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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콩 Jan 19. 2021

사주 복채를 안받는 특별한 이유


"돈을 줘도 기어코 안 받는다. 어쩌면 좋냐 "


1월 초 눈이 펑펑 내리던 어느 날 친정엄마가 큰일 난 듯이 전화를 했다.  신년 운세를 봐준 역술인이 끝내 복채를 안 받았다고 한다. 친정엄마는 중요한 일이나 답답한 일이 생길 때 믿고 찾는 역술인이 있었다. 한때는 무슨 그런 델 다니는가 했는데 한해 한해 나이를 먹어가면서 나도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물론 그럴만한 계기가 몇 번 있었다.


첫 번째는 25년 전에 있었던 일이다.

당시 전문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못해 빈둥거리는 남동생을 불러올려 서울 노량진에 있는 IT 전문학원에 등록시켰다. 동생은 6개월 코스를 열심히 다녔는데 보람 없이 취업이 안됐다. 이곳저곳 닥치는 대로 원서를 내봐도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실업자로 1년 넘게 빈둥거리자 나는 그만 동생을 친정으로 돌려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취업하기 틀린 것 같다, 내려보낼 테니 오빠 가게에서 배달 일이나 시키는 게 어떻겠냐' 했더니 엄마는 신념에 찬 어조로 말했다.


" 아니다 갸는 누구 밑에서 일할 사주가 아니란다. 사업으로 성공할 놈이란다. 조금만 더 데리고 있어라."


사주? 사업? 취업도 못하고 빈둥거리는데 어느 세월에? 엄마 말을 믿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동생을 당장 내려보내지도 못했다. 몇 개월 후 동생은  대기업 계열사에 일본 파견 근무 조건으로 취업이 되었다. 일어는 커녕 한자도 모르는 동생은 그저 취직시켜 준다는 말에 다짜고짜 일본 파견 근무를 나가게 됐고 처음엔 고전하는가 했더니 금방 적응을 했다.


1년쯤 지난 후 동생은 일본에서 벤처기업을 설립했고 현재는 한국과 일본, 그리고 동남아 몇 곳에 지사를 둔 유망 IT 전문회사의 대표이사가 되어  종종 매스컴에도 오르내리고 있다.


두 번째는 둘째 형부 이야기다.  직장에 다니던 둘째 언니에게 중매가 들어왔다. 형부감은 당시 충청도 서산의 모 기업 사택에서 거주하고 있었는데, 엄마는 거리상의 이유로 반대했다. 큰언니가 서울에 살고 있어서 자주 볼 수 없음이 아쉬웠던 엄마는, 둘째 언니마저도 타 지역에서 결혼생활을 하는 건 싫다고 했다.  한동안 반대를 하던 엄마는 역술인을 찾아갔다 오더니  갑자기 결혼을 서둘렀다.


"사주쟁이가 그러더라 사윗감 꽉 붙드세요. 이 사람은  X 밖에 버릴 게 없는 사람이요."


지금은 우리 모두 그 말을 인정한다. 형부는 IMF 시절 대기업의 구조조정 열풍이 불던 때에도 꿋꿋이 살아남았고 현재까지 부의 축적 등 여러 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정말  X밖에 버릴 게 없는 인생을 살고 있다.


세 번째는 나의 일이다. 결혼 초에  남편이 사업하는 시누이 보증을 섰다가 직장을 그만두고  실직했던 시기가 있었다. 시누이는 미국으로 도망갔지만  채무는 남아서 월급까지 압류 들어오자 남편은 어쩔 수 없이 사표를 내고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당시 큰애가 3살,  둘째애가 막 태어나던 때라서 정말 어려웠다. 분유값도 부족할 지경이었다.


나는 이 사실을 친정에는 알리지 않았다. 괜히 걱정 끼칠 필요 없다는 생각에서다. 결국 남편은 재취업에 성공했고 채무도 청산해가면서 조금씩 회복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전화를 했다.


" 너네 부부 사주를 봤는데, 요번에는 못 맞추는 것 같다. 글쎄 너네가 몇 년 동안 힘들었을 거라고 하드라 그걸 다행히 잘 극복했으면 앞으로는 좋다고 하드라. 그래서 내가 아니라고 갸들은  어려운 적이 없었다고 잘못 보신 거 같다고 했다. 이상하지?"


나는 그때 비로소 엄마한테 사실대로 고백했다.


그때부터였다. 내가 얼굴도 본 적 없고 위치도 모르지만 엄마가 단골로 다니는 역술인이 정말 용하다고 믿게 된 것이... 물론 소소한 것은 뺐다. 예를 들면  엄마가 갓난 나를 업고 오빠 손을 붙잡고 그곳에 가셨던 적이 있었단다. 역술인이 등에 업힌 나랑 오빠를 보더니 말했다.


"고놈이 나중에 해외여행 보내줄 것이요"


엄마는 옆에 앉은 장남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아이고 우리 장남이  해외여행 시켜준다요?"


역술인이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요 등에 업힌 놈이요."


자라면서 이 말을 귀에 못이 박히게 들어서인지  나는 첫 해외여행을 가면서 엄마를 대동했다. 사주에 '있어서' 가게 됐는지 아니면 사주를 '들어서' 가게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엄마한테 해외여행 시켜드린 건 오빠가 아니라 나였다.


몇 번의 경험을 갖고 나니 나는 점점 명리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왕이면 손 없는 날을 따져 이사하고 집터 등의 풍수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러다 며칠 전 나는 엄마한테 신년 운세를 봐달라고 부탁을 했다.  작년에 병원에 입원한 일도 있고 큰 애가 취업을 앞두고 있어서 가볍게 올해 신수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내가 직접 어딘가를 찾아가는 건 좀 멋쩍어서 나름 전문가인 엄마한테 부탁한 것이다. 엄마는 단골로 다니시는 곳이 있고, 몇 번의 사례로 나름 검증이 됐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무 때나  날 풀리면 한번 알아봐 달라고 했는데 딸이 평소 안 하던 부탁을 하니 엄마는 서두르셨다.  바로 이튿날 찾아가셨는데  2시간여에 걸쳐서 4인 가족 1년 운세를 봐주더니, 복채가 얼마냐 물어도 괜찮다며 끝내 받지 않았다고 한다.  그냥 가라고 밀어내니 문밖으로 밀려 나온 엄마는 줄줄이 늘어선 예약 손님들 사이에서 기다리다가 그냥 돌아오셨다.


" 내가 뭘 잘못했나? 신년부터 돈을 안 받으면 되냐고 어떻게 운세를 공짜로 보냐고 해도  그냥 가라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왔다."


그 냥반이 그동안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는데 뭔 일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나도 걱정이 되었다. 엄마한테 전화번호를 받아서 전화를 했지만 받지 않았다.  계좌번호를 찍어달라는 문자를 보냈지만 답도 없었다.


내심 우리 가족 누군가가 올해 큰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쓸데없는 근심이 생겼다. 다행히 3일째 되는 날 통화가 되었다. 계좌를 불러주면 원하는 금액을 입금하겠다고 하자 그분이 말했다.


" 그 할머니가요 몇십 년 전부터 오시던 분이에요. 내가 잘 알아요. 근데 며칠 전 오시는 날이 눈이 함빡 많이 와서 길마다 수북이 쌓이고 꽁꽁 얼었어요. 우리 집까지 오는 길은 응달진 이면도로라서 녹지도 않았어요.


 전날 전화가 왔길래 눈 녹고 날 풀리면 오세요 했는데 그예 오신 거예요. 우리같이 허리 꼿꼿하고 다리 짱짱한 사람도  안 미끄러지게 조심해야 하는데,  8순 넘어 허리가 불편한 할머니가 얼마나 힘드셨겠어. 그 추운 날  딸네 식구들 거 봐준다고 날 찾아오셨으니 내가 돈을 받을 수가 없었어요. 좋은 마음으로 안 받는 거에요."


한사코 거절하였다. 진심을 알아달라고 했다. 주소라도 불러달라 했더니 주소 알려주면 뭐 보낼까봐 못 알려준다고 했다. 대신 나중에 좋은 일로 오면 그때는 돈을 받겠다고 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 어머니가 다 외우기 힘드실 것 같아서 중요한 내용 몇 가지만 적어서 우편으로 보냈으니 반만 믿으세요. 반은 맞고 반은 틀리는 거에요. 사주팔자가 인생을 결정하지는 않아요 어떻게 살고 어떻게 노력하느냐에  달린 거지.."


전화를 끊고 생각해보니 그동안 이 분은 엄마한테 덕담같이 좋은 말만 해주었던 것 같다. 백수로 빈둥거리는 아들놈 취업 걱정돼 찾아갔을 땐 당장 취업은 못해도 사업으로 성공할 놈이니 믿고 기다리라 했고, 먼 곳에서 직장 다니는 사윗감을 거절하려 하니 X밖에 버릴 게 없는 괜찮은 사람이라고 마음을 돌려세웠다. 나에게도 어려운 일을 잘 극복하면 좋은 날만 올 거라고 해주었고, 기억도 안나는 어린 시절 등에 업힌 갓난아이한테는 커서 엄마 해외여행 보내줄 기특한 녀석이라고 쓰다듬어 준 것이다.


덕담에 힘입어 긍정적인 마인드로 살다보니  안 좋은 것들은 가뭇없이 사라지고 좋은 것들만 쌓여서 오늘이 되었다.   


갑자기 1년 운세를 보겠다고  연로하신 엄마를 빙판길에  나서게 했지만,  덕분에 인생 길흉화복을 점치며 평생을 살아오신 분께  많은 것을 배우며  한 해를 시작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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