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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콩 Apr 16. 2021

소원을 비는 신묘한 비법ㅡ  화장실 7일 기도

화장실을 깨끗이 치운 다음
종이컵 두 개를 가져다  하나는 정수기 물을 담고,
하나는 쌀을 가득 채워서 향 세 개를 꽂아.

그걸 변기 뒤 물 나오는 통 위에 올려놓고
물을 새로 받아다 변기에 쏟고 내리기를  4번 한 다음
다섯 번째 물은 향 옆에 올려놔.
그리고 합장하고 세 번 절한 뒤에 소원을 빌어!



소원을 비는 비법!


H여사님은  선생님(?)한테 어렵게 알아낸 비법인데 특별히 알려주는 거라고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수제자급 지인 몇 명한테 알려줬더니, 복잡한 문제가 소원 빈 후  바로 해결됐다고 꼭 해보라고 했다.

뭔가 이승 세계를 흔드는 천기누설급 신묘한 일급비밀이라도 알려주는 듯 눈빛이 흔들렸다.  

"음.... 오늘부터  6일 지나서 해.
한번 시작하면 같은 시간대에 해야 하고 하루도 빼먹지 말고 딱 7일간 해야 해! "

H여사님을 찾아간 건 어느 임대인 때문이었다.

이 임대인은 집을 몇 채 사서 세를 놓고 있는데  당시 8.2 대책에다 추석명절, 신규 대단지 아파트 입주시기가 맞물려서 도통 전월세 매물이 안 나가는 위기의 순간에 봉착했다.  그런데 그중 한 세입자가  만료일에 맞춰 미리 이사 갈 집을 계약해놓았다고 무슨 일이 있어도 그 날짜에 보증금을 반환해달라고 통보해왔다. 임대인은 당장 보증금 반환해줄 여력이 안되어 밤잠도 설칠 지경이라고 하소연을 했다.  

어느 날 또 방문하여 애달파하던 그녀가 갑자기

"혹시 용한 점쟁이 아는 사람 있어요?
답답한데 집 언제 나가나 한번 물어보게..."

점쟁이?  그런 사람은 만나본 적도 없고 아는 곳도 없는데?  하다가  문득 생각난 사람이  H여사님이었다.  
H여사님은 10여 년 전에 집을 사서 이사 들어왔다가 팔고 나간 아주머니인데. 명리학을 공부 중이라고 했다.
틈만 나면 들러서 사무실 풍수도 봐주고 어느 집에 수맥이 있네 없네 하는가 하면, 지나가다 우연히 만나도

"올여름에 문서 잡을 수 있네? 잘해봐요~"

라고 물어보지 않아도 한해 운세를 술술 풀어주었다. 어느 것은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어느 것은 그럴듯하기도 해서 혼자 신통방통해 하던 참이었다.

말로는 유명 연예인도 단골로 봐준다 어쩐다 하는... 암튼 내가 아는 사람 중 유일하게 그쪽(?) 분이었던지라 임대인이 절박해하니 담박 생각나서 알려줬다.

H여사님께 연락이 닿아 어느 카페에서 만났는데...
억지로 동행하여 하품을 하고 앉아있는 내 옆에서,  1시간 넘게 사주도 보고  용하다는 비법도 전수받았다.

며칠 후 임대인이 기도하는 비법이 헷갈린다고 다시 좀  확인해달라길래,  H여사님께 통화해 정리해주다가 문득.... 흠... 나도 해볼까?  진짜 소원이 이루어질까?... 쓸데없는  호기심이 발동했다.

그래서 그냥 구경만 하던 내가, 옆에서 하품하며 엿듣던 내가,  갑자기 '소원을 이루는 비법 7일 기도'에 돌입하게 되었다.  기도 제목은 밤잠 못 잔다는 임대인을 위해 '빨리 임대계약이 이루어지게 해 달라'는 것으로 정했다.

비법 기도 장소가 다행히  화장실이니 가족들 눈에 안 띄어 좋겠다 싶어 실행하기로 마음을 굳히고

거사일을 잡아 시작하려다 보니 첫날엔  향이 없고
다음날 퇴근길에 향을 사서 해 보려니 종이컵이 없고
또 다음날 사무실에서 종이컵을 챙겨가고 어쩌고 해서
H여사님이 지정해준 7일째가 되었다.

남편이 거실에서 TV 보는 사이에 안방 욕실에 종이컵 두 개를 올려놓고 향을 피우려 하니... 아뿔싸 라이터가 없네.. 더는 미룰 수 없어  할 수 없이 주방 가스레인지에 불을 켜고 향을 달궈서  슬금슬금 눈치 보고  안방 욕실로 가서 종이컵 위에 꽂고..(콧등에 식은땀이 줄줄...)

그리고  주방에  있는 정수기에서 물을 받아다 다시 안방 욕실로 가져와서 변기에 버리고 내리기 4번!
그리고 합장하고  


OO아파트  O동 O호 꼭 계약되게 해 주세요!...

그날 밤, 남편이 안방으로 들어오더니 킁킁 이게 무슨  냄새냐?  하고 의심스러운 눈으로 쳐다봐서 간이 콩딱콩딱..

아무튼 평소의 일주일은 쏜살같이 지나가더니만,  소원을 비는 7일은 참으로 더디고 길었다.  가족들 눈치 슬슬 보면서 들락날락거리며 소원을 비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더구나 신이 내린  개코(?)를 가진 남편 때문에  기도 끝나면 환풍기 틀고 안방 창문 소리 안 나게 열어 향냄새 쫓아내기... 그렇잖아도 남편이 '유물론(唯物論)적이던 여자가  부동산을 시작한 뒤로 주술적이 되어간다.'고 갸우뚱거리던 참이었으니... 들키면 영락없이 쫓겨난다 이거...

드디어 7일째.  휴... 이제 끝이다... 하고 컵을 들고 거실로  나가는데  딸아이가 팔짱을 낀 채 딱 버티고 서 있었다.

딸:  엄마!  머 나쁜 거 하시죠? 이상해~
     아까부터 계속 눈치 보면서 왔다 갔다?

남편: (심드렁) 너네 엄마 벌써 일주일째 저러고 있다.
        밤 11시경부터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눈치 보면서 컵을 들고 들락거리는데.. 그때마다 어김없이 이상한 냄새가 난다.

그러자 아들이...

누나 수능 합격 기도 하시는 것 같아요
한번 내다봤더니 기도하고 계셨어요..
(가족들이 안다는 걸 나만 모르고 있었음.... 원래 자기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은 자기만 모르는 법..ㅋ)

아무튼 수능기도를 한다고 오해하거나 말거나 우여곡절 끝에 7일 기도를 마쳤는데
하루가 지나도 이틀이 지나도 계약될 기미가 없었다.
젠장... 기도발이 머 이래... H여사에 대한 근본적인 의구심이 솟구치던  3일째 되는 날 오후,  세입자가  전화를 했다.

"중개사님!  우리 집 아직 임대계약 안됐죠?  

아직 계약 안  맞췄으면 이사 시기를  3개월만 미뤄주시면 안 될까요?  저희가 계약한 집이 문제가 생겨서 3개월 후에나 이사 들어갈 수가 있게 되었어요. 부탁 좀 드릴게요~"

ㅋㅋㅋㅋㅋ
이게 기돗발인가? 집은 여전히 안 나갔는데  세입자가  자진해서 몇 개월 더 살겠다고.......
진짜 7일 기도 덕분인지, 아니면 그렇게 될 운명(?)이었던 건지  어쨌든  골칫거리 한 가지는 해결이 되었다.

"별똥별이 떨어질 때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

소원성취에 관한 고전이다. 별똥별이 떨어지는 찰나,  그 짧은 순간에도 소원을 빌만큼 간절한 사연이라면

별똥별의 힘이 아닌 소원을 비는 사람의 ‘간절했던 마음의 힘!'으로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혹시 이건 아니지 알면서도,  이렇게라도 한번 해봐야지 하는 간절함으로
변기 위에 종이컵이라도 올려놓고 빌고 싶은  "소원"이 있는가

소원이 있다는 건 참 좋은 일이다.  

바라는 것, 원하는 것이 있다는 것은 미래에 대한 어떤 희망이나 가능성이 잠재되어 있다는 뜻이다.
간절한 마음, 간절한 갈망은 그렇지 않은 삶보다 훨씬 의미 있고 풍성할 것이다.

 

화장실 7일 기도는 아니더라도 풀리지 않는 일에 대한 불편함과 부담을 가진 이웃이 있다면

함께 걱정해주고 함께 염원해주는 오지랖도 그렇게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리운 벚꽃향과 아쉬운 꽃샘추위가 어우러지는 4월은 참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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