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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콩 May 13. 2021

아들이 물었다. "왜 취업을 해야 하죠?"

기숙사에서 생활하던 아들이 수능을 끝내고 짐을 꾸렸다.  원하는 대학에 수시 합격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 마음이 편한 상황이었다.

아들의 꿈은 초등학교 3학년 때 결정되었다.  평소 아빠를 좋아하고 따르던 아들은 공무원인 아빠의 모습이 보기에 괜찮았는지,  어느 날 아빠에게 공무원의 초봉을 물었다.  9급 공무원, 7급 공무원, 5급 공무원의 연봉을 묻더니 당연한듯 5급 공무원으로 결정했다.

그 후부터 학기초에 써내는 생활기록부에는 장래희망이 항상 공무원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 담임 선생님이 말했다.


 "00이는 신기해요. 보통 이 나이 때는 대통령이 된다는지, 사업가 혹은 검사 변호사 등의 나름 쟁쟁한 꿈들을 기록하는데, 얘는 쭈욱 변함없이 공무원이에요, 이런 애들 별로 없어요"

초등학생 때부터 계산기를 두드려 연봉 비교를 하고 행정고시를 결정한 아들은 중등 고등 공부도 나름 열심히 했다. 친구들이 놀 때도 학원을 가고 밤 늦게까지 책상에 앉아 있는 아들 모습이 안쓰러웠지만, 똑똑하고 합리적인 녀석이니 보다 안정된 직업을 갖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고 생각했다. 기특했다.


그런 연장선상에서 수능이 끝나고 기숙사 짐을 꾸려 오던 날, 차 안에서 아들이 물었다.

"엄마!   저는 엄마 아빠도 원하시니까  행정고시를 보긴 할 건데요,  진짜 궁금해서 여쭤봐요. 왜 제가 공부를 해서 취업을 해야 하죠? "

oh my god!


지능검사에서 149 이상 상위 그룹으로 나온 똑똑한 내 아들놈이 저런 형이하학적인 질문을 하다니....

"왜 취업을 해야 하다니? 취업해서 돈을 벌어야 먹고 살 거 아니니?"

이런 너무나 당연한 대답이라니... 운전을 하던 남편과 나는 서로 황당한 눈빛을 교환했다.

"돈을 꼭 벌어야 하나요?  지금 제가 돈 안 벌어도 아무 문제없잖아요, "

다시 oh my god!

저 녀석 지능검사 결과가 진짜 149 였던가? 가물가물 하네... 혹시 49였는데 내가 내 아들이라고 착시현상을 일으킨 건가....

"자금은 엄마 아빠가 열심히 일해서 버는 거고, 너희들이 크면 너희들이 자급자족해야지. 자급자족이 뭔지 알지?"

휴... 부모 자식 간의 대화가 맞는가...

"알죠. 그런데 제가 왜 그 힘들다는 행정고시 준비를 해서 꼭 돈을 벌어야 하나요?
그냥 지금처럼 살아도 되잖아요."

호야..... 이런 캥거루족 같으니라고..






10여 년 전에 전세로 입주해 살다가 아파트를 매수한 손님이 있었다. 60대 후반 박 여사님은 어느 날 사무실로 와서 말했다.

그녀는 강남 대치동 내로라하는 학군에서 넘버3  안에 드는 잘난 아들을 둔 학부모였다. 아들이 공부 잘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세상 부러울 게 없었단다. 학원이고 학교고 목에 힘주며 치맛바람 날리던 그녀... 모두가 부러워했던 잘난 아들, 공부 잘하는 자식을 둔 부모는 그것만으로도 세상을 다 가진 듯 충분히 행복하다

그런데 명문대 합격하고 유학까지 다녀온 아들은 언제나 방에만 틀어박혀 있었다. 공부하는 건 좋아했지만, 책상에만 매달리다 보니 세상 돌아가는 것에도, 그리고 사교성도 모두 수준 이하였다. 공부하는 것이 젤 쉽고 행복하던 아들이지만  언제까지 공부만 계속할 순 없었고, 결국 원하는 곳에는 취업이 안되고 기대치는 못 미치다 보니 허송세월만 흘렀다.

주변의 뜨거웠던 기대가 차가운 시선으로 바뀌자,  저돌적인 관심에 위축된 아들은 대인기피증까지 생겨서 더 깊숙이 방안에 칩거했다. 방에만 틀혀박혀 있다가 혼기도 놓쳤고 나날이 사회 부적응자가 되어갔다. 이제 그녀는 아들이 좋은 곳에 취업을 했으면 좋겠다는 기대는 버린 지 오래이고,  그저 나쁜 생각 안 하고 건강하게 살아있어 주기만을 바라는 소박한 염원으로 살아가고 있다.

"공부하라고 하지 마세요. 공부 잘하는 거 꼭 좋은 게 아니에요.
하고 싶은 거 하고 사람도 만나라고 하세요. 저는 아침마다 아들이 밤새 안녕했는지 슬그머니 아들 방문을 열어보면서 하루를 시작해요."

결국 학창 시절 수재로 유명했던 아들의 거취를 궁금해하는 이웃들의 눈을 피해 경기도 외곽으로 내려왔다는 그녀가 왜 불현듯 생각나는 것인가.







나는 아들한테 단호해지기로 결심했다.

"너도 네가 벌어서 먹고 살아야지. 지금은 학생이고 미성년자니까 엄마 아빠가 부모로서의 역할을 하는 것이지만, 그건 대학 졸업  후 취업할 때까지 만이야"

취업 역시 아무리 늦어도 30세까지만 지원할 거야. 취업하면 그때부턴 10원 한 장 지원 안 할 거야.

어떤 곳에 취업해서 어떤 일을 하며 돈을 벌 것인가는 똑똑한 네가 결정해. 좀 더 여유롭게 살고 싶다면 그 수준에 맞는 생활을 영위시켜줄 수 있는 직업을 가져야 하고, 대충 아등바등 살고 싶으면 좀 편하게 준비해도 돼.  네가 어떤 직업을 가져서 얼마나 버느냐에 따라 네가 살 집이 결정돼.  그리고 너에 의해 네 가족들의 생활수준도 결정돼. 너의 미래는 오로지 너의 현재에 달려 있어.

"왜냐면 엄마 아빠는  노후준비에 돌입할 거라서 이젠 너한테 신경 쓸 여력이 없거든. 너한테 엄마 아빠의 노후를 맡기지도 않을 거고 너를 계속 지원하지도 않을 거야. 우리 각자 성실하게 자기 인생을 개척하는 거야"

아.. 아들은 고개를 끄덕끄덕 했다. 하긴,,, 우리 엄마는 항상 저렇게 냉정했지...라고 생각하는 표정. 체념한 듯, 결심한 듯 아들이 말했다.

"이제 알겠어요. 제가 왜 공부하고 취업하고 돈을 벌어야 하는지.. 저는 지금 사는데 큰 불편이 없어서 앞으로도 그럴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엄마 아빠의 고생으로 제가 편하게 살았던 거네요. 알겠어요. 행정고시든 뭐든  준비할게요."

남편과 나는 다시 안정된 시선을 교환했다.  대학 입학을 앞둔 아들의 질문이 황당하기는 했지만 그동안 경제교육을 제대로 시켜본 적 없고 자립심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가 없었던 탓이려니 했다. 사실 그런 이야기를 할 기회가 없는 것이 우리 현실이다.

요즘 애들은 부모가 하나부터 열까지 다 챙겨주니 부족함을 모르고 자라 생활 감각이 없어서 그런 거지만, 우리 아들은 나름 똑똑한 놈이라 금방 알아들어 다행이다 했다. 역시 잘못 본 게 아니라 149가 확실해. 다시 마음이 평안해지려는 찰나 뒷좌석의 아들이 말을 이었다.

"엄마!  저는 애는 딱 하나만 낳겠어요.
제가 커보니 애 키우는데 돈이 너무 많이 들어서 저는 엄마 아빠처럼  둘은 못 키워요. 아예 안 낳을 순 없으니 하나만 낳아서 좀 부담 없이 살아야겠어요."

oh my god!


우리 세대는 육아와 교육에 얼마나 많은 돈이 들까 미리 계산해 보지 않고 출산을 했는데, 요즘 애들은 확실히 다르다.  


우리에겐 취업도 필사적인 문제였다. 그동안 생을 바쳐 키워준 부모에게 보답도 해야 하고 내 가족과 후세를 위한 필연적 의무라고 받아들였다. 그런데 요즘 세대들은 모든 것에 유불리를 따지고 계산한다.  그 계산의 중심에 '나'가 있다. 어찌보면 합리적이고 어찌보면 이기적이다. 이런 사고방식이 좋을까 나쁠까에 대한 답을 보류하고 싶다. 아들이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잘못됐다고 단언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변화된 세상에 발맞춰 똑똑하게 잘 살아남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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