
ㅡ 지금 뭐 하는 거야~! 빨리 바지 안 올려?
그런데... 남편의 목소리가 의외로 차분했다.
ㅡ 가시 좀 빼줘...... 아..
가시? 그제야 손을 떼고 보니 눈앞에 덩그란 남편 엉덩이... 여기저기 빨간 점.... 간혹씩 핏물 자국.
사건은..... 셋째 작은아버지께서 "어이 이서방 자네 일루 오게~"
하고 손짓하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돌아가신 장인어른 얼굴은 못뵈었지만 하늘 같은 어른이 부르시니 군기 바짝 든 새신랑은총총걸음으로 달려갔는데... 셋째 작은아버지께서 "이서방 자네 여기 앉게!" 하면서 팔을 잡아끌어 당신 바로 옆자리에 털썩 주저앉히셨다. 순간 바닥에 떨어져 있던 입 쩍 벌린 싱싱한(?) 밤송이가 엉덩이에 콕!!
콕콕콕... 코코 코콕
차마 소리는 못 지르고 반사적으로 다시 벌떡 몸을 일으키자
"아따 편하게 앉으라니까 ~ 괜찮아 이 사람아 편히 앉아뭐 이런 데까지 와서 격식을 차리나~"
하고 다시 어깨를 꾸욱 눌러 앉히시는 셋째 작은아버지. 덕분에 찔린데 또 찔리고 안 찔린데도 마저 찔리고..
일어서려면 붙잡아 주저앉히고 다시 주저앉히고 하는 바람에 순딩이 새신랑은 다시 일어서지 못하고, 그렇게 말 그대로 진짜 " 가시방석"에 2시간가량을 눌러앉아 있었던 것이다.
워낙이 말많으신 어르신들이 산 좋고 물 좋은 곳에서 술까지 들이켜시니 정치 이야기부터 경제 이야기 등 온갖 나라걱정 다 하시다가, 집안의 여자 다스리는 법 등등 끝없이 설교를 하시다가...
셋째작은아버지가 드디어
" 나 소변 좀 보고 옴세" 하고 일어나시길래, 이때다 하고 엉덩이를 세우니 그 옆에 앉아있던 넷째가...
" 어딜 가나 이 사람아~ 내 술도 한잔 받게~"
하고 꾹 눌러앉히고, 넷째가 잠깐 누가 불러 일어서면 그다음엔 다섯째가... 다섯째는 좀 덜 어려워서 " 잠깐 좀~ " 하고 일어서려니 한쪽에서 졸고계시던 서열 1위 둘째가 오셔서 소주잔 내밀며 " 새신랑 잔 한번 받아보세~~~" 그렇게 2시간..
속없는 마누라는 아무리 눈짓을 하고 손짓을 해도
그 간절한 SOS를 못 알아채고 그냥 웃음으로 때우고 말더란다.
이런 바보 멍청이!!!!!!!
그래서 그 풍광 좋고 아름드리 수풀 우거진 깊은 산속에서 나는 남편 엉덩이에 코를 바짝 갖다 대고 밤송이 가시를 뽑아내느라 낑낑대야 했다.
혹시라도 깊이 박혀 못 빼낸 가시가 있을까봐 눈을 바짝 대고 샅샅이 뒤진 후에 다시 의관을 정제하고 어른들 계신 곳으로 내려가니, 우리가 보이자마자 안주거리 삼아 한바탕 웃어대고 손뼉을 쳐대고 난리가 났다. 어이도 없고 둘째부터 다섯째~가 밉기까지 한데, 새신랑이 민망스러우니 절대 말하지 말라해서 그냥 어설픈 웃음으로 때웠다.
딱 요맘때 일이라 추석명절 때 성묘를 가게 되면 그 옛날 생각이 절로 떠오르는데, 아마도 지금 똑같은 상황이어도 남편은 가시에 찔렸다고 벌떡 일어서 나오진 못할 것이다.
그때 온갖 잔소리 하며 눌러 앉히시던 둘째~~ 넷째까지도 모두 그 아름다운 산에 묻히시고 색동 한복 입고 산을 누비던 그때 그 새신랑 새신부는 이제 무르익은 밤송이 같은 시기를 맞아서 나무 한그루를 보아도, 돌멩이 하나를 보아도 옛 생각에 접어드는 나이가 되었다.
그 시절의 밤나무, 이름 모를 꽃들은 다시 피고지기를 반복하는데, 들판을 가득 채웠던 웃음소리들은 이제 다시 들을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