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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콩 Sep 20. 2020

엄마가 돈봉투를 잃어버렸다

" 아이고오~  돈을 이저부렀시야... "


업무 때문에 이동하는 차 안에서 친정엄마의 전화를 받았다.  휴대폰 속에서 애달픈 사연이 줄줄 흘러내렸다.


"추 사러 갔다가 돈 25만 원 든 봉투를 놓고 왔는디 망할 넘의 편네가 못 봤다고 우긴다.

두 번이나 찾아가도  못 봤단다 "


고추값 치르느라 봉투를 빼서 잠시 옆에 둔다는 게 그만 깜빡 놓고 왔다는 것이 엄마의 주장이다. 버스정류장까지 왔다가 돈봉투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부리나케 가게로 달려갔는데,  주인장 편네(엄마 표현)는 돈봉투를 본 적이 없다고 딱 잡아뗐다.


오던 길 가던 길 다시 훑어보고 백번을 생각해도 분명히 가게에서 봉투를 꺼내 놓고 온 게 맞단다. 에라이 다시 쫓아가 항의했더니 주인장 편네가 생포리 같이(쌀쌀맞게) 굴면서 문을 쾅 닫아버렸다. 그래도 차마 그 근처를 못 떠나고 혹시 누가 돈봉투를 찾아서 건네줄까 하여 어딘가에 쭈그려 앉아 계신 모양이다.


순간 확 짜증이 났다.  가게 주인한테도 엄마한테도 아닌 눈앞에 그려지는 장면 때문이었다. 80대 중반의 허리가 옆으로 휜 할머니가 돈봉투를 찾으려고 휘적휘적 바닥을 휩쓸고 다니는 장면,  세상 다 산 표정으로 허둥지둥 길거리를 쑤시며 천금같은 돈봉투 찾느라 입이 바짝 타들어간 그 모습,  그러다  기진맥진해져서 비척대다 누가 보건 말건 아무데나 주저앉아 벌벌 떨리는 손으로 전화기를 꺼내들었을 그 모습.  길거리를 오가는 낯선 사람들 눈에도 참 불쌍해 보였을 것이다.  엄마는 분명 그랬을 것이다.


10여 년 전에 갑자기 왼쪽 다리가 저릿저릿 하대서 병원에 모시고 갔더니 척추 신경이 다 죽었다고 했다. 그 연세 어머니들 중에 허리 꼿꼿하고 무릎 튼튼한 분이 드물겠지만,  젊어서 고생하신 건 차치하고라도 연세 드신 후에도 쉴 새 없이 몸을 혹사시킨 처절한 대가였다.



지금까지도 50~60대 딸과 아들 며느리한테 손수 재배한 야채로 김치며 반찬을 담아 보내는 고생을 사서 하시니 허리 펼 날이 얼마나 있었을까.   부랴부랴 수술을 했는데 수술이 잘못된 건지 연세가 많아 소용이 없었던 건지 외려 허리가 왼쪽으로 눈에 띄게 틀어졌다. 허리가 한쪽으로 굽어지다보니 균형이 안 맞아서 뒤뚱뒤뚱 하다 간혹 넘어지기도 하셨다.  


어린 애도 아닌데 다 늙어서 한번씩 넘어지는게 창피해죽겠다고 푸념하던 노인네가 잃어버린 돈 25만 원이 든 봉투를 찾으려고 저잣거리를 헤매 다녔을 생각을 하니...누구한테랄 게 없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세상 모든 것들에 짜증이 났다.   


" 찾으러 다니지 말고 잊어버려. 내가 줄게 "


하지만 딸이 그렇게 말한다 포기가 되겠는가... 


" 어떻게 잊는다냐  절대 안 잊어진다. 분명히 거그다 놓고 왔는디  망할 넘의 예편네가 없다고 딱 자른다.. 아이고 내 돈... "


돈 25만원이 순간에 사라졌으면 누구라도 입맛이 쓸 거였다. 8순 노인네가 오죽하겠나.


" 잊어버리시라고! 내가 보내 준다고오! "


" 니 돈은 돈 아니냐  니 돈은 안 아깝냐. 아이고 그 망할 놈의 편네 " 


" 내 돈은  안 아까워.  그러니까 얼른 집에 들어가셔! "


구구절절 달래고 설명할 여건도 아니었다. 아마 다른 데 두고 못 찾을 수 있으니 나중에 어디선가 나올 거라고 그러니 고추가게에는 두 번 다시 가지 말라고 하고 일단 끊었다. 전화기 종료 버튼을 애써 누르는 틈새로 엄마의 신음같은 목소리가 기어나왔다.


"아니랑께... 분명히 내가 거그다 뒀당께..."


순간 몇 년 전 읽은 신문기사가 생각났다.

어느 시골 할머니가 사위가 보내준 30만 원을 들고 명절 장을 보러 갔다가 그만 봉투째 잃어버렸다.  쓰기도 아까워서 가방 속에 넣고 두근대며 한 번씩 들여다본 그 돈이 어디론가 사라졌다.

혹시 장롱 서랍에 넣어 두고 아예 장에 안 가져 갔던가?  늙은 기억을 의심하며 온 집안을 헤집어도 없고 오던 길 눈 빠지게 노리며 되짚어 가도 없었다.


할머니는 명절 장 보는데 보태라고 돈을 준 사위한테도 면목이 없고, 이젠 돈 간수도 제대로 못하니 더 살아서 뭐하랴, 늙으면 자식한테도 누구한테도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자책했다.


30분 후 이웃 주민이 돈봉투를 들고 집으로 찾아왔다. 마침 집 앞을 지나다가 떨어진 돈 봉투를 발견한 것이다. 그러나 늦었다. 늙으면 죽어야 돼. 사위가 준 돈 하나 간수를 못하니 더 살아서 뭐해. 농약을 마시고 생을 마감하신 뒤였다.



인간처럼 나약한 동물이 없다. 모든 것에 마음을 다친다. 사람한테도 다치고 돈한테도 다치고, 돈이 많아도 걱정이고 돈이 적어도 걱정이고 돈이 생겨도 걱정이고 돈을 잃어도 걱정이고... 70년, 80년씩 살아도 돈 때문에 그만 죽고 싶을 만큼 마음을 다치는 일이 너무 많다.


아이고 노인네 병 나겠네.. 어떻게 잊게 만들지?


'생포리 고추가게 편네'가 혹시 돈봉투 찾았다고 들고 나올까봐,  집에 못가고 퍼질러 앉아 있을 번잡한 거리가 눈에 밟혔다.  도저히 일이 손에 안 잡혀서 궁리끝에 전화를 했다.


- 엄마!


- 왜야..


- 이거 비밀인데... 실은 내가 어젯밤에  운동하러 가다가  돈 50만 원을 주웠어.


- 뭐시라고야  오매~ 돈을 50만 원이나 주웠어?  뭔 일이다냐잉


거의 죽어가던 목소리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튀어 오른다.


- 그러게.. 엄마같이 정신없는 사람이 또 있나봐.


- 별일이다잉  누가 잊어버렸을까나. 파출소 갖다 줘부러라


- 그럴라고 했는데 마침 엄마도 돈 잃어버렸으니깐 그냥 엄마랑 나랑 반씩 나눠 쓰자.


- 돈 주은 거 쓰면 재수가 없단디?


-  재수 없으니까  얼른 써버리자고. 대신에 좋은데 쓰면 되지.  지금 보낼 테니까  고추가게 25만 원은 잊어버리셔. 돈은 엄마처럼 잃어버리기도 하고 나처럼 줍기도 하고 그러는 가봐


- 오매 근다냐... 별일이다잉


돈을 보내드렸더니 오후에 다시 전화가 왔다. 돈 잃어버리고 속이 짜서 죽을 뻔 했는데 이제 살겠다 하시더니


- 근디 넌 진짜로 돈이 안 아깝냐  글믄 머가 아깝냐?"


- 음.. 지난번에 엄마가 김치 담가준 거 이서방이 한 젓가락에 두 가닥씩 먹어버릴 때 겁나 아까워. 이서방 뒤통수 내려칠 뻔 했어.


- 오매~김치는 또 담그면 된디 왜 아깝다냐. 글믄 김치 또 해주까?


- 그럼 좋지. 엄마랑 나랑 서로 아까운 거 바꿔 쓰게 김치나 담가주시던가~


그날 밤 엄마는 편히 주무셨다. 다음날 새벽같이 일어나 담근 김치를 택배로 보내주셨다.


부디  얼마 남지 않은 인생 동안  별로 안 아까운 것 안 중요한 것으로 인해, 정작 아까운 것 중요한 것을 놓치고 사시는 일이 .... 


잎새에 이는 바람결에도 나는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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