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근의 새 아파트가 입주를 시작하자 상가마다 중개사무소들이 발 빠르게 입점했고, 복실이는 그 코너 자리를 꿰차고 들어온 골드미스였다.
4살 아래인 그녀는 어느 날 사무실로 찾아와, "우리 잘 지내봅시다! " 며 손을 내밀었다. 사교성이 없던 나는 그 도발적인 태도에 호감을 느꼈고, 복실이 역시 유난히 살갑게 굴며 귀염을 떨었다.
"나랑 언니가 궁합이 잘 맞대. 띠별로 서로 잘 맞는 게 있거든. 그러니 난 언니한테 붙어 다녀야 해."
왜 결혼을 안 했느냐 했더니 부모님을 일찍 여의고 세 자매만 남았는데, 웬일인지 막내인 복실이가 온갖 돈벌이로 언니들 뒷바라지를 해야 했다고 한다. 그러다 한번 크게 병치레를 하고 난 후 체력이 달려 몸으로 하는 일을 할 수 없으니 자격증을 땄다고 했다.
복실이는 유난히 추위를 탔는데, 어느 겨울엔가는 내 코트를 보고 복실복실 따뜻해 보인다고 똑같은 걸로 사달라더니, 꽃피는 3월까지 그 코트만 입고 다녔다. 같은 옷을 주구장창 입고 다니니 주변 공인중개사들이 쌍둥이냐 유니폼이냐고 놀려댔다. 그래서 나는 그 코트를 입지 못했는데 복실이는 단지 따뜻하다는 이유로 계속 입고 다녔다. 복실이라는 애칭도 그때 생겼다.
복실이는 해마다 연말쯤 되면 한동안 연락이 끊겨서 속을 태웠다. 다시 나타나면 나는 섭섭한 마음에 잔소리를 퍼부어댔다. 그렇게 우리는 자매처럼, 연인처럼, 그리고 껌딱지처럼 어울려 다녔다.
그녀는 일을 열심히 잘했다. 중개보조원을 셋이나 두고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1일 1 계약을 한다고 스스로 자랑도 했는데, 손님들 케어도 잘하고 하루 종일 바쁘게 움직이는 게 부러웠다.
복실이는 2010년경부터 더 바빠지기 시작했다. 2008년경 꼭짓점 찍던 집값이 하락하자 이집저집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집을 사서 대출을 full로 받은 다음, 싸게 전세를 맞췄다. 주로 오래된 아파트를 사들였는데 수리비를 아끼겠다고 밤이면 직접 페인트를 칠하고 도배를 하고 청소를 했다.
나는 틈만 나면만류했다. 중개사가 중개로 돈 벌 생각을 해야지 집장사를 하겠다는 거냐.. 이제 그만 사라.. 그러다 문제 생긴다.
그럴 때마다 복실이는 말했다. "언니는 너무 FM이야.. 고지식해... 그렇게 해서 언제 큰돈을 만져..."
그녀는 부양할 가족이 많아서 중개나 해서 먹고살 수가 없다고 했다. 돈을 빨리 벌어서 언니들 집도 사주고 빚도 갚고 좋은 차로 바꾸고 싶다고 했다.
자꾸 훈계하고 잔소리를 하니 만나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복실이가 사라졌다.
연말 때마다 사라지듯이 또 금방 나타나겠지 했는데 1주가 가고
한 달이 가도 나타나지 않았다. 사무실도 굳게 닫혀 있었다.
무수한 소문이 돌았다. 그동안 집을 20여 채 사들였는데 집값이 하락하자 깡통주택이 되어 경매 넘어가는 집들이 많아져서 결국 도망갔다는...
나는 그녀를 찾으러 집이고 관공서고 이리저리 헤매 다녔지만, 복실이에 대해 아는 게 없다는 사실만 깨닫게 될 뿐이었다.
그녀에 대해 체념할 무렵, 한 손님이 찾아왔다. 복실이한테 이사 가야겠다고 집을 알아봐 달라고 했더니 나를 찾아가라고 했단다. 연락이 되고 있다는 소리였다.그러고 보니 간혹 복실이 사무실에서 마주친 기억이 났다.
공동중개로 집을 구해주고 잔금 날이 되었다. 손님은 "중개보수는 복실이한테 주겠다"라고 했다. 나는 거절했다.
"제가 한 계약이니 일단 저에게 주세요. 제가 보관하고 있을 테니, 복실이한테 저에게 연락하라고 하세요"
연락 와라.... 연 락 와 라.....
복실이가 사라진 뒤 한 번도 걸치지 않은 코트를 보며 주문을 걸었다.연락이 되고 있다는 손님 말이 맞을까...
신기루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그녀 때문에 몇 날 며칠 불면에 시달리던 어느 날, 복실이의 차가 사무실 앞에 멈춰 섰다.
"나계룡산에 있는 조그만 암자에 있어.. 신내림 받았어.."
복실이가 아프다고 자주 병원엘 갔었고, 약을 한 줌씩 털어 넣곤 했던 건 주변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이다. 연말쯤이면 사라졌던 게 실은 추운 겨울에는 유난히 더 몸이 안 좋아서 병원에 입원했던 거라고 했다. 시도 때도 없이 아프고 치료받아도 그때뿐이었다고. 그러고 보니 그녀가 사주팔자에 집착하고 간간히 사무실 앞에 막걸리나 음식 같은걸 뿌려놓은 것을 본 기억이 났다. 그런데 무병이었다니....
"며칠 전 내림굿 받았는데 자꾸 언니가 우는 모습이 보였어. 나 때문에 울지 마. 나는 내 팔자대로 살 거야......"
사람들이 깡통주택 만들어놓고 도망갔다고 손가락질해도, 무리하게 돈 욕심 내더니 결국 그럴 줄 알았다고 고소해해도, 가족들 뒷바라지하느라 혼기도 놓치고 이름 모를 약들을 한 줌씩 털어 넣다가 깊은 산중으로 들어간 그녀의 인생이 나를 너무 아프게 했다.
출발하는 차창 안으로 봉투를 밀어 넣었더니 다시 밖으로 던져놓길래
"이건 중개사였던 너의 마지막 중개보수야. 가져가" 했더니 눈물이 그렁한 표정으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는 그렇게 떠나갔고, 나는 복실이의 거취에 대해 함구하는 것으로, 그리고 온갖 흉흉한 소문에 대해서는 부인하는 것으로, 소설 같은 이별을 받아들였다.
복실이의 집들이 깡통주택이 되어 경매에 넘어간 이듬해부터 집값은 다시 상승하기 시작했다.
그 후 다시 연락이 끊긴 채로 살다가 몇 년 후 여행겸 계룡산을 가게 되어,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여러 사찰도 들러보고 스쳐가는 사람들마다 유심히 살폈는데 그녀는 우연히라도 나타나 주지 않았다.
나에게 돌아오지 않아도 좋으니 부디 산에서 내려와 어느 따뜻한 지역에서 새로 중개업을 영위하고 있기를...
다시 중개업을 시작하거든 부동산 투기로 인생을 바꾸려고도, 남은 인생으로 지나간 인생을 보상받으려고도 하지 말고 순리대로 중개업 자체에 충실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