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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콩 Oct 12. 2020

아들놈은 달랐다 2

아들!  취직하면  엄마 차부터 한 대 뽑아줘야 해!

"아들!

취직하면 엄마 차부터 한 대 뽑아줘야 해!"

아들이 고등학교 1학년이 된 어느 날, 나는 느닷없는 주문을 했다.

저녁 야식으로 치킨을 배달시켜 준 뒤에  아무 생각 없이 장난처럼 던진 말이었다.

아들! 너 키우느라 진짜 돈도 많이 들고 하니 나중에 취업해서 돈 벌면  

젤 먼저  엄마 차를 새 걸로 바꿔줘야 해. 알겠지?

원래가 살갑게 대답을 달콩 달콩 잘하는 놈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먼 나중의 일이니 가볍게 "네 뽑아드릴게요~" 라고 할 줄 알았다. 살면서 나도 그런 빈말쯤은 차고 넘치게 하고 살았으니깐...

'내가 커서 돈 많이 벌어서 우리 엄마 해외여행도 시켜드리고 맛있는 것도 많이 사드릴게요~'라고 하룻밤만 자고 나면 기억에도 안 남을  약속을 하는 귀여운 자식들이 얼마나 많은가. 나도 그랬고 우리 엄마도 그랬을 테고... 말만으로 천냥 빚을 갚는 세상에 부모 자식 간에 그저 물거품처럼 사라질 공약이라도 습관처럼 주고 받으면 그걸로 족하지 아니한가.


빈말인 줄 알지라도

 " 네~  벌면 제일 먼저 크고 좋은 차로 뽑아드릴게요~"라고 말해주면 그걸로 감출 수 없는 흐뭇함을 간직하면 되는 거였다. 동창회 모임에 가서 "우리 아들이 취직하자마자 엄마 차부터 최고 좋은 걸로 새로 뽑아주겠단다 글쎄~"

라고 너스레를 떨며 밀린 아들자랑도 할 수 있고 말이다.  자식 키운 보람이 물밀듯이 밀려들 거였다. 말을 던질 때만 해도 나는 그런 식상한 수순을 기대했다.

그런데 아들놈은 달랐다.

일단 대답이 없었다.

........

어라?

 좀 난처한 듯이  눈만 뻑거리더니 먹던 치킨 박스를 챙겨 들고 자기 방으로 쑥 들어갔다. 대답을 한 거야 안 한 거야 혼자 헷갈려하다 잊었다.


그리고 1주일 후 늦은 저녁때, 아들이 펜과 노트를 들고 거실로 나왔다.

" 저기요 엄마  잠깐만 이야기 좀 해요."

잘 밤에 뭔 일이야. 고민이 생겼나? 하고 아들이 손바닥으로 툭툭 치는 자리에 앉았다.

아들은 진지하게 말했다.

" 엄마가 지난주에 저한테 차를 뽑아달라고 하셨잖아요
사고 싶으신 차가 대략 얼마쯤인가요?"


??


자동차 딜러도 아니고 직장인도 아닌, 고등학생이 된지도 2달밖에 안된 들놈, 코밑에 검정 가루가 묻었나 싶게 염색한 솜털 같은 수염이 쭈뼛쭈뼛 솟아나는  아들의 반응에 좀 기가 막혔다.


큭...
예상 못한 질문에 남편은 웃을 준비를 시작했고,  나는 이놈 봐라? 하는 심정으로 머리와 눈동자를 굴렸다.

"한 7000만 원 정도?" (사실 나는 차에 대해 잘 모른다. 그냥 생각나는 대로 내뱉은 것뿐이다)

아들은  예상이 빗나갔다는 듯이 동공이 흔들리고 표정이 급 어두워졌다.
그러더니 들고 나온 노트에 뭔가를 빠르게 그적이더니  다시 말했다.

" 하... 그럼 혹시 첫 월급부터 말고요, 취업한 지 한 2년쯤 지나서 사 드리면 안 되나요? "

"왜애?"

제가 취업하면 용돈 안 주실 거 아니에요. 그럼 제 월급으로 필요한 데 써야 하고요, 또  출퇴근해야 하니까 저도 차가 필요하잖아요.  신입사원 첫 월급여기저기 비교해서 뽑아보니 제 차 하나 뽑으면 저도 용돈 쓰기가 빠듯해요. 그런데 엄마 차까지 뽑으면.... 아 진짜 계산이 아무리 해도  안 나와요. 그러니 한 2년 정도 시간을 주시면 어떨까요? 가능하시면 한 5년 정도 더 기다려주시면 감사하고요.

남편은 눈물까지 찔끔거리며 킥킥거렸다. 지독히도 심각한 표정의 아들은 도대체 왜 저렇게 웃으시는 거야 하는 표정으로 아빠를 힐끔거렸다.

이 융통성도 없고 배려심도 없는 녀석 같으니라고! '그냥 알았어요  엄마 차 뽑아드릴게요~' 하면 그 말만으로도 며칠을 행복할 텐데 그 공약(?) 한마디 한 것이 코 꿰어서 진짜 엄마 차를 뽑아줘야 할까봐 이리 심각히  따지고 드는 거야?

그래서 나도 양보할 수 없었다.

" 그건 좀 그렇다. 엄마가 너  낳아서 키우고 먹이고 입히고 게다가 학원이니 과외비 등등 들어간 돈이 얼마인데  그걸 망설이니?  당연히 엄마 차부터 뽑아준 다음에 네 차를 뽑아야지 네 차 먼저 뽑고 나서 엄마 차를 뽑으라고? 그건 안 되겠는데?

그러자 아들이 잠시 고개를 수그리고 있더니  눈을 빛내며 다시 제안했다.

" 그러면요 엄마... 차를 좀 싼 걸로 뽑으시면 안 될까요? 차값을 좀 내리시면 제가 다시 계산을 해볼게요.. 그런데 지금 엄마가 뽑고자 하는 차값으로는... 하.... 저도 출근하려면 옷도 여러 벌 사야 할 거고, 또.."

듣다 못한 남편이 끼어들었다.

"야 이놈아. 그건 나중일이니까 그냥 알았어요 하고 들어가서 공부나 해."

그래도 아들은 일어설 생각을 안 했다.

아들: 아니죠. 확실히 해야죠. 엄마가 말씀하신 뒤로 며칠 동안 아무리 계산해도 답이 안 나와서 그래요.  엄마 차 어차피 뽑은지도 얼마 안 되시는데 제 차 다음에 바꾸시면 안 되겠어요? 저도 생활비는 써야 하잖아요

엄마: 지금이야 그렇지만 너 취업할 때쯤 되면 차 바꿔야지.  아무튼 알았고 부모는 자식한테 뭘 해주면 계산 없이 해주거든. 엄마 아빠보다 자식한테 먼저 신경 쓰거든. 그러니까 너도 천천히 고민해봐라. 이 괘씸한 녀석아.

아들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노트를 들고 일어섰다.

한편으로는 어이가 없고 한편으로는 웃기기도 해서 아들이 방으로 들어간 뒤 남편이랑  저 자식 봐라~ 어이가 없네... 누구 닮은 거야? 아들놈 키워봐야 소용없어 등등 소곤대고 있는데..... 잠시 후 문자메시지가 들어왔다. 아들이 보냈다.

" 엄마! 제가 살 집은 엄마가 사주시는 거죠?  집도 사야 하면 진짜 엄마  뽑아드리기 힘들어요ㅠㅠ"

야!!!!!
너 공부 안 해? 공부 안 할 거면 빨리 불 끄고 자 이 새꺄!.

소파에 있던 쿠션이 내 손을 거쳐 아들 방문에 부딪힌 후 바닥으로  힘없이 떨어졌다.


혹시 집에 치킨을 게걸스럽게 먹는 아들놈이 있거든  한 번 던지듯  물어보시라~


아들!  취직하면 엄마 차부터 한 대 뽑아줘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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