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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콩 Sep 16. 2020

폐지 줍는 씽크대 사장님

저녁  7시경,
퇴근 준비를 하면서 사무실 앞 주차장에 있는 차에  짐을 먼저 실어두러 나갔다.

주차장 옆에는 전봇대가 있고 폐기물을 버리는 곳이 있다. 원래부터 쓰레기장은  아니었는데  쓰레기들이 하나 둘 쌓이더니 어느 순간 재활용품들도 쌓여갔다.  적치량이 늘어나니 주기적으로 관용차가  와서 쓰레기들을 실어가고, 재활용품도 가져갔다.  뒤적이며 폐지를 골라가는 사람들도  생겼다.



그러다보니  쓰레기와 재활용품을 가져다 놓는 사람들조금씩 늘어갔다. 아파트 단지내에서는 매주 화요일을 재활용품 수거일로 정해놨는데, 날짜 맞춰 시간 맞춰 재활용품 정리하기 귀찮은 사람들은 간혹씩 들고 나와 슬그머니 던져놓고 가기도  했다. 아예 차싣고 와서 내려놓고  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는 창문 너머로  쓰레기를 놓고 가는 사람들, 치워가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차에다 물건을 넣고 나오는데  쓰레기장 앞에 1톤 트럭이 서 있고  40대로 보이는 남자가 어둠 속에서 종이박스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세워 둔 트럭에는 'OO씽크대' 라고 씌어 있었다.


순간 '낮도 아닌 저녁 시간에 왜 씽크대 회사에서 종이박스를  정리하지?' 라고 생각했다.


몇장 안되는 종이박스를 툭툭 털고 정리해 트럭에 싣는 남자의 모습은 더디고 어설펐다.  일할줄  모르는 사람같이 서툴러서 도대체 뭘하는 걸까 쳐다보게 만들었다.


사무실을 소등하고 폐문을 한 뒤 주차장으로 가도록까지 남자는 종이박스를 정리하고 있었다.  뭔가를 찾고 있나? 아니면 낮에 재활용품 가져다 버리면서 잘못 딸려온 물건이 있었나?  가로등 불빛도 어두운데 젊은 남자가 도대체 뭘하는 거지.?....어둠 속에서 느리게 움직이는 남자의 몸짓이 궁금증을 유발시켰다.


" 뭘 찾으시나요?"


남자는 일손을 멈추고 말했다.


"아닙니다."


차를 가리키며 다시 물었다.

 

"씽크대 하시는 분 같은데 종이박스가 필요하신가요?  저희 사무실에도 깨끗한 택배박스가 좀 있는데요?"

남자가 어둠 속에서 잠시 머뭇거린다 싶더니 말을 이었다.

"폐지를 줍고 있습니다. 장사가 안되서요.  생활비좀 보태볼까 하구요. 대리운전도 사람이 많이 몰려서 할 수가 없고..."

내가 진심으로 궁금해 한다고 느꼈는지, 남자도 진심을 가지고 답했다.

헐... 괜한 걸 물었구나.. 사무실에 있는 택배박스를 정리해서 가져다주고 수고하시라 인사하고 차에 올라탔다. 등 뒤에 대고 남자가 서둘러 말했다.

부동산중개사님이시죠?  씽크대 하실 분 있으면 소개좀 해주세요.  형님이랑 같이 하고 있는데 장사가 너무 안돼요.  저는 철거를 하고 형은 설치를 해요.

나는 어쩔 수 없이 차에서 내려 명함을 달라고 했다. 필요한 분 있으면 소개하겠다 하고  돌아서는데 그의 간절한 목소리가 다시 목덜미를 잡아챘다.

"씽크대 하시는 분 있으면 꼭 좀 부탁드려요. 소개좀 해주세요. 요새 너무 장사가 안돼요"


알았다고 차창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서둘러 차를 끌고 나왔다.  


 간혹 할머니 할아버지 등이 용돈 삼아  폐지를 줍는 경우는 봤어도 40대 가장이 퇴근 길에 폐지를  주우러  다니는 건 처음 봤다.  

부동산 경기가 안 좋으면 인테리어 등 관련 업종도 타격을 받는다.  더구나 요즘은 씽크대쪽도 한O 등의 유명브랜드가 시장을 주도하고 있기 때문에 개인이 하는 영세 사업체는 갈수록 설 자리가 없다.  어디 씽크대뿐이겠는가.  자금력과 경쟁력이 있는 대기업 등 대규모 사업장이 각종 시장을 독식하고 있다.

40대면 한창 일할 연령대인데,  40대 가장이 퇴근길에 영업차량으로 폐지를 주우러 다녀야 하는 것이 어젯밤 새삼스레 확인한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이다.


 아침이 되어도 폐지 줍던 씽크대 사장님 생각이 떠나지 않아 도대체 폐지가 얼마나 돈이 되는지 알아보았더니 대략 1kg에 40원꼴이란다. 돈 만원을 받으려면 250kg를 모아야 하는데, 250kg가 되려면 리어카를 가득 채워야 한단다.


 어젯밤, 퇴근했어도 가족이 기다리는 집으로 바로 돌아가지 못하고 서투른 손길, 열적은 표정으로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폐지를 줍던 씽크대 사장님은 그 고단한 시간을 소비한 끝에 몇천원이나 모았을까 ... 아님 몇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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