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콩 Mar 04. 2021

혹시 늙어서 혼자 남게 되거든...

15년 전, 60대 부부가 이주해왔다.

사업차 미국을 자주 드나들던 남편이 건강에 이상이 생겨 공기 좋고 조용한 곳을 찾아 요양 겸 이사를 온 것이다. 와서 살아보니 정도 들고 건강도 많이 회복되었다고 좋아했다.

오며가며 사무실을 들를 때마다 입에 침이 마르게 아들 자랑을 했다. 서울 강남에 사는 큰 아들 둘째 아들이 얼마나 돈도 잘 벌고 효자인지, 그리고 그 며느리들이 얼마나 시부모에게 지극정성인지..

자식 자랑을 하는 부모만큼 행복해 보이는 사람은 없다. 그건 그가 가졌을 그 어떤 물질적인 것보다 풍요롭고 위대하다. 자식 자랑을 하는 부모 이야기는 귀 기울여 들어줘야 한다. 누군가가 눈을 빛내며 들어주면 더 행복해지고 자랑스러워진다.

몇 년 후 남편이 세상을 떠나고  할머니만 남게 되었다.  혼자된 후에도 틈만 나면 들러서 아들 자랑 며느리 자랑을 했다. 아 효도를 받는 부모 얼굴이 저렇구나~  효도를 하는 자식 이야기는 효도를 못하는 내가 들어도 행복했다.

작년 가을부터 집을 팔아달라고 했다. 아들들이  홀로 되신 어머니를 모시겠다고 빨리 집을 팔고 들어오라고 성화란다.  집을 내놓으면서도 세상에 둘도 없는 아들 자랑 며느리 자랑에 시간 가는 줄 몰랐는데,  시세보다 조금 높게 내놓다 보니 팔리지 않았다.

어느 날 퇴근 준비를 하려는데 슬그머니 문을 밀고 들어오더니 급히 돈 쓸 데가 있다고 20만 원만 빌려달라고 했다. 이틀 후에 꼭 갚겠다고 했는데  2주쯤 후에 갚았다.

다시 1주일쯤 후에 와서 50만 원만 빌려달라고 했다.  돈 잘 벌고 살가운 아들 며느리들이 있는데 왜 자꾸 돈을 빌려가시지? 의아했다.

역시 이틀 후에 갚겠다던 약속과 달리  차일피일 미루더니, 어느 순간부터 사무실을 피해 멀리로 돌아가거나 모자나 외투로 얼굴을 가리고 지나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알면서 모른 척했다. 우연히 길거리에서 마주쳐도 손잡고 반가워하던 세월이 얼마인데, 돈 50만 원에 얼굴을 가리고 피해 다니며 못 본 척해야 하는 상황이 불편하고 씁쓸했다.

그렇게 한 달쯤 지난 어느 날,  불쑥 들어오더니 단단히 마음먹고 들어온 듯 집이 팔리면 돈을 갚겠다고 했다. 손에는 부침개 한 접시와 김치 한 보시기가 들려 있었고 집값은 급매로 내려왔다.

직감적으로 뭔가 문제가 생겼구나 했는데  그 후로는 하루가 멀다 하고 들러서 빨리 팔아달라고 부탁을 했다. 빌려준 돈을 받기 위해서도 나는 집을 팔아야 했다. 다행히 매수인이  붙어 매매계약 일자를 잡았는데  계약금은 반드시 수표로 찾아오라고 했다. 통장거래를 못하는 거 보니 확실히 문제가 생긴 게 맞다.

계약 날 이른 아침에 전화가 왔다. 가족 행사가 잡혀서 급히 지방으로 내려가야 하니 계약을 미루자고 했다. 그리고 다시 며칠 후 낮 3시로 계약 시간을  잡았는데,,,,, 오전 내내 할머니 전화기가 꺼져 있었다. 또 깨지는 건가? 불안함이 엄습하는 가운데 매수인이 도착했고 가까스로 통화가 된 할머니는 거의 죽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몸이 너무 아파. 못 움직이겠어.."

나는 계약을 깨야겠다고 생각했다. 집을 팔고 싶지 않으신 거다. 그동안 온 동네방네 아들 자랑을 해댔는데 그렇게 세상없는 효자라는 큰아들은 서울 모처에서 유흥업을 하다가 코로나 위기로 개점휴업 상태여서 빚더미에 앉게 됐고, 어머니를 보증인으로 세워 빌려 쓴 사채 때문에 어머니 집에 근저당까지 설정됐다. 또 성격 살갑고 똑똑하기로 소문났다는 둘째 아들은 동업하는 친구랑 금전관계에 문제가 생겨 어머니 통장에 압류까지 걸렸단다.

아들들은 어머니 혼자 사는 게 안쓰러워 집에 모시려는 게 아니라 어머니가 깔고 앉은 집을 팔아서 빚을 조금이나마 청산해야 할 상황이었다. 늙은 어머니의 선택사항이 아니고 어쩔 수 없는 수순이었다.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자식을 모른 척 할 부모가 몇이나 있을까...

첫 번째 계약을 어긴 뒤  두 번째 계약 시간을 잡아놓고 주말 내 생병이 난 할머니는 집마저 팔아버리면 이 날선 추위에 어디로 가야 하나 궁리에 궁리를 더하다 그만 몸살에 급체... 혼자 집에서 온 손가락을 다 따서 체기를 눌렀다.

나는 매도인이  심한 몸살이 걸린 듯하고 또 혹시 그 무서운 코로나 일지도 모르니 다른 날로 다시 잡자고 은근히 유도했으나, 매수인 부부는 일부러 시간 내 왔으니 기어코 계약을 하고 가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어쩔 수 없이 기다린다고 전했더니  30분쯤 후  매도인 할머니가  수척해진 모습으로 나타났다. 계약서를 작성했고 수표로 들고 온 계약금도 받았다. 매수인이 돌아간 후에  할머니는 봉투에 50만 원을 담아서 내놓았다.


"늦어서 미안해. 돈 달라는 말 안해줘서 고마워"

두 달 전에 빌려준 돈을 집을 팔아주고 받았다.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할머니는 한동안 이사 갈 집을 찾으러 다녔다. 외진 곳 방 한두 칸 짜리 월세라도 구하려 했는데 그마저도 여의치 않아 결국 아들네로 들어가기로 했다.

한 달 후 이사 나가는 날,,, 넓은 집에서 고이 기르던 화초를 낑낑대며 들고 온 할머니는

"그동안 고마웠어. 줄게 이것밖에 없어..."

할머니는 지금은 아들들 채무 청산을 해주고 나면 남은 게 없어서 아들 집으로 합가하지만, 다시 경기가 회복되면 이 동네로 돌아올 거라고 했다.


"큰애가 나중에 돈 벌면 이 동네에다가 멋진 단독주택을 지어주겠대.  나 좋아하는 화초 기르면서 살라고... 그때 또 만나."


 부모는 자식한테 실망하는 법이 없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아들 자랑을 시작한 할머니 얼굴이 빛났다.

할머니가 다시 이곳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마당 넓은 예쁜 집을 지어 화초를 종류별로 기르며 만나는 사람마다 붙잡고 아들 자랑, 며느리 자랑을 할 수 있을까?  그때는 자식들을 위해 남은 재산까지 다 털어주고 당신 한 몸 누일 곳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까..






혹시 늙어서 혼자 남게 되거든  애들이 손 벌려도 다 주지 말고 욕심껏 짊어지고 살아. 바보같이 애들한테 다 주고  의식주 걱정하지 말고! 

퇴근하자마자 소파에 기대 TV를 보고 있던 남편한테 대뜸 소리 질렀다. 어이없는 표정으로 남편이 대답했다.


너나 잘해!









작가의 이전글 착한 임대인, 더 착한 임차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