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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콩 Apr 29. 2021

고등학교 입학식 날 나눠준  산세베리아의 꿈

아들의 고등학교 입학식 날..

학교에서 조그만 산세베리아 모종을 나누어 주었다.






마이크를 든 사회자 선생님이 말했다.


"어머니들!  이 모종을  3년 동안 잘 키워보세요~
이 모종이 잘 크면 우리 아이들도 학교 생활 잘하고 좋은 대학......"

우~~~~


객석에서 비명인지 탄성인지 모르는 소리가 퍼져 나왔다.

모르면 몰라도 학부모들은 나처럼 모두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아무리 소리 없는 식물이라도 저절로 자라나진 않는다. 미세한 환경의 영향도 받고 화초의 종류별로 물의 양이나 주기도 다르기 때문에  화초 키우기가 별거 아닌 것 같아도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다.  사람에 따라 유난히 잘 키우는 사람도 있고, 나처럼 바쁜 일에 치어 무심한 사람은 가져다 놓을 때만 예쁠 뿐 얼마 안가 시들시들 말라죽어 빈 화분만 남기도 한다.


아우... 학교에서 모종을 나눠주면서 아이들의 학교생활과 대학 진학으로 연결시키다니... 물론 참신하고 좋은 의도겠지만 '그런 의미' 있는 화분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나같은 학부모에게는  부담백배였다.


혹시 산세베리아  잘못 키워서 죽기라도 하면..!
하필 가장 중요한 고교시절에 모종을 주면서 의미를 부여한담..ㅠㅠ....

나는 제대로 화초를 길러본 적이 없다. 바깥일이며 집안일에 바쁘게 얽혀 살다 보니, 늘 제때 물 주는 걸 잊어버린다.  사무실 화초도 그나마 살뜰한 실장님 덕분에 겨우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데....



아니지 그래도 아들놈 학교에서 준 거니  잘 키워야지!



단디 결심하고 집에 모셔와서 화분에 옮겨 심고 아침저녁으로 공을 들였다.


어라 잘 크네?

설마 내가 화초 기르는 것에도 소질이 충만했던 거야?


우려했던 것보다 쑥쑥 잘 크길래 이내 안심되고 흡족했다.



그런데 두 달쯤 지난 아침,  남편이 발코니에  나갔다 오더니 소리쳤다.

"야야~ 이거 밑이 다 물렀다. 다 죽겠다. 버려야겠다"

헐.... 뛰어나가 보니 그동안 열심히 물 줄 때는 푸르고 싱싱하게 잘 자라는 것처럼 보였는데,  자세히 보니 밑동이 물러서 픽 픽 꺾이고 쓰러진 줄기도 있었다.


아이고~~ 잘 자란다고 좋아서 물을 너무 많이 줬나 보네...

나는 나대로 남편은 남편대로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입학식 날의 사회자 선생님 목소리가 하루 종일 귓전을 울렸다.


"어머니들!  이 모종을  3년 동안 잘 키워보세요~
이 모종이 잘 크면 우리 아이들도 학교 생활 잘하고 좋은 대학......"


휴,,,


그날 저녁에 우리 부부는 약속이나 한 듯 칼퇴근을 하여 발코니에서 만났다. 머리를 모았다.

남편 : 주말이 돌아오기 전에 어떻게 해보자

나 : 그러게 이 녀석이 토요일날 왔다가 혹시 보면 실망할 건데... 가뜩이나 성적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데..


아들은 학교 기숙사 생활을 해서 주말에만 집으로 왔다. 우린 아들이 오기 전에 산세베리아를 다시 재건(?)시켜야 했다.

인터넷을 조회해보니,  산세베리아 밑동이 무르면 다 뽑아내서 밑동을 잘라 그늘에 말린 다음 다시 분갈이를 해주면 된다고 적혀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갑자기 금슬 좋고 살뜰한 부부처럼 붙어 앉아서 뽑고 자르고 말리고 했다.

어떻게든 살려야 해. 아들이 돌아오기 전에 살려야 해.

그리고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는 계속 살아있게 해야 해!


반드시 그래야 해!




물러진 밑동을 자르고 신문지에 말려놓은 산세베리아를 아침저녁으로 열 번씩은 들여다보았다. 남편과 나는 따로따로도 들여다보고 어쩌다 동시에 들여다보기도 했다. 다 큰 어른들이 온통 산세베리아에 빠져 있었다.   

눈으로 째려본다고 잘 마르는 것도 아닌데 우리는 그렇게 했다.  그리고 꼬들꼬들 잘 말랐다고 생각된 금요일 저녁에 드디어 화분에 옮겨 심었다.  





 
잘 키워보겠다고 물을 너무 많이 준 것이 문제였다.


과ᆞ유ᆞ불ᆞ급...

화초 키우는 일이나 사람 사는 일이나 너무 넘치면 안 된다는  이 진리는 똑같이 통용되는 듯하다.

부족해도 안되지만 너무 넘쳐도 안된다. 시기도 잘 맞춰야 한다. 뭐든지 그래야 한다.  

어느 날 아들놈이 보면
"어라~?  뭔가 짧아진 듯...?!  화분도 달라진듯?"  이런 생각을 가질 수도 있지만
물러서 죽어버리는 것을 보고 실망하는 것보다야 낫지 않겠는가.

함께 고교생활을 시작한 산세베리아가 싱싱하게 잘 자라주고 있어야 힘든 입시와 성적에 치어 버거운 고교생활을 잘 마무리할 수 있을 게 아닌가...

다음 날 아들은 밤늦게 집으로 돌아와 발코니의 산세베리아를 둘러볼 틈도 없이 곤한 잠에 빠졌다.

나는 잠든 아들방을 들여다본 후, 발코니로 나와 산세베리아 앞에 한참을  쭈그려 앉아 있었다.



살다 보면  말이다.
이렇게 썩고 곪은 것을 도려내고
굳은 의지로 다시 시작해야 하는 일들이 있다.
고통이 따르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때가 있다.
순탄한 정진도 좋지만 다시 가다듬고 정제하여 새 출발 하는 것이 더 나은 경우도 있다.

그래야 새로운 희망이 생기는 거니까...



산세베리아가 화초라곤 제대로 길러본 적 없는 서툰  주인의 손을 거쳐 다시 잘 자랄 수 있을까?
다시 뿌리를 내리고 쑥쑥 자라서 아들에게 희망이 되어줄 수 있을까?

그래서 언젠가는 그 귀하다는 꽃도 피울 수 있을까?

밑둥치 잘려나간 산세베리아에게 내 마음을 괴롭히는 어떤 욕망도 걸고,
혹시나  반짝이는 사소한  꿈도 걸고, 아들의 건강과 즐거운 학교생활도 걸어보면서,

나는 쓸데없이 단단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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