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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콩 Sep 09. 2020

같은 물건을 권하는 다른 방법

휴대폰 매장 직원한테 한 수 배웠다.

남편이 휴대폰을 잃어버렸다. 사무실에 두고 온 것 같은데 아무리 뒤져도 없고 차에도 집에도 없었다. 그즈음 비상근무로 정신을 놓치고 살 때라 어디서 툭 떨어뜨려도 몰랐을 법했다. 그래서 새로 구입하기로 했다.

남편은 휴대폰을 끼고 사는 사람이 아니다. 밴드도 카톡도 문자도 읽씹 하거나 잘 들여다보지 않는다. 그가 유일하게 휴대폰에 매달려 있을 땐 "치는 맛이 좋다 신맞고!" 어쩌고 하는 고스톱 게임을 할 때다.  고스톱을 칠 때는 볼륨을 빵빵하게 틀어놓고 있어서 그가 뭘 하는지 얼마나 땄는지 잃었는지 그 순간 집에 있는 사람은 다 안다.


그동안은 휴대폰 기종에 관심 없고 그저 '전화통화만 되면 된다'라고 했던 남편이 이번엔 기필코 노트X를 사야겠다고 우기는 것도 고스톱 때문이었다. 고스톱을 치기엔 화면이 큰 노트가 딱이고 그 중에도 손가락 길이가 긴 남편 손에 감아쥐기 좋은게 노트X 라고...옆 직원 폰을 몇 번 만져보니 느낌이 좋았다고 했다.  잃어버린 폰을 사기 전에도 노트 시리즈를 쭈욱 썼었지만 X가 여러모로 남편의 마음을 끌었던 모양이다.


남편이 폰을 갈아탄 게 6개월 정도밖에 안되었기 때문에 위약금이 35만 원가량 나온다고 했다. 당시 막 신규 출시된  노트Y는 140만 원대여서 위약금까지 하면 너무 비싸다는 것도 그가 노트X를 고집하는 이유였다.


사진은 실제 내용과 무관함.


나는 남편이 노트X를 사든 노트Y를 사든 별 관심이 없었다. 그저 휴대폰 가게로 끌려가면서  아무거나 얼른 사기를 바랐을 뿐이다.


첫 번째 대리점에 갔다.

노트X를 찾으니 통신사가 어디냐고 묻더니 없다고 했다.  그리고는 재빠르게 신규폰인 노트Y를 권했다. 물론 들어가자마자 진열 기기 중 가장 눈에 띈 것도 신제품인 노트Y였다. 남편은 고개를 흔들었고 눈치를 살피던 점원은 바로 갤럭시F는 어떠냐고 물었다.  비슷하게 화면도 크고 가격도 많이 다운됐다고 했다. 남편은  "가자!" 라고 짧게 말하고 먼저 나갔다.


사진은 실제 내용과 무관함


두 번째 대리점에 갔다.

노트X를 찾으니 역시 노트Y를 권했다. 역시 고개를 흔들자 통신사가 어디냐고 묻더니 재고가 있는지 한참을 뒤적이다가  '갤럭시Z라인도 괜찮은데~'라고 했다.  남편은 고개를 흔들더니 다시 가자! 라고 했다.
급 피곤해지기 시작했다. 두 군데나 없는 걸 보니 다른 곳에 가도 재고가 없을 가능성이 높았다. 큰일 났네....


남편은 나름 고집쟁이다. 특히나 물건에 대한 판단은 외곬수에 가깝다. 아무리 옆에서 누가 좋네 나쁘네 해도 한번 결정했으면 쉽게 바꾸지 않는다. 그런 성격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나는 그저 형식적으로 따라다닐 뿐 남편을 설득할 생각은 아예 하지도 않는다.  다만 언제까지 끌려다녀야 하나가 급 피곤할 따름이었다.


사진은 실제 내용과 무관함.


세 번째 대리점에 갔다.  

옆 상점에서 놀고 있던 직원이 부리나케 뛰어왔다. 똑같이 통신사를 묻더니 없다고 했고 똑같이  노트Y를 권했다. 여기까지는 거의 모든 대리점이 똑같은 패턴이었다.  그러더니 '결합이 많이 묶여있지 않으면 K사로 옮기세요'라고 했다.  K통신사에는 노트X가 있는 모양이었다.


 '이제 이 지리한 장정을 끝낼 수 있겠군. 까짓것 통신사 바꾸면 되지 뭐.'  


직원은 내 폰을 달래서 결합 내역을 확인하더니..'결합이 많이 되어 있네요 ㅠㅠ'라며 폰을 돌려줬다. 직원 눈빛이 이미 포기 모드였다. 우리보다 먼저 우리를 포기하고 있었다. 내가 통신사를 안 바꿀 것 같다고 넘겨짚고 있었다. 인사하고 나와서 바로 옆에 있는 대리점으로 향했다.  휴대폰 대리점은 참 많기도 했다.


몇 걸음 옮겨가는 도중에 나는 말했다.


노트X는 없나봐. 벌써 세 군데나 없다는데 여기라고 있겠어? 이 골목에는 여기가 마지막 일 것 같은데?

그냥 Y로 사면 안돼?


싫어! 좀 더 돌아다녀 보자.


사진은 실제 내용과 무관함.


네 번째 대리점을 들어가니 젊은 남자가 혼자 컴퓨터 앞에 앉아있었다. 역시 없을 거야 하는 심정으로 물었다.


'혹시  노트X  있나요?'

남자는  자리에 앉도록 권했다. 있다고도 없다고도 답하지 않았다.  메모장을 펴고 주민등록번호와 기존 폰 번호 등을 물었다. 일단 성의 있는 태도가 기대감을 주었다. 우린 지쳐 있었으니까..

남자는 통신사에 전화해 결합이나 할인을 받고 있는 게 있는지, 위약금은 얼마인지,  통신사를 옮길 경우와 안 옮길 경우의 득실은 어느 정도인지 꼼꼼히 알아보았다.


노트X가 있다는 거야 없다는 거야....


궁금했지만 우리도 묻진 않았다. 일단 남자가 우리를 위해 뭔가를 하고 있었으니까... 남자는 전화를 끊더니 현재 폰의 사용량, 결합으로 인한 할인 정도 등을 비교 설명하였다.  신규폰 노트Y로 해서 카드 결합 할인을 받으면 노트X를 사는 것이랑 큰 차이가 안 난다고 설명한 후, 노트Y가 새로운 기능이 추가되어 성능은 월등하니 가성비 대비 훨씬 유리하다고 했다. 더구나 노트Y로 결정하면 현재 폰 분실로 생기는 위약금 35만 원도 보조를 해주겠다고 했다.

결론은 노트X는 없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노트Y 를 남편 손에 들려주면서 두께감에 대한 편견을 불식시켜주었고 무엇보다 굳이 노트X 를 고집할만한 특별할 이유가 없다는 걸 일깨워 주었다. 다른 대리점들과 권하는 물건은 같았지만  뭔지 모르게 굉장히 성의 있고 괜찮은 조건이라는 느낌이 들게 했다.  슬쩍 보니 남편이  "치는 맛이 좋다!" 고스톱을 칠 때처럼 몰입한 표정으로 듣고 있었다.


네 번째 대리점을 방문하기 몇 발자국 전까지만 해도 140여만 원 신규 폰은 절대 안 할 거라고 단호히 말하던 고집쟁이 남편은,  세상 흡족한 표정으로 노트Y폰을 구입했다.

집으로 오면서 그가 말했다.

" 네 번째 대리점 직원이 표정이나 자세부터 뭔가를 해주려는 의지가 보였어. 다른 곳에서는 내가 찾는 제품이 없으니 그냥 통신사를 옮기거나 다른 제품으로 바꾸라는 투여서, 뭔가 내 계획이 틀어지는 것 같아 내키지 않았어.. 나는  오늘 꼭 구입을 해야 하는 사람이었으니, 성의 있게 대했다면 어떤 폰이든 거절하지 못했을 거야.  사실 폰은 한정돼 있고 어디엘 가나 거의 비슷한 조건으로 구매할 수밖에 없잖아?"

변함없이 단일한 요구사항을 가진 고집불통 의뢰인의 마음을 바꾸고,  거부 심리를 가지고 있던  한 단계 up된 제품으로 결정하게 하는 영업능력은  역시
접근방법의 차이!  성의 있고 적극적인 마인드!
곧이곧대로 없다 안된다가 아니라 포인트를 찾아 잠재된 구매력을 끌어내려는 능동적인 자세에 있지 않나 싶다.


우리가 들어서자마자 눈이 반짝 빛나던,  

제품이 있다 없다는 답을 하기 전에 '먼저 자리에 앉기를 권했던' 

젊은 직원한테

나는 한 수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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