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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콩 Oct 17. 2020

꽃 보다 아름다웠던 남매

나의 가장 아름답고도 슬펐던 고객


30대 중반 잘생긴 청년이었다.
전세 계약 시에는 미녀가 동행했는데, 챙겨주고 아껴주는 마음이 말투 하나에도 행동 하나에도 진한 향기처럼 뿜어져 나왔다.  한 폭의 그림 같은 연인이구나 생각했는데,  남매 사이라 했다.

잔금 날엔  8순 노모도 함께 다. 빼어난 외모의 가족은  말보다는 표정으로 대화를 했는데,, 나는 왠지 그들 가족에게 자꾸 마음이 쓰였다.

입주하고 석 달쯤 됐을까,  청년이 임차인 명의를
누나로 바꾸고 싶다고 했다.

임대인은 일본을 자주 왕래하던 분이었는데,
계약서를 다시 써주는 조건으로
일본행 왕복 비행기 값을 요구했다.

비행기 값 달라는 게 너무 하다 싶어서, 대리계약을 할 테니 오지 말고 위임장만 보내라고 여러 번 설득했으나  막무가내였다.

계약자 변경을 하고  다시 3개월이 지났을 무렵,
청년이 이사를 가겠다고 찾아왔다.  이렇게 금방 이사를 갈 거면서 왜 임차인 명의를 바꿨느냐고 묻자 청년이 어렵게 말문을 열었다.

청년은 희귀병을 앓고 있다고 했다.
갑자기 원인모를 병에 걸려 다니던 직장도 그만두고  대학병원에서 임상실험을 받는 둥 갖은 치료를 해도 호전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다 보니 눈덩이처럼 늘어나는 병원비에다 생활비,  그리고  8순 노모 뒷바라지 하느라  혼기를 놓친 누나는  서울 모처에서 비정상적인(?)  돈벌이를 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다 막대한 병원비로 보증금에 압류 들어올 상황이 되자 비행기 값까지 줘가며 누나로 명의변경을 한 것인데,,,
결국  병원비로 쓴 사채와 생활비 때문에 더 이상 버티기 힘들어.... 다시 집을 빼야겠다고 했다.

청년은 끝도 없이 치료받아야 하는 자기 때문에
누나가 불행한 인생을 살고 있는 게 죽고 싶을 정도로 괴롭다고 했다.
 인생 말년에 두 남매의 불행을 지켜봐야 하는 노모가 안쓰럽다고 했다.

두세 번 본 게 전부인 내게 와   파리한 얼굴로 눈물을 훔치던 청년은, 병이 생긴 후 세상과 등져서 이런 이야기 나눌 사람조차 없었다고 슬프게 웃었다.    

두 달 뒤 이사 나가는 날,  사채업자 두 명도 함께 왔다. 탁자에 먼저 버티고 앉은 사채업자들이 미워서,


'여기는 중개사무소다.  중개사인 내가 중개업무를 진행하는 동안은 나가 달라!' 고 명령했다.

사무실 밖으로 나가 유리창에 바짝 붙어 돈을 주고받는  걸 내다보던 사채업자들은, 잔금이 끝나자 바로 들어와  보증금을 채갔다.


잔금이 끝난 후  받은 중개보수를 봉투에 담아,
차마 못 들어오고 문밖에 서서 오들오들 떨고 있는 노모의 손에 쥐어드렸다.

" 어머님!  
이걸로 따님이랑  아드님한테 맛있는 점심 사주세요~
지난번 계약자 변경 때  임대인한테 비행기 값 주셨던 거,  제가 조금 돌려드리는 거예요.."


친정엄마 같은 노모의 눈에서 메마른 눈물이 터졌다. 숨죽여 오열하는 노모를 부축하며, 청년이 빨개진 눈으로 나를 한참 동안이나 쳐다보았다.
노모는 잠시 후 다시 와,  집에서 기르던 화분과 마른반찬들을  놓고 '고맙다 언젠가 다시 오겠다'며 가셨

이틀 후,
경찰서로부터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OO부동산 대표님이신가요?
혹시 임 O진이라는 분 아세요?
임 O진이란 사람이 OO모텔에서 사체로 발견됐는데요.
소지품에 아무것도 없고... 부동산 사장님 명함만 있어요."

청년은 사채업자가 가져가고 남은 돈을 누나한테 쥐어주고, 함께  점심을 먹은 뒤 사라졌다고 다.

나는 청년의 마음을 알 것 같아서..
그러나 누나의 슬픔도,
노모의 절망감도 알 것 같아서
한동안 밥을 먹지 못했다.

각기 다른 아픔을 가지고 사라진 그들은,
나의 가장 아름답고 슬픈 고객들이었다.

 

노모가 놓고 간 화분은  해마다 연분홍 꾳을 피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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