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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콩 Sep 06. 2020

아들놈은 달랐다 1

아들은 우리랑 달랐다. 언제부터인가 그 '다름'을 느끼게 다.

" 이들이 급식에 대해 항의했어요 "


고교 1학년 학기 초에  아들 학교에서 급식대란이 일어났다.  급식이 조금 부실했던 모양인데  전교생이 모인 월요 조회에서  1학년 아이들 몇 명이 급식비에 비해 식단이 부실하다고 문제제기했다.

아들의 열띤 설명에 의하면, 여자 아이 한 명이 먼저 말을 꺼내자 여기저기서 동의 발언, 보충 발언이 나왔다. 미리 준비라도 한 듯 꽤 논리적이고 구체적으로 문제점을 지적하고 대안을 제시했다고 한다.  환호와 박수가 터져 나왔다. 선생님들은 당황했고 교장선생님은 '급식에 대해 다시 검토해보겠다'는 말로 서둘러 상황을 수습했다.

나는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묘하게 설레는 '개혁 세포'를 가지고 있다.

아.. 정말 멋진 녀석들이구나,,. 멋져...

 " 너는 뭐라고 했니?"

내 아들이니깐....  아들이니까 뭐라고 한마디 했을 것이다.


남편과 나는 80년대 후반 민주화 운동의 격동기에 화염병을 나르고 던지던 학생운동권 출신이다. '1987' 영화가 개봉하던 날 만사 제쳐놓고 아이들을 불러 모아 극장으로 향했었다. 아들은 엄마 아빠가 어떤 시기를 어떻게 보낸 세대인지 잘 안다. 영화가 끝난 후 감회에 젖은 아빠와 눈물을 흘리는 엄마를  보고        

'그러니까 엄마 아빠가 저런 대학생활을 하셨다는 거죠? 정말 멋져요. 덕분에 우리가 지금 이렇게 사는 거잖아요!'  라고 했었으니까..


친구들이 급식에 대해 항의할 때 무슨 말을 했느냐고 묻는 나에게 아들은 답했다.


" 저는 아무 말 안 했죠. '그런' 이야기하면  생기부(생활기록부)에 안 좋다고 선배들이 그랬거든요."

급식은 개선되었다.  아들은 원래 급식도 자기는 큰 불만이 없었는데 바뀐 급식은  대애박~이라고 신나 했다.  

그리고 2년 후

고3 수험생들한테는 내신등급을 마무리짓는 1학기 기말고사가 가장 중요한 시험이라는데, 기말고사 첫날 학교가 발칵 뒤집혔다.

첫 시간 국어시험에 감독 샘이 10분 늦게 입실한 것이다. 그리고 시험 종료 10분 전에  "10분 남았다.." 라고 알려주자, 학생들이 즉각 항의했다.

선생님!
늦게 들어오셨으니 그만큼 시간을 더 주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

국어시험은 예시문이 많아 원래도 시간이 많이 부족했기  때문에 학생들은 민감했다.
당황한 샘은 늦은  아니라는 둥 변명을 하다가 아이들이 거칠게 항의하자, 결국 5분 더 주는 걸로 일방적으로 마무리했다, 그러나 그땐 이미 나머지 잔여시간 10분까지 항의하는데 써버린 후였다.

시험이 끝나자 항의하느라 미처 문제를 풀지 못한 아이들은 울고불고 난리가 났다. 다음 시간 시험까지 지장을 받았다.

그 시각 학부모 단톡 방이 발칵 뒤집혔다.


아이코...
하필 예민한 아들 녀석 반에서 이런 일이..
이 녀석도 부당한 건 그냥 못 넘어가는 성격이니 친구들 항의하는데 끼어서 분명히 문제 푸는 시간을 잡아먹었을 것이다.  더구나 맺고 끊는 게 잘 안 되는 성격이라  그 시험을 망쳤으면 다음 시험까지 영향을 받을 거고 아이고 큰일 났네....

하루 종일 전전긍긍하 저녁무렵에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 늘 국어시험 시간에 난리가 났다던데...
컨디션 괜찮니?"


속상해도 지나간 건 잊어버리고 내일 시험 준비에 신경 쓰는 게 더 현명한 거라고 이야기해줘야지.. 마음의 준비를 하는데 아들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

" 저는 잘 봤어요. 아이들이 항의할 때 집중해서 풀었어요."

예상은 빗나갔다.

항의하는 무리 속에 끼어있었라고 생각했는데,  아들은 친구들이 항의하는 시간에 '이때다 하고 문제 푸는 무리' 에 속해 있었다. 한 문제라도 더 풀자 하고 집중해서 푸느라 오히려 추가시간 5분에는 검토까지 하며 여유가 있었다고 한다. 말문이 막혔다. 아들은 그 시험에서 고교시절 최고의 성적을 냈다.

 아들을 키우면서 유전의 힘이 강하다고 생각했다. 외모는 아빠의 붕어빵이었고 난시에다 입맛이 까다로웠다. 반면에 엄마의 예민한 성격과 글쓰기를 좋아하는 성향을 닮았다. 은하계에 던져놔도 어느 집 아들내미인지 단박에 알  있을 거라고 지인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그런데 살아가는 방식은 확연히 달랐다.

시대상 때문일까. 세대차이인 것일까.  

같은 사건이 누군가에게는 기회가 되고
누군가에게는 위기가 될 수도 있겠지만,
우리 부부는 항거하는 대열에 발이라도 걸쳐야 맘이 편했다. 그렇게 살아왔다. 그런데 금지옥엽 내 아들놈은  내가 다소 흘겨보던 무리에 속해그 위기를 기회로 삼으며 영리하게(?) 성장하고 있었다.


우리가 스스로 옳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살아왔듯이

아들도 아들이 선택한 방식이 있다는 걸 아들 키가 늘어난 cm 만큼씩 느낀다.  그래서  아들한테 잘했다고도 그러면 안된다는 말도 해보지 못했다.


다만 언젠가 아들이 엄마가 쓴 이 글을 볼 날이 올 수도 있지 않을까... 2018년도에 '1987' 영화가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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