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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콩 Jan 13. 2021

이중주차 이중만남

사무소가 아파트 단지 내 상가라 출근하면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주차한다.
어느 날 늦게까지 일하다 주차장으로 내려가니, 커다란 블랙 스타O스가 차 앞을 딱 가로막고 있었다.

이미 주차된 차를 가로막고 이중주차를  했으니 분명 이동시킬 수 있도록 중립기어를 해놓고 사이드 브레이크를 해제해 놓았을 텐데... 차 내부에 짐이 많은 건지 차가 커서 그러는 건지 꿈쩍을 안 했다.



조그만 여자가  커다란 차에 모기같이 붙어 안간힘을 쓰는 게 안돼 보였는지, 지나가던 행인이 함께 밀어주었다. 힘을 썼더니 온몸에 힘이 쭉 빠지고 다리가 덜덜 떨렸다.  


그 후로도 조금 퇴근이 늦다 싶은 날에는 어김없이  블랙 스타O스가 가로막고  있었다.  주변에 빈 주차칸이 눈에 띄는데도 이중주차를 하는 날도 있었다.  시간차로 스타O스가 주차하고 난 후에 빈 주차칸이 생긴 건지, 혹은 차가 커서 주차칸에 주차하기가 불편했는지는 모르겠다.

어떤 날은 운 좋게 차가 잘 밀리고 어떤 날은 꼼짝도 안 해서 누군가의 손을 빌려야 했다.  그러다 보니 주차장에 갈 때마다  '오늘도 가로막고 있겠지? 오늘은 잘 밀리려나?'  걱정 아닌 걱정을 하게 됐다.

어느 날 결국 차주에게 SOS를 쳤다. 고단한 하루 일과 마치고 퇴근해서 쉴 시간이라 웬만하면 전화하지 않으려 했는데,  그날따라 지나가는 사람도 없었다. 앞에서도 밀어보고 뒤에서도 밀어보고 결국 땀을 삘삘 흘리다 지쳐서 전화를 한 것이다,

'0000  차주 되시죠? 죄송합니다만 차 좀 빼주세요~'
상대방이 말했다.

'밀면 되는데요?  중립기어 해놨으니깐 밀어 보세요'

'아무리 밀어도 꼼짝을 안 해요'

결국 차주가 나왔다. 중년 남성분은 나를 보자마자  '밀면 되는데...'라고 하더니 차에 올라탔다.

지하주차장 에폭시 공사가 시작되었다.  2주 정도는  지하주차장을 폐쇄하고 지상에만 주차하라는 공고문이 붙었다.  사무실에서 가장 가까운 지상주차장에 주차했다.

그날 밤, 퇴근하고 주차장으로 가보니...



또 블랙 스타O스였다. 아~ 악연인가 인연인가   도대체 이 차는 왜 내 차가 가는 데마다 따라다니는 것인가...   


마침 내가 주차하고 싶은 장소, 위치가 저 차주한테도 명당으로 보인 것인지,

아니면 옷깃을 한번 스친 것도 인연이라고 내 차를 보면 반가워서 그곳에 멈추것인지, 아니면 우리 인간들하고는 상관없이  차량들끼리 서로 끌리는  차연(자동차 인연)이 있어서  두 차가 서로 썸을 타는 중인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평소 힘쓸 일 없고 입으로만 떠드는 중개사 아줌마  온몸 운동할 시간을 배려해주느라 부러 내 차를 찾아다니며 가로막아 주시는 것인지... 밤마다 육중한 차를 밀어내느라 근육량이  늘어갔다.  


다음날은 주말이라 조금 일찍 콧노래를 부르며 나왔다. 일찍 나왔으니 스타O스가 없겠지.  그런데~~



내가 일찍 집에 가고 싶은 날에는 그분(?)도 일찍 퇴근하고 싶으셨던 모양...


그동안은 보는 사람 별로 없는 실내 공간인  지하주차장에서만 밀어대다가 이젠 환한 대낮 사방으로 오픈된 곳에서도 전투태세에 돌입했다.  차 안에 가방을 넣어놓고 팔을 걷어붙인 후 든든한 엉덩이를 뒤로 쭈욱 빼서 튼튼한 두 다리를 바닥에 고정시킨 채 이를 악물고 신음소리까지 내며 밀어붙이니 조금씩 차가 밀렸다. 대신에 이 부러질 뻔... 기분 탓인가 아침이 되니 온몸이 결렸다 젠장...


물론 기분 좋은 날도 있다.  



이렇게 옆 차선이 비었거나 내가 빠져나갈 퇴로(?)를 마련해주었다고 생각되는 날.  그럴 땐 확실치 않는 그 배려에 감사하며 육중한 스타O스를 향해 목례를 남기곤 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스타O스가 안 보였다.  다른 승용차 등이 이중 주차되어 있는 경우는 간혹 있었는데 스타 O스는 없었다. 한동안 육중한 위용을 자랑하는 스타O스 밀어내기에 이력이 난 나한테 중 소형 승용차를 밀어내는 건  떡 먹고 누워 있기였다.





몇 주 전 한파가 몰아치기 시작한 그날은 폭설 예보 때문이었는지 유난히 지하주차장이 번잡했다. 내차 앞으로 승용차들이 줄줄이 이중주차를 하고 있었다.  줄줄이 3대를 통로 쪽으로 밀어낸 후에 차를 빼고 밀어낸 차들을 다시 원래의 위치로 이동시켜놔야 할 상황이었다.  

다른 차량이 진입하기 전에 차들을 순서대로 이동시켜야 해서 주변을 살피고 있는데,  건너편에서   남자가 큰소리로 말을 걸었다..

'차 빼드릴까요?'

시력이 별로 안 좋은 나는  멀리서부터 소리치고 걸어오는 남자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었다. 검은 점퍼에 검은 모자를 쓰고 있다는 것밖에... 퇴근해서 차 주차해놓고 나가려다 나를 발견한 모양이었다.
어쨌든 일부러 도와주겠다고 다가오니 고마웠다.

남자는 걸어오면서 말했다.

'내가 차들을 밀어서 빼드릴 테니 어서 차에 타세요. 나가신 다음에 제가 이 차들을 다시 옮겨놓을게요.'

남자는 차 3대를 끙끙 밀어서 한쪽 통로로 옮겨주었다. 길이 트이자 나는 차를 몰고 나왔다. 남자는 잘 가라는 듯 손을 번쩍 들어 보였다. 목례를 하고 나오다 백밀러로 보니 마음이 안 좋았다.


주차맨도 아니고 내 비서도 아닌데 내 차 빠진 후에 차 정리까지 하게 하는 건 아니다 싶어서 차를 정차시킨 후 비상등을 켜고 내렸다. 남자 쪽으로 다가가는데 그가  손사례를 치며 말했다.

'아 그냥 가시라니까요. 얼른 가세요 차는 제가 정리해놓을 테니까. 얼른 가세요.
힘도 없으신데...'

뭐 저런 착한 아저씨가 다 있나 감사한 마음으로 꾸뻑 인사하고 다시 차에 타서 주차창 입구를 나오다 잠시 멈칫했다.

힘도 없으신데....?

나한테 하는 소리인가? 내가 약해 보이나?  아는 사람인가?

그리고 바로 어젯밤. 정말 오랜만에 블랙 스타O스를 발견했다.  익숙한 포지션으로 내 차를

완벽히 가로막고 있었다.


엇?  여전히 잘 지내시나 보군  반갑기도...



러나 역시 밀리지 않았다. 주변을 둘러봤지만 지나가는 사람도 없었다. 하긴 매번 누구한테 도와달라기도 염치없기는 했다. 앞뒤로 한 번씩 더 밀어보다 안되니 결국 전화를 했다.  3 통화째에 전화를 받은 차주가 말했다.


"잘 밀어 보세요.  차에 짐도 많이 빼고 해서 좀 가벼울 거예요."

밀어봤는데 안 되는데요~~ 꼼짝을 안 해요.

차주가 다시 말했다.

혹시 힘이 없으신 건 아니고요?

힘이 없으신 거라고???

5분 후에 차주가 나왔다. 나를 보고 가볍게 목례를 하더니 차 앞으로 가서 보란 듯이 자기 차를 힘껏 밀었다.

봐요 밀리잖아요.
힘이 없으신 거예요.

감사하다고 인사하고 차에 오르는데 그가 다시 말했다.

힘이 없으신 것 같아서 그동안 차를 다른 데다 세웠었는데 오늘은 저만치 세워놨더니 누가 밀어서  여기까지 밀려왔네요.

말투며 행동이 좀 낯이 익다 생각해보니 얼마 전에  3대를 밀어준  바로 그분이 아닌가.

힘이 없다고?

왜 자꾸 나를 힘없는 사람 취급하는거야 ㅠㅠ  


차를 운전해 나오는데 핸들을 잡은 손이 끈적거렸다. 차체의 기름 낀 먼지가 손에 묻은 것인데, 힘없어서 못 민다는 소리에 멀뚱해하다 미처 못 닦은 것이다.  잠시 차를 갓길에 세우고 물휴지를 꺼내  끈적한 손을 닦으면서 생각했다.  


 나는 습관처럼 사무실과 가까운 방향 비슷한 위치에 주차를 해왔는데, 아마 스타O스 차주도 본인 집과 가까운 위치라 그곳을 주로 이용했던 것 같다.  그래서 동선이 겹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내가 왜 내 차 가는 곳마다 따라다니냐고 투덜대는 동안, 그도 하필 차 하나도 똑바로 못 밀어내는 힘없는 아줌마가 본인이 주차하고 싶은 곳을 먼저 선점하고 있는 것인지 못마땅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그 힘없는 아줌마가 매번 낑낑대면서도 다른 장소로 옮겨가지 않으니, 어쩔 수 없이 본인이 내 차를 피해 멀찌감치 주차하는 불편을 감수했던 것 같다.  또 기껏 피해줬는데도 다른 차량에 둘러싸여 오도 가도 못하는 걸 발견하게 되어 도와주기까지 했다.


보이지 않는 배려가 있었을지라도 내가 그걸 감지하지 못하고 패턴을 바꾸지 않으니 또 이렇게 전화로 불러내고 차를 빼줘야 하는 불편한 상황에 맞닥뜨린 것이다.


모든 우연은 필연이다. 우연한 일이란 실상 그렇게 많지 않다.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니, 악연이 아니라 인연으로 잘 풀어가는 것도 내 몫이다.  우리는 이중주차로 연을 맺은 셈인데 그는 내가 힘이 없어서 그런 것이라고 이해하려 한 것이고, 나는 가는 곳마다 따라다닌다고 신기해하며 킬킬거리기도 했다. 매스컴에서는 간혹 이중주차 통로주차 문제로 격한 싸움이 벌어지는 기사가 뜨기도 하지만,  우린 둘 다 나름 긍정적인 사고방식 때문에 악연이 아닌 인연으로 되고 있는 셈이다.

힘없다는 소리를 듣긴 했지만 힘없다고 생각하고 대신 차량을 밀어주기도 했으니 진짜 좋은 인연이 아닌가... 이런 것 하나 깨닫는데도 참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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