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 중개는 바로 그 옆 부동산이 한 것이고 내 사무실은 아파트 단지 쪽 상가라서, 차로 지나쳐 오다가 한 번씩 '장사는 되나?' 무심히 쳐다보는 정도였다.
상호가 고깃집이니 삼겹살 구워 먹는 집인가 부다 싶은데 점심식사로 고기를 먹진 않고,
또 저녁엔 차 끌고 쌩~ 퇴근하니 <OO 고기>에 갈 일이 없었다.
그런데 왜 나를 찾으시나...? 전화를 받았더니,, 친정동생이 살 월셋집을 구해달라 했다. 속으로 이걸 뭘 굳이 나를 바꾸래서...라고 생각하고 마침 인근에 단독주택 월세 나온 게 있어서 알려드린 후, 나머지 일처리는 소속 공인중개사한테 넘겼다.
그리고 이틀 후 다른 손님한테 그 단독 월세를 보여드리려는데 마침 외출했다 들어온 소속 공인중개사 왈~ "그 집은 OO고깃집이 계약하기로 했어요~" 하길래 다른 물건으로 진행했다.
그리고 그날 저녁, 몸살 기운이 있어 일찍 퇴근했는데 전화가 걸려왔다. OO고기 아주머니.
" 아유 어떡하면 좋아요? 우리 동생이 낮에 왔다가 내가 바쁘니까 우리 옆 부동산에 가서 그 집을 봤나 봐요. 그래서 맘에 든다고 옆 부동산이랑 계약한다네~ 이건 경우가 아닌데 어떡하면 좋아?"
내용인즉슨, OO 고기 아주머니는 우리 직원이랑 그 집을 계약하기로 하고 살고 있던 세입자랑 날짜까지 다 맞췄는데, 정작 집은 안 봤단다. 아주머니가 그 집 안다고 볼 필요 없고 그냥 계약한다고 해서~.. 그러던 중 마침 친정동생이 시간이 나서 집을 보러 왔다가, 식당 바쁜 시간이라 바로 옆 부동산으로 갔다. 언니랑 계약하기로 한 부동산이 당연히 식당 옆 부동산이겠지 하고..
그 부동산이 같은 단독주택을 보여줬고 집이 맘에 들어 계약하겠다는 동생.
" 아~ 어쩔 수 없지요 머....."
계약이라는 것도 다 운이 맞아야 한다. 억지로 되는 계약은 없다. 그런데.... 아주머니는 '이건 경우가 아니지,,, 내가 계약하겠다고 약속한 건데, 그래서 다른 손님도 안 보여줬을 건데...' 하면서 전화를 안 끊고 한참을 중얼거리셨다. 그 뒤로도 두 번을 더 전화하여 옆 부동산과 공동중개라도 하면 안 되겠냐는 둥 중개보수를 반반씩 나누면 안 되겠냐는 둥 안절부절못하였다. 시골 저렴한 단독주택 월세는 이것저것 챙겨야 하는 잔 일은 많은 데에 비해 중개 보수율이 낮아, 굳이 다른 곳에서 계약하겠다는 걸 섭섭해하며 미련을 가질 만한 일은 아니었다. 더구나 중개를 하다 보면 이런저런 일이 한두 번이던가... 그래서 정말 괜찮다고 신경 쓰지 말고 편하게 옆 부동산에서 계약하시라고 말씀드렸다.
" 아~ 신경 쓰지 마시라니까요. 진짜 괜찮아요. 그냥 그 부동산이랑 하시면 돼요~ 계약 잘하세요~"
저녁 식사 후 먹은 약기운이 올라와 만사가 귀찮았다. 한숨 자야지 마음먹고 퇴근까지 일찍 한 터라 내처 자고 싶었다. 그런데 고기 아주머니는 그날따라 전화를 연이어 3번이나 하더니 결국 4번째 전화를 걸어왔다. 아니 왜 또.. 이 식당에는 손님도 없나 벌써 몇 번째 전화야....
" 아무래도 안 되겠어. 그냥 거기서 할게요. 옆 부동산한테도 내가 거기서 해야 한다고 말했어. 낼 계약시간 잡아줘요."
" 네? 네? "
다음날 임대인과 만나 계약을 했다. 살다 보니 이렇게 손님이 끈질기게 엉겨 붙는 계약, 이렇게 손님이 끈질기게 경우를 따지는 계약도 있구나.. 하면서 ㅋㅋ
한 달 후 잔금을 치르고 동생분이 중개보수를 주길래 받았다가, 봉투에 조금 넣어 퇴근길에 식당을 찾아갔다. 귀찮을 정도로 "경우"를 따지며 계약해준 그 마음이 고맙기도 하고, 혹시 옆 부동산한테 싫은 소리라도 들었을까 마음에 걸려 아주머니가 쓰시든~ 옆 부동산에 갖다 드리든~ 하라는 마음에서였다.
저녁식사 손님이 몰릴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식당은 그다지 분주하지 않았다. 주방으로 가서 설거지하고 있는 아주머니한테 잔금이 잘 끝났다며 봉투를 내미니 극구 사양하시던 아주머니가 말을 이었다.
"거기 부동산 앞에 맨날 야채 말리던 할머니 알죠? 허리 꼬부라진..."
사무실이 상가 코너 자리이고 양지바른 곳이라 그런지 허구한 날 출입문 앞쪽으로 온갖 나물이며 야채를 펼쳐놓고 말리는 할머니가 계셨다.
사무실 출입구 앞이 주변 보도블록보다 10cm 정도 높게 반듯하게 정돈돼 있는데, 아마도 노인분 눈엔 돗자리 쫙 펴고 야채 널기 안성맞춤이라고 생각되었던 듯하다.
호박, 가지, 삶은 깻잎, 무말랭이... 안 말리시는 게 없는데 어떤 날은 출입문 바로 앞까지 바짝 널어놓으셔서 손님들이 이리저리 발을 피해 디디며 출입해야 할 정도라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손님들이 이게 뭐냐고 어이없어하기도 하시는데 할머니는 귀가 어두우신 건지 아님 못 들은 척을 하시는 건지, 제발 출입문 앞은 피해달라고 여러 번 설명을 드려도 다음날이면 아랑곳 않고 또 출입구까지 점령하셨다. 거동이 불편해 보일 정도로 허리 휜 할머님이 낑낑대며 하시는 일인지라 싫은 소리도 못하고, 할머니 안 계실 때 이리저리 밀어서 길을 터놓고 한숨만 푹푹 쉬곤 했다.
실은 비슷한 연세에 비슷하게 허리가 휘신 친정엄마가 겹쳐 보여, 차마 하지 마시란 말이 압안에서만 오물거렸다.
어디 사는 뉘신지도 모르고 여쭤봐도 잘 안 들리시는지 틀니 보이며 씩 웃기만 하셔서... 그저 아파트든 맞은편 동네 어디든 사시나 보다..., 노인네가 무슨 야채를 허구한 날 말려서 자식들한테나 보내시는 가보다~ 했다.
그래서 결국, 볕 좋은 날이 언제 까지겠나~ 겨울은 곧 오리니~!... 맘 고쳐먹고 음료수도 갖다 드리고 허리 아픈데 구부리고만 계시지 말고 한 번씩 허리 펴고 앉아 있기도 하시라고 아예 의자도 하나 고정석으로 내어드렸는데....
갈수록 몸이 힘드셨는지 널어만 놓고 내다보시질 않는 날이 늘어갔다. 덕분에 갑자기 비가 오는 날은 뛰어나가 거둬들이고.. 다시 빛이 나면 쫙 펴 말리고.. 때 아닌 관리인(?)이 되어 내심 귀찮고 짜증스럽기도 했다.
속 모르는 손님들은 '젊은 사람이 그리 안 보이는데 보기보다 살림꾼이네? 바쁜데 그냥 사 먹고 말지 별걸 다 하네~" " 도로가에 이렇게 말려두면 먼지도 많이 낄 텐데 뭘 그렇게 허구한 날 말려요?"라고 나를 의심(?)했다.ㅋ
그러던 어느 날, 보라색 가지를 한가득 말려놓고 며칠째 밤이슬을 맞도록 거둬가질 않으셔서 결국, 아이고 내 신세야~~ 하고 다시 바짝 말려 봉지에 담아 사무실 안에 놓고, 매일 창밖을 두리번거리며 할머니가 나타나시기만을 기다리던 참이었다.
" 친정엄마세요... 나 식당 반찬 쓰라고 매번 손질해다 그 앞에 널어두셨는데.. 남의 가게 앞에다 그러시면 안 된다고 말려도 소용없었어요.. 노인네가 고집도 쎄.... 그런데 부동산 사장님이 갈 때마다 음료수도 주고 허리 펴라고 의자도 내줬다고 무지 자랑하셨어... 지난주에 지병이 심해지셔서 요양병원 들어가셨어요. 이제 살아서는 못 나오시겠지..."
고마워서... 내가 뭐 하나라도 해주고 싶었어요. 그런데 식당 하면서 겨우 먹고살다 보니 부동산 갈 일이 별로 없어. 근데 마침 동생이 이 근처로 이사 오겠다길래... 엄마 때문에 미안하고 고맙고 했는데, 이제 겨우 아주 쪼금 마음이 편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