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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콩 Sep 13. 2020

어느 할아버지의 부탁


" 왜 안 들어오고  저러시지? "


박 실장이 창밖을 보며 중얼거렸다. 30분 전부터 웬 할아버지가 사무실을 기웃거리며 서성이는 게 이상하단다.


' 할아버지..?'


밖으로 나가 두리번거리다 할아버지와 눈이 마주쳤다.  그새 많이 노쇠해지셨지만 그래도 한눈에 알아보겠다. 2년 전에 이사 나가신 김영감님.

- 나 알겠어요? 중개사 선생?
- 아유 그럼요~ 왜 안 들어오고 계셨어요~ 어서 들어오세요.

김영감님을 처음 뵌 건 6년 전이다.
젊은 여자분이 와서  소형 아파트 전세계약을 했는데, 시부모님이 들어와 살 집이라고 했다.

잔금 날, 젊은 여자분 뒤에 서성이는 두 노인분이 계셨는데  김영감님과 눈이 마주치자

가슴이... 쿵... 했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살아계셨으면 저렇게 연세 드셨겠지... 너무나 닮은 모습... 아릿한 마음에 눈을 떼지 못했다.

- 왜요?  왜 자꾸 보쇼~?
- 너무 잘생기셔서요~

젊은 사람이 어른을 놀리네~ 하셨지만,  
우리는  한결 가까워졌다.




고2 겨울방학 때 친정엄마와 함께 외할머니를  뵈러 가신 아버지는 다시 돌아오지 않으셨다.
엄마와 함께 외가댁에서 하룻밤을 주무신 후,  혼자 먼저 돌아오시다가 눈길에서 버스와 충돌하는 사고가 났고... 1월 1일 아침 TV 앞에 모여 앉아있던  5남매는 뉴스 자막을 통해 아버지의 부고를 확인했다. 


 그땐 우리만 두고 가신 게 너무 원망스러웠는데,  사회생활을 하고 또 결혼해 살면서는 한창나이에 먼저 가신 아버지에 대한 아쉬움이 늘 남아서 그 연세의 어르신을 뵈면 가슴이 먹먹해질 때가 다.     

김영감님 내외분이 사무실 앞을 지나가시면,  
음료수 두 병을 꺼내 들고  쫓아나갔다.  
두 분 중 한 분만 지나가셔도 두병을 들고 뛰어나가서 '가져가서 같이 드세요~'  했다.


김영감님은 나만 보면 방실방실 좋아하셨다.
나도 영감님을 뵈면  좋았다.

2년 만기쯤에 집주인이 집을 팔아달라고 하자, 김영감님이 이사 나가기 싫다며 집을 사고 싶어 하셨다. 며느리가 연락해왔고, 매매가를 조정하여 매매계약을 해드렸다.

계약하던 날,  김영감님은 너무 좋아하셨다.
아들이 사업하다가 다 말아먹고 경기도 외곽까지 전셋집 얻어 오면서 상실감이 크셨는데, '이제 다시 내 집을 장만했으니 오래오래 살아야지~ 중개사 선생 덕분에 일이 잘 되었어~' 셔서 나도 기뻤다.

며칠 후 며느리가 은행 대출을 받게 연결해달라 했고,  일주일 후 대출상담사와 며느리와 김영감님이 사무실에서 만나 대출 신청을 했다. 대출상담사가 브리핑하는 내용을 들으니 담보대출을 full로 받는 듯했다.
속으로는 전세금이 있는데 대출금을 뭐 저렇게 많이 받으시지? 생각했다.
잔금 및 소유권 이전이 진행되었고 며느리가 와서 모든 일을 처리하고  갔다.

6개월 후, 김영감님 할머니가 근심 가득한 표정으로 방문하셨다.  

- 우리 며느리가 그때 대출 얼마나 받았어?
-  대출 가능 금액 full로 다 받으셨잖아요

영감님도 옆에 앉아서 듣고 서명하셨는데...

할머니는 털썩 주저앉으셨다.


" 전세금이 있으니 조금만 받으면 되지 왜 그렇게 많이 받아서.... 우리는 늙은이들이라 얼마나 받는지 제대로 몰랐어.  그리고 많이 받았으면 우리를 줘야지 왜 지들이 다 가져가냐고~"

담보대출금을 full로 받아서 잔금을 치르고 남은 돈을 다 가져갔다고 한다. 사업자금에 보탠 모양인데  그나마 이자를 못 내는지 은행에서 계속 독촉장이 날아온다고 했다.


다시 몇 달 후 할머니가 비척비척 찾아오셨다.

집을 팔아달라고, 은행이자가 연체돼서 경매 넘어갈 지경이라 했다. 김영감님은 화병이 나셨는지 통 외출도 안 하고 누워만 계신단다. 며느리도 전화하여 급히 처분해달라고 했다. 급매로 내놓으니 바로 매수인이 나타나서  매매계약이 진행되었다.

계약 시에는 며느리와 김영감님이 동석하였는데, 급 수척해지신 영감님은 말 한마디 없이 굳은 표정이었다. 매수인은 집을 사서 2년 정도 전세 놓은 후 결혼하는 아들을 입주시킬 계획이었다. 며칠 후 전세 손님이 와집을 보고 계약을 하려는데  영감님이 달려오셨다.

" 나 어디로 이사 가라고ㅡ!  
우리 두 노인네 그냥 여기서 살게 해 줘.
중개사 선생이 돈 벌어먹겠다고 그러면 안 되지.
집 산 사람한테 우리가 여기서 계속 살게 해달라고 말해줘."

계속 눌러 사시는 건 불가능했다. 융자금을 많이 뽑아낸 상태라 은행에 상환하고 나면 김영감님은 월셋집을 구해 나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매수인에게 혹시 월세는 안 되겠느냐고 여러 번 설득했으나 전세계약만 고집했다. 며느리에게 전화하여 혹시 어르신들이 전세로 눌러 사시게 할 수는 없냐고 물었더니  이미 외딴곳에 월셋집을 구해놓았다고 했다.


급기야  김영감님은 한테 화를 내셨다.


" 내가 딸같이 생각하고 이뻐했는데 말이야

우리 애들이 대출금 많이 뽑아가는 것도 미리 말 안 해주고!

우리가 여기 계속 살게도 안 해주고....!

새로운 사람이랑 전세계약을 해야 복비를 많이 받으니까 그러는 거지? 사람이 그러면 못써..."


억울했다. 그러나 아무리 설명을 해도 노여움을 풀지 않으셨다. 그 뒤론 지나가실 때 음료수를 들고나가도 매몰차게 뿌리치셨다.


이삿날에도 문밖에서 들어오지 않으셨다. 할머니는 노인네가 자식들한테 섭섭한 마음으로 괜한 오기를 부리는 거니 마음 쓰지 말라고 하셨다.  무표정한 아들과 말 한마디 없는 며느리가 미웠다.


잔금이 끝난 후 돈 10만 원을 봉투에 담아 영감님께 내밀었는데 휙 내던지고 가셨다.  할머니가 주워 가시면서  "내가 가서 전해드릴게... 너무 섭섭해 말우..." 하셨다. 


그리고 2년 만에 김영감님이 다시 찾아오신 것이다. 성난 채 가셔서 내내 마음에 걸렸는데 다시 찾아와 주시니 너무나  반가웠다.


- 웬일이세요~ 이 동네에는...

- 지나가다 들렀어

- 할머님은 왜 같이 안 오시고...

- 어제가 49제였어. 당뇨가 있었잖아. 합병증으로....


나 적적해서 못살겠어. 살던 집에서  할망구가 가버리니...

거기 이사 가서부터  시름시름 앓더라고.

여기서 살 때가 좋았어. 그때 다시 집 샀다고 좋아하고, 살맛도 나서 건강해지는가 싶더니..

망할 것들!  생전 들여다보지도 않아.


중개사 선생 같은 딸만 하나 있었어도...

내가 다시 여기로 이사 오면 안 될까?  방한칸짜리라도 좋으니 우리 며느리한테 말해서 나 여기로 이사 오게 좀 해주!


김영감님은  당신 며느리한테 연락해서  이사 오게  해달라고 몇 번을 당부한 후 일어서셨다.

걸음걸이가 원래 저러셨던가.... 반기는 이 없는 세상 속으로 비척비척  걸어가시는 모습이 살아온 세월만큼이나 고단해 보였다.




아버지는 다니던 직장을 명예퇴직하신 후 타 지역에서 작은 공장을 운영하셨다. 공장 사택에서 생활하느라  한 달에 몇 번만 집에 오셨다.

그런 사위가 보고 싶어 외할머니가 다녀가라 하시니 아버지는 막내딸인 나도 데려가려 하셨다. 떨어져 살다 보니 같이 있고 싶으셨던 모양이다.


나는 귀찮았다. 연말이라 친구들이랑 놀 계획을 잔뜩 짜 놨던 터라 외가댁엘 가는 건 재미없는 일이었다.  간다 하 나가 친구들이랑 노는데 아버지가 거기까지 찾아오셨다.


- 아버지 따라 가자. 같이 외가에 가서 놀자.

- 싫어요. 다녀오세.


아버지는 한 달에 몇 번씩 밖에 못 보는 자식들을 보러 혼자 먼저 돌아오시는 중에 사고를 당하셨다.  아버지가 같이 가자고 하실 때 따라나섰으면

그렇게 서둘러 돌아오실 필요가 없었을 텐데.. 

살아계시면 김영감님 같은 곧은 눈매의  할아버지가 되셨을 텐데...




중개사 선생!

며느리한테 말해서 나 꼭 여기로 이사 오게 줘.

꼭 그렇게 해줘!


나는 김영감님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다시 이사 올 수 있게 도와드리지 못했다.


중개업을 시작한 후 처음으로,

내가  이렇게 밖에 못하는 무능한  중개사인 것이 가슴을 치고 싶도록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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