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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콩 Feb 10. 2021

큰엄마 갈비찜

"큰엄마 갈비찜이 제일 맛있어요~"

주부들한텐 명절 차례음식도 문제지만 오랜만에 모인 가족들이 먹을 몇 끼의 식사 메뉴도 큰 부담이다.  특히 요리에 소질 없는 나 같은 불량주부한텐 한걱정인데...

오래전에 갈비찜을 해줬더니  어린 조카들이  밥 한 그릇을 뚝딱 해치웠다. 다음 해에는 다른 메뉴를 준비했는데 반응이 그보다 못했고, 어린 조카가 주방으로 와서 '큰엄마 갈비찜 없어요?'라고 물었다.  동서는 아이들한테 고기를 구워주기는 해도 갈비찜을 해준 적은 없다고 했다.


"애들이 큰엄마가 해주신 갈비찜 너무 맛있다고 자꾸 이야기했어요."


동서 이야기를 듣고 기분이 좋았다. 살면서 내가 하는 요리를 칭찬하고 찾는 사람이 거의 없었으니 말이다.


그 후부터 해마다 명절 때면 갈비찜은 빼놓지 않고 메뉴로 집어넣었다. 장 보러 가면 정육점에서 갈비부터 샀다. 매번 갈비찜은 바닥까지 싹싹 비워졌다. 이번에는 무슨 요리를 할까 고민할 필요가 없었고 단연코 나의 대표 메뉴는 갈비찜이 되었다. 갈비찜을 너무 맛있게 잘하는 큰엄마. 아마 조카들은 어른이 된 후에도 '갈비찜' 하면 큰엄마가 생각나겠지.. 하하


나는 내가 요리를 안 해서 그렇지, 맘만 먹으면 갈비찜처럼 대박을 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지난번 가족 모임을 시댁에서 할 때도 나는 언제나처럼 마트에서 갈비찜용 고기부터 샀다. 갈비를 살 때마다 내 가슴은 자부심으로 출렁거렸다.  다른 식재료도 몇 가지 골라 계산하려던 중 계산대 옆에 놓인 갈비양념병을 보게 되었다. 행사상품으로 진열해둔 것이었다.


나는 요리 시에 양념을 사서 넣어본 적이 없다. 뭐랄까... 뭔가 인스턴트에다 조미료가 많이 들어갔을 것 같은 거부감인지 선입견인지, 아니면 주부로서의 자존심 때문인지 인터넷에서 레시피를 찾아보며 끙끙댈지언정 양념 자체를 구매할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그런데 그날은 갈비양념에 손이 갔다.  이번엔 한번 넣어볼까?

나는 이미 비찜을 너무나  잘하지만 구매한 양념을 섞으면 맛이 어떨까 궁금했던 것 같다...




시댁에 도착하여 갈비를 물에 담가 핏물을 뺀 후에 갈비양념 사 온 걸 부었다. 물론 잠시 망설였다.

늘 하던 대로 '큰엄마 스타일' 양념을 하고 조금만 섞을까 하다가... 양념 남겨놓으면 언제 쓰나 그냥 다 부어버리자 생각했다.  


속으로는 "이러다 양념이 너무 달거나 조미료 맛이 강하게 나서 갈비찜을 통째로 망치는 거 아냐?" 걱정도 됐다.  아 리스크가 크긴 한데...흠... 하지만 장거리 달려온 탓인지 피곤하여 에라 모르겠다 훅 부었다.

갈비찜을 차려 놓으면서 가족들 눈치가 보였지만, 다행히 다들 잘 먹었다. 조카들은 언제나처럼 잘 먹었지만 집에서 해줄 때는 별로 손을 안 대던 내 아이들도 유난히 잘 먹었다. 흡족했다.


그리고 다음날 돌아오는 차 안.. 뒷좌석에 앉은 아들과 딸이 갈비찜 이야기를 꺼냈다.

딸:  엄마 요번에 갈비찜 양념 바꾸셨죠?

아들:  맞아. 지금까지 했던 양념 맛이랑 달랐어요.

어라? 애들이 맛의  차이를 아네?  엄마 손맛을 구분하는군. 기특한지고..

딸: 그동안은  마트에서 양념 사서 넣으신 거죠?  산 양념이라 그런지 맛이 항상 똑같고 뒷맛이 썼어요.. 그래서 OO(아들)이가 엄마가 사서 쓰는 양념이 어디 건지  문제가 있다고 했었어요.  그 회사 양념 맛이 이상한데 왜 엄마는 항상 거기껄 쓸까 이상했어요.  그냥 고기 맛으로 먹었어요.


아들:  맞아 맞아. 그 양념 진짜 별로였어. 이번엔 엄마가 직접 양념하신 거죠?
뭔가 깊은 맛이 느껴지고 부드러웠어요. 역시 파는 양념하곤 비교가 안돼.  그래서 어른들이 손맛 손맛 하나 봐요~

딸:  그래그래 우리가 갈비 한입 맛보고 우와~  했잖아. 진짜 맛있었어요.
엄마! 이제부턴 양념 사지 말고 힘드시더라도 이번처럼 직접 양념해주세요. 엄마 양념 맛이 짱이예요!

....ㅠㅠ


음... 이젠  괜한 부담 없이 편하게 갈비양념을 살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고 딱히 즐겁거나 하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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