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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콩 Mar 19. 2021

사철나무를 바라보는 어느 아줌마의 자세

이기 머선 일이고~~

드디어 쓰러졌다. 내가 아니고 화분 속의 사철나무가...



가끔 손님들이 꽃이나 미니 화분을 가져다준다. 이사 나갈 때 짐이 너무 많다고 내려놓고 가기도 하고, 복잡한 일 처리되면 고마운데 딱히 줄 게  없다고 고이 기르던 화분을 사무실 앞에 놓고 가기도 한다.

어느 날 어떤 분이 조그만 모종 화분 하나를 저만치 탁자 위에 놓고 갔다.



저건 뭔고?
예쁜 꽃도 아니고 멋진 나무도, 앙증맞은 다육이도 아닌 것... 일별하고 말았다.

얼마 후 큰 화분이 생겼다. 빈 화분을 역시 누가 놓고 간 것이다.

마침 아파트 장날이었는데 때는 봄철이라  꽃장수가 들어와 있었다.  그래 바야흐로 꽃 피는 봄인데 예쁜 꽃나무 하나 사다 심자고 화초 구경을 하다가 그중 빨간 꽃이 새초롬이 핀 나무를 골랐다. 화분을 가져다줄 테니 거기로 옮겨 심어줄 수 있냐고 묻다가 갑자기 사무실 탁자 한쪽에서 볼품없이 말라가고 있는 모종이 생각났다.


일단 다시 들어가서 노려봤다.


- 넌 도대체 정체가 뭐냐...


인터넷 조회해보니 황금사철나무라고....


사람도 의복이 중요하고 음식도 담는 그릇이 중요하듯

화초도 심어진 화분이 중요할 텐데 플라스틱 모종 화분에 들어 있으니 아무도 쳐다보지 않았고  언제 물을 줬는지 바삭바삭했다.


"우리 이걸 저 새 화분에 옮겨 심자!"


했더니


"아니 그 이쁘지도 않은걸 뭣하러 이 화분에 옮겨 심어요?

어울리기나 하겠어? 이상하겠잖아요!"


직원이 에이~ 안 어울린다고 영 아니라고 투덜투덜하는데.


"얘도 한 번은 제대로 된 화분에서 살아봐야지.

그러다 금방 말라죽으면 그때 이쁜 화초 사다 심으면 되잖아..

쟤 안됐잖아. 저대로 두면 비좁고 해서 시들시들 말라죽을 거야.."


나는 나도 이해 안 되게 궤변으로 맞섰다.

화초 장수 아저씨한테 돈 드릴 테니  영양 듬뿍 담아서 옮겨 심어 달라했더니

황금사철나무 한번 보고 내 얼굴 한번 보고....ㅠㅠ

암튼 이 눈치 저 눈치 보고 옮겨 심은 뒤에 한 이틀 정도는 게으른 눈으로 들여다보고

직원 몰래 마시던 물도 뿌려주고..


사무실 화초 같은 거에 생전 관심 안 두더니 유난하다고 잔소리도 들었다.


그리고 잊었다.


황금사철나무도 1년  나도 1년....

우리 모두 똑같이 한 사무실에서 따로따로 1년.



어느 날 보니  잘 자라고 있었다..
제법 나무 태가 나고 윤기도 생겼고 키도 쑥 컸다.
어라~~ 대견했다.

화초 하나 자라는 모습이 이리 기분을 업 시켜줄 줄은..

살아가는 통(?) 이 중요하긴 했나 보다.

나는 속으로 외쳤다.

꽃을 피우는 나무는 아니지만,
꽃 피우는 것보다 더 장대하게 자라나길~~~

열매 맺는 나무는 아니지만

열매 맺는 것보다 더 큰 수확을 이뤄내길~~



진짜 잘 자랐다. 마치 포기하지 않고 새 삶을 살게 해 준  주인(?)의 은혜에 보답하듯이..

그러나 원래 있어야 할 곳이 아니어서 인지 뭔가 갈수록 휘청휘청 힘을 못쓰는 모습이었다.



그래도 뭐 더 쑥쑥 자라면서 영양분을 공급받으면 줄기도 굵어져서 튼튼히 자리 잡겠지.

왜 사춘기 아이들이 갑자기 쑥 키부터 커지면 미처 발육 상태가 따라오지 못해서 간들간들하다가 어느 순간 근육이 굵어지고 살도 붙고 나올 데 나오고 들어갈 데 들어가듯이 말이다.

나는 곧 사철나무도 그리 되겠지 했다.



그런데 그리 안됐다.


사철나무는 관상용이 아니고  

열매를 맺지도 않고

또한 약용식물도 아니므로

그 존재 자체로 유익을 주는 식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이름 없는 나무 하나에도 나름의 존재 이유가 있고 역할이 있고 있어야 할 "위치"가 있는 것을, 어느 날 내 마음의 치기로 어울리지 않은 화분에 옮겨 심어주었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나는 내심 특별한 것을 기대했는지도 모르겠다.

사철나무는 사철나무 일뿐인데 사무실 화분에 옮겨 심었다고  사무실에 어울리는 모양새로 자라날 리가 있겠나...


볼품없는 사철나무 모종에 뭔가를 베풀듯이 화분의 빈자리를 내어주며 찬란한 변신을 바란 것은 나의 만용이었고,
다시 제자리로 돌려보내 비와 바람과 발길에 휩쓸리며 굳건한 사철나무 본연의 모습을 찾을 수 있도록 옮겨 심어주는 것이 어쩌면 이제 내가 해야 할 숙제이다.


사철나무가 장미같이 화려한 꽃을 피우기를 바라지 말고,
사과같이 달콤한 열매를 맺기도 바라지 말고,
그저 사철나무답게 튼튼히 자라서 어느 담장 없는 한적한 시골마을의 울타리도 되어주고,

아파트 단지 화단의 경계선도 되어주고
나름 사철나무만의 존재가치가 빛나는 일에 쓰이도록 해주는 것이

사철나무를 바라보는 어느 공인중개사의 자세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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