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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콩 Feb 14. 2021

아들 갖고 싶다고 장윤정의 속옷을...


"뭔 말도 안 되는 소리냐,  어처구니가 없다!"

엄마는 황당하다는 목소리로  연신 억울해했다.

"내가 니 오빠한테만 삼계탕을 다고? 야가 연초부터  이상한 소리를 하네.."

40년 가까이 된 일을 따지려고 꺼낸 것이 아니었다. 명절  장보기를 끝내고 폰을 뒤적거리다가 아들 낳고 싶다며 가수 장윤정한테 속옷을 달라고 한 팬이 있었다는 기사를 읽었다.



아이고야... 요새도 이런 사람이 있네 하다가 잠시 어릴 적 추억이 되살아났다.




중ㆍ고등학교 시절까지의 내 기억에는 늘 더운 여름날 마루에 걸터앉아 삼계탕을 먹던 오빠가 있다. 엄마는  5남매 중 장남인 오빠에게 갖은 약재를 넣은 삼계탕을 끓여 내놓았고,  오빠는 그런 대접이 당연한 듯이 잘 차려진 상 앞에 앉아 삼계탕을 뜯어먹었다.


여동생우리들한테 먹어보라거나 같이 먹자는 투의 말을 건넨 적이 없었고,  우리들 역시 먹고 싶다거나 한입만 달라는 말을 해본 기억도  없다.   불만을 품기는커녕 당연한 풍경 중의 하나라고 생각했다. 오빠만, 혹은 남자만 먹는 특식이라고 받아들인 것 같다.  

  단지 어른이 되어 살다 삼계탕 먹을 일이 생기면 영화의 한 장면처럼 마루에 앉아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삼계탕을 먹던 오빠와,
익숙한 풍경 너머로 보이던 마당 정원의 모란꽃이 생각날 뿐이었다.  

그러다 장윤정 속옷 기사를 읽고  어릴 적의 영상이 떠올라서 생각 없이 말을 꺼낸 것이다.

"요즘도 이런 사람이 있네.. 울 엄마도 아들이라고 오빠한테만 삼계탕 끓어줬잖아?"

"삼계탕?"

"어. 엄마는 항상 오빠만 삼계탕을 끓여줬잖아. 우린 구경만 했고"

계모도 아닌 엄마한테 어렸을 적에도 투덜대지 않던 일을 50대가 되어 새삼 서운하다고 따지겠는가. 무심코 내뱉은 말에 엄마는 세상 억울한 누명을 쓴 사람처럼 정색을 했다.

절대 오빠만 맛있는걸 따로 챙겨준다든지 하는 비정상적인  일은 없었다고, 당신은 그렇게 자식을 편애하거나 남녀 차별을 하는 편파적인 사람이 아니라고  이건 뭐 변명 수준을 넘어 아예 내 기억 자체를 뜯어고치려고 애다.

8순 엄마가 과하게 억울해하며 항의하니 어릴 적 기억이라 단편적인가 보다고 생각했다.


 독립영화의 한 장면처럼  나는 오로지 나의 시점에서만 내려다보고 있었던 것이고, 테이프를 좀 더 돌려보면 그날 오전에 엄마가 내게도 삼계탕 먹을래 삼겹살 먹을래 물었더니 내가 삼겹살!이라고 외쳤다던지, 아니면 삼계탕에 넣은  인삼이 내 체질과 안 맞아서  삼계탕을 권하지 못하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었다든지  말이다.


암튼 대수롭지 않게 정리하고 넘겼는데 하루 지나서  엄마는 다시 전화를 했다.
오빠만 삼계탕을 끓여줬다는 말이 아무리 생각해도 어이없어서, 혹시 당신이 기억 못 하나 싶어 오빠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하니 오빠 역시 펄쩍 뛰었다고 한다.

"갸는 뭔 소리를 한다요? 똑똑한 줄 알았는데 영 기억력이 흐리네. 당시만 해도 다른 집은 아들이라고 더 챙겨주고 그랬는데 우리 집은 먹는 것도 똑같고 공부시키는 것도 똑같고 아들이라고 특별히 혜택 본 것도 없구먼!"

그 일에 대해 누구랑 기억을 공유해본 적이 없는데 처음으로 말을 꺼내본 엄마랑 오빠가 사실무근이라고 반복 또 반복하니 머쓱해졌다. 따지자고 한 이야기가 아닌데 유난히 집착들 하시네 싶어서 "알았어요. 내가 잘못 생각했나 보네" 라고 꼬리를 내렸다.

그러다 다시 하루 지나서  둘째 언니가 담낭에 이상이 생겨 수술을 하게 됐다는 연락을 받았다. 보기엔 탈없이 건강해 보이던 언니는 본인이 어렸을 때부터 몸이 약했다고 했다.

"중학교 때 조회시간에 쓰러진 적도 있잖아.
내가 모유를 못 먹고 자라서 몸이 약했어."

?  언니는 나보다 키도 크고 몸집도 좋아서 기골이 장대하다고 놀리던 기억이 나는데 모유를 못 먹어서 약했다고?

"금시초문인데 왜 모유를 안 먹었어?"

"오빠랑 나랑 3살 터울이잖아. 근데 오빠가 5살까지 모유를 먹어서  나는 전지분유를 먹고살았지."

"헐? 진짜야? 오빠 미친 거 아냐? 징그럽게 왜 5살까지 모유를 먹었대?"

집안의 장손인 오빠는 할머니의 과도한 관심과 사랑을 받았다. 난 졸병 서열이라 어려서의  일은 기억에 없지만, 장손을 위해서라면 산삼이라도  구해먹일 태세였던 할머니는 3년 후에 딸 손주가 태어나도 엄마 품만 찾는 장손을 위해 계속 모유를 먹이게 했다.

"그 시절에 나한테  전지분유  먹인 게 내가 이뻐서였겠냐? 오빠한테 모유 먹이고 나면 나 먹을 게 없으니 고모가 분유를 타 먹였대잖아 "

헐. 그런 흑역사가 있었다니.

갑자기 삼계탕 생각이 났다. 엄마와 오빠는 내 기억이 왜곡됐다고 했는데 정말 그런 것일까?

"언니 궁금한 게 있어. 난 이상하게 어렸을 때 오빠가 마루에 앉아서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삼계탕 독상을 받던 기억이 있는데... 아닌가?"

말이 끝나기도 전에 언니가 소리쳤다.

"그랬지! 그랬지! 온갖 좋은 건 오빠 몫이었지. 오빠 혼자 갖은 보약과 소고기, 닭고기 다 먹고 컸지. 오빤 삼계탕 독상 받고 우린 닭 한 마리에 찹쌀 넣어 끓인 닭죽으로 나눠 먹었지."

세상이 하 많이  변해서 요즘은 '딸 가진 부모는 해외여행 다니며 호의호식 하지만,  아들 가진 부모는 노년이 쓸쓸하다'는 말도 생겼다.  그러나 남아선호 사상이 진하게 깔려있던 시대에 나고 자랐던 나는, 영악한 머리로 시대의 흐름을 읽고 빠르게 적응해나갔던 것 같다.

그래서 삼계탕 달라고 숟가락을 두드리거나 얌체같이 혼자 좋은 것만 골라먹은 오빠를 딱히 시샘한 기억도 없다.  다만 입으로 꺼내진 않았어도 왠지 불공평하다는 감정만은 기억 한편에 남아, 딸 시집보낼 나이가 다가오는 지금까지도 영화의 한 장면처럼  문득문득 떠올랐던 것 같다.


가수 장윤정한테 속옷을 달라고 할 정도로 아들 낳고 싶었던 엄마는 몇 살쯤일까? 그녀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딸은 이미 있어서 아들을 가져보고 싶었을까? 아니면 아직도 아들 손주 아니면 거들떠보지 않는 시댁 어른이 있는 것일까?


시대를 풍미했던 사상이나 중독성이 강한 문화는 강산이 수십 번씩  변해도 그 잔재가 쉽게 사라지지는 않는 모양이다. 

첨단 최신장비가 나와서 여기저기 소독을 해대도 바퀴벌레 박멸은 여전히 힘든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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