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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콩 May 04. 2021

내 아들의 독서실은 어디인가

한강 사망 대학생의 명복을 빕니다.


12시경.  

10분 거리의 독서실에 간 아들은 오지 않고, 비만 억수로 왔다.

언제 오려나 전화 걸어봤더니, 공부에만 전념하겠다는 일념인지 실수인지 항상 끼고 살던 휴대폰이 책상 위에서 울었다.


어이쿠 폰도 놓고 갔으니 우산 가져다 달라고 전화도 못하겠네....

어느 독서실로 갔을까 고민하다 밤 12시 30분경에 우산 2개를 들고 집을 나섰다.
회식자리에서 한 잔 걸치고 온 남편은 '사내 녀석이 알아서 오겠지' 하며 코를 디립다 골고 잤다.

사춘기도 순하게 넘기던 녀석이 공부 스트레스로 짜증을 내길래 좀 냉랭하게 대했더니
섭섭했는지 며칠 뚱하던 참이었다.


우산 들고 마중 가면 뚱한 마음도 좀 풀리겠지



비 내리는 밤길은 생각보다 칙칙하고 미끄러웠다. 갑작스러운 집중호우로 어디선가 떠밀려온 돌덩이에 두 번이나 발도 접질리다 보니, 어느새 바짓가랑이는 폭닥 젖어서 체중을 끌어내렸다.  가로등 조차 비에 덮여 어스름해졌는데 어둠 속에 내 아들 키만 한 형체가 성큼성큼 걸어오길래 일순 반가워 고개를 들이밀었더니,  책가방을 머리에 인  남학생이 생쥐처럼 흠씬 젖어 있었다.  남일 같지 않아 우산을 씌워주려 했더니 경계하며 뒤로 물러섰다.


맞다. 갑작스럽게 쏟아져 길을 막는 집중호우보다 더 무서운 게 사람인 세상이다.

나는 한껏 선한 표정을 지으며 호소했다.


"아줌마도 독서실 간 아들 데리러 가는  거예요. 아파트 현관까지만 쓰고 가요.

아줌마가  따라가서 우산 돌려받을게요."


우산을 내밀었더니 처음엔 거절하다가 대한민국 아줌마 압력에 못 이겨 결국 받아 들었다.  불편하지 않게 거리를 두고 졸졸 따라가다가 현관에 도착해서 우산을 넘겨받고 보니 어느새 1시 가 조금 넘었다.


나는 아들이 어느 독서실을  다니는지 모른다. 독서실이 이렇게나 많았나. 어둠 속에서도 간판은 여기저기서 빛나고 있었다.  어느 독서실에 갔는지를 모르니 어쩔 수 없이 보이는 독서실마다 순차적으로 오르내리기로 했다.


독서실들은 거의 다 높은 층에 위치하고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있는 건물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르고,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은 어두운 계단으로 올라갔다. 독서실들은 깨끗하고 시설 좋은 신축건물보다는  낡고 지저분해 보이는 건물에 있었다. 위치 좋고 깨끗한 건물에는 주로 유흥시설이나 식당이 모여 있었다.


 어떤 건물은 최상층에 있는 독서실까지는 엘리베이터가 연결이 안 되어 있어서 전층에서 내려서 어두컴컴하고 적치물이 많은 계단을 오르내려야 했는데, 그렇게 세 군데를 들러도 아들놈은 없었다.  카운터에서 아들 이름을 대면 컴퓨터로 조회해보고 '없어요!'라고 했다.


건물마다 오르내리기를 반복하다 나는 문득 이란 영화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가 생각났다.


아마드의 짝꿍 네마자드는 숙제를 공책이 아닌 종이에 해왔다고 선생님한테 혼났다. 선생님은 한 번만 더 그렇게 하면 퇴학시키겠다고 경고했다. 그날 아마드가 집에 와서 숙제를 하려고 보니 짝꿍 네마자드의 공책이 딸려 나왔다.  이런...  짝꿍 네마자드가 공책이 없어서 숙제를 못해올까 봐, 그래서 선생님한테 혼날까 봐, 산 넘고 강을 건너 친구의 집을 찾으러 나서는 여덟 살 아마드의 이야기. 그러나 그 동네에 네마자드라는 이름의 아이가 한 두 명이 아니라서 결국 못 만나고 돌아온다는..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영화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의 한 장면


내가 오늘은 아마드인겨.

내 아들의 독서실은 어디인가!
무슨 독서실이 이리도 많은 것인가.
그리고 이 녀석은 진짜 공부하러  것인가  아님 놀러 간 것인가.


어둠 속에서도 밝게 빛나는 PC방 간판이 발길을 잡아끌었지만 나는 아들을 믿기로 했다.  실은

PC방에서 아들을 만나느니 밖에서 헤매는 게 더 낫겠다고 생각했다.

네다섯 군데를 돌다 보니 저질체력이 동이 났다. 슬리퍼 행색이라 빗길을 걷기도 불편했다. 발은 빗물에 휩쓸려 불어오르기 시작한 듯하고  바지는 무릎 너머까지 축축해지고 있었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지. 이 밤에 비 맞고 오게 할 수는 없잖아.


나름 머리 쓴다고 집으로 가는 길이 모아진 모퉁이 문구점 앞에 쭈그리고 앉았다. 취객들이 고성을 지르기도 하고 몇몇이 빗물을 첨벙거리며 몰려가기도 하는 야심한 밤거리..


이런 풍경 너무 낯설다.


이 정도 위치면 어느 쪽에서 나와서 눈에 띌 거야. 내가 미처 못 보면 녀석이 나를 보겠지.


혹시 독서실 오르내리는 사이에  비 쫄딱 맞고 집에 가버린 건 아닌가 싶어서 아들 휴대폰으로 전화해봐도 받지 않았다. 언젠가 아들이 독서실은 새벽 1시 반에서 2시에 문 닫는다고 한 적 있으니 곧 오겠지 하고  길 한가운데에 쭈그리고 앉아서 고개만 요리조리 잽싸게 돌리고 있었다. 지나가는 행인들이 신기한 듯 바라보았지만


무슨 상관이야  나는 내 아들 기다린다!


10여분쯤 지났을까.. 어둠 속에서 우산을 쓰고 성큼성큼 다가오는 형체가 어째 내 아들놈 같았다.


저 걸음걸이 봐라  좌우로 끄덕끄덕

딱 알겠어!


반가워 발딱 일어서니 소스라치게 놀라며 멈춰서는 아들.  녀석은 놀란 눈으로 엄마를 한참 동안 쳐다보았다.


우리 엄마가 이 시간에 이런 곳에 쭈그려 앉아 있었다니,,

아들은 울컥했는지 말을 못 하고 눈만 꿈뻑꿈뻑하더니 고개를 숙였다.


"뭐하니?  가자!"


비는 모자의 조우를 기다렸는지 어느새 잔잔해졌다. 원래 말없는 아들이 한참을 걷다가 물었다.

-저기 앉아 계신지 얼마나 되신 거예요?
-조금밖에 안됐어.
-이제 그러지 마세요. 우산 필요하면 제가 편의점에서 사면 되잖아요.
-아 그렇구나... 난 혹시 돈이 없을까 봐
-카드 주셨잖아요.

아 그랬나... 다시 침묵이 흐르고 한참을 걷는데


-피곤하시죠?
-아닌데 괜찮은데..
-이제 정말 나오지 마세요. 저 다 컸어요.
-알았다고,,,

다시 침묵, 다시 걷다가 아들이 멈춰 섰다.


-며칠 전에 짜증내서 죄송해요 다신 안 그래요
-엄만 잊었는데....?

비는 어느새 잦아들고... 세상에나... 별이 하나둘씩 내다보기 시작했다.

아들과 나는 같은 길을 서로 다른 생각을 하며 걸어서 집으로 왔다.


빗물에 흙먼지까지 튀어 오른 옷을 세탁기에 넣고 다시 씻은 후 자려고 누웠는데,  카톡 알림음이 렸다.
일어나 열어보니 아들 녀석.

엄마 감사해요. 안녕히 주무세요.


집중호우 속에 발접질리며 오르내리던 어두운 건물 계단이 잊혀졌다. 밤거리의 낯섬과 스산한 냉기도 잊혀졌다. 빗물에 오른 발가락의 이물감과  발목의 욱신거림도 잊혀졌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아들을 익사체로 맞이한 부모의 심정은 어떠할까....
한강에서 실종됐다가 숨진 채 발견된 손정민 군의 명복을 빌며 예전 일을 떠올려 보았다.


이 세상의 아들 딸들아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부모 마음을 생각해 항상 안전에 만전을 기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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