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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콩 Feb 17. 2021

아파트에서 뛰어내리고 싶어요!


"아파트에서 뛰어내리고 싶어요!"


명절 연휴가 끝난 월요일 아침에 [임대차 3법 상담센터]로 걸려온 첫 번째 상담전화였다. 여성 임차인은 떨리는 목소리로 서러움과 분노를 토해냈다.

월세 계약 만기일이 도래하자, 임대인은 월세를 시세대로 올리겠다고 통보했다.  현재 임대조건의 200% 가까운 인상률이었다. 계약갱신요구권을 행사하여 5% 인상률을 예상했던 임차인한테는 청천 날벼락이었다.

"임대인이 임대사업자로 등록했는데  임대사업자 등록을 한 후 체결하는 첫 번째 계약은 5% 이상 올려도 된다는 판단이 나왔. 지금 기회를 놓치면 앞으로 5%밖에 못 올린다고 원하는 대로 올려달래"

지난 1월에 나온 서울남부지방법원의 조정결정으로 인한 분쟁이다. 임대사업자 A씨는 2018년 12월에 세입자 B씨와  5억 원에 전세 계약을 맺고 2019년 1월 임대사업자로 등록했다. 지난해 12월 재계약을 앞두고 A씨는 3억 원을 올리겠다고 통보했고, B씨는 5% 인상하여 2500만 원만 올려주겠다고 맞섰다.

결국 소송으로 이어졌는데 조정 절차를 통해 A씨의 주장대로 3억 원을 올려도 된다는 결과가 나왔다. 임대 계약 갱신 시에  5% 이상 올리지 못하도록 한 '개정 주택임대차 보호법'의 취지와 다른 해석이었다. 누군가는 환호하고 누군가는 절망했다.

임대인은 명절 연휴에 인상분을 통보해왔고 당황하여 반론하는 임차인에게 문자메시지로 공략했다. 임차인은 코로나19로 일도 쉬고 있는 마당에 임대인이 원하는 금액으로 올려줄 형편이 안됐다. 쫓겨 나가더라도 형편에 맞는 집을 구할 수 없었다.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메시지들 속에 섞여 들어온 임대인의 주장은 명치끝을 짓눌렀다. 명절 연휴는 엉망이 되었다.

"아파트 시세가 많이 올랐는데 어떻게 5%만 올리냐고 그렇게는 못한대요. 안 올려줄 거면 이사 나가래요."

임대차 3법이 시행된 후 시장은 혼란의 쳇바퀴였다. 정신을 차릴 수 없게 쏟아지는 '예상 못한'  대책에 온 국민이 갈팡질팡했다.

변호사도 법무사도 관련 부처 공무원들도 바뀐 법령을 현장 상황에 맞게 풀어내지 못하자 결국 시ㆍ 도청에는 현장의  공인중개사들로 구성한 임대차상담센터가 꾸려졌다.  

기존에도 상가임대차나 주택임대차 상담센터를 운영하는 지자체가 있었으나, 잦은 대책으로 국민들의 문의전화가 폭증하자 상담센터 인원을 보강해 대민업무를 진행하게 한 것이다.

"거리로 쫓겨나게 될까봐 밤잠을 설치는데 하소연할 곳도 없어요. 그러다 임대차 3법 상담센터가 있다는 정보를 듣고 전화하게 됐어요. 상담사님! 저는 어떡해야 하나요? 왜 법이 이랬다 저랬다 하는 건가요? "

평소에는 아침 9시 반경에 집을 나서는데, 상담 일정이 잡힌 날은 오전 8시 반에 출발하여 1시간 여를 운전해  도 청사 민원실로  간다. 임대차 3법에 대한 기본 지식들은 어느 정도 숙지해가는 듯한데, 분쟁과 혼란은 오히려 심화되는 분위기다. 

"연휴 내내 머리 싸매고 끙끙 앓다가 아파트 옥상에뛰어내릴까 생각했어요. 아파트 값이 폭등했다고 감당하기 어려운 임대료를 요구하니 제가 옥상에서 뛰어내리면 아파트 값이 떨어질 거 아니에요. 그러면 임대료도 다시 내리겠죠."

아파트에서 뛰어내리겠다는 전화는 처음이지만, 임차인이 계약갱신요구권을 행사해서 집을 못 팔게 됐다는 70대 임대인의 하소연을 1시간 가까이 들어준 적도 있고, 임차인이 이사 나가겠다 해서 집을 팔기로 했는데 혹시나 계속 살겠다고 말 바꿀까봐 전화벨만 울려도 소스라치게 놀란다는  60대 아주머니의 전화도 받았다.

사는 곳도 연령대도 다르지만, 모두 부동산 정책의 변화로 생긴 걱정과 분쟁과 하소연들이다.

법령에 대한 오해나 잘못된 지식은 정정해서 바로 잡아주고, 이해를 못하는 내용은 사례를 들어 두 번이고 세 번이고 이해할 때까지 설명해준다.  그러나 가장 힘든 건 끝없는 하소연이다. 원하는 답이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임대차 3법을 이해 못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에게 닥친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법원의 조정은 당사자의 합의를 토대로 하는 것이라서 정식 판결은 아니라는 게 정부측 입장이에요. 지금도 국토부는 임대사업자도  5% 상한을 고수해야 한다고 해요. 계약 만기일까지 시간이  남았으니 너무 비관적으로 생각하지 마시고  상급심 판결이나 국토부 공식 입장이 나오길 함께 기다려보죠~."

단기간에 많은 대책들이 나오다 보니 충돌하는 사안이 생길 수밖에 없다.  

집값을 안정화시키겠다는 취지였지만 상한가를 갱신하는 부작용을 보이고 있고 전월세 매물은 자취를 감췄다. 임차인을 보호하겠다는 법이 역으로 임차인을 위태롭게 만들고 있다. 정부 발표와 법조계 해석과 판결 결과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고 희망고문의 롤러코스터가 삼천리를 유람한다. 누구도 의도한 바는 아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임차인을 궁지로 몰고 싶은 임대인은 없을 거예요. 극단적으로 생각 마시고  조금만 기다리세요. 만약 임대인과 합의점을 도출하지 못하여 조정 절차를 밟게 되더라도 지금보다는 원만한 해결책이 나올 거예요.  또한 현장에 혼선이 생겼으니 정부도 곧 합리적인 수습방안을 내놓지 않겠어요?"


나 역시도 정책이 100% 옳다는 생각은 안 한다.

이대로 믿고 기다리면 모든 것이 잘 될 거라고 장담할 수도 없다.  오죽 속상했으면 생면부지인 나한테  아파트에서 뛰어내리고 싶다는 말을 두세 번씩 반복하게 되었을까.


"알겠어요. 이제 좀 답답한 속이 풀리네요. 지겨운 하소연 들어주고 상담해주셔서 감사해요.  또 전화해도 되나요? 답답한 일 생기면 또 상담드려도 되나요?"

국가가 정책을 내놓았고 정책이 분쟁을 만들었다.
분쟁은 조정을 필요로 했고 조정 결과는 또 다른 분쟁을 만들었다.

다시 합리적인 해결책이 나와야 한다. 궁지로 몰리는 국민이 없어야 한다.  너무 늦지 않으면 좋겠다.


"네~ 얼마든지 전화하셔도 됩니다.  

그렇지만 아파트에서 뛰어내리고 싶다생각은 두 번 다시 하지 마시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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