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주한 출근 시간, 어느 때처럼 머리를 감은 후에 수건으로 머리를 둘러싸고 면봉으로 귀를 닦았다. 머리를 감으면 면봉으로 귀를 닦는 습성이 있다. 그러지 않으면 귀에 습기가 차고 물방울이 달려 있는 듯 간질간질하다. 아무리 바빠도 한번 쓰윽 후벼줘야 시원하고 마무리한 기분이 든다.
습관처럼 오른쪽 귀를 닦고 있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11시 잔금인데 이사 나가는 세입자가 생각보다 짐이 빨리 빠졌다고 잔금 시간을 당겨줄 수 없냐고 물었다. 알았다, 임대인이 빨리 오실 수 있는지 연락해보겠다 하고 끊었다.
그리고 수건을 풀어서 양쪽 귀까지 덮고ㅡ 영화처럼 머리를 양쪽으로 흔들어 풀어헤치고ㅡ 양 손바닥을 쫘악 펴서 한번 빠악~! 쳐 주었다.
그리고 쓰러졌다....
그러니까 오른쪽 귀에 면봉을 넣고 닦다가 핸드폰이 울리자 면봉을 귀에 꽂은 채 통화를 한 뒤, 면봉이 귀에 꽂혀 있다는 사실을 깜빡 잊고 수건을 귀에 대고 손바닥으로 한번 거세게 쳐주었으니... 꽂혀있던 면봉이 여지없이 귓속으로 ㅡㅡㅡ.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충격과 고통. 눈에 불이 번쩍 튀고 너무 아파서 바닥을 뒹구는데, 당시 유치원생이던 아들놈이 엄마의 외마디 비명을 듣고 튀어나와서 바닥을 뒹구는 모습을 보았다.
"엄마! 엄마! 엄마 죽어요? 119! 119 부를까요?"
"악 하지 마! 하지 마! 엄마 안 죽어"
아 무슨 119.. 잠시 엎드려 있었더니 괜찮아졌다. 면봉을 빼보니 쏙 빠졌다. 머릿속에서 폭탄이 터지는 것처럼 충격이 거셌는데 면봉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출근해서 잔금 정산을 하는데 귀가 계속 먹먹해서 계산이 잘 안됐다. 비행기를 탔을 때 고도의 변화로 먹먹해지는 증상이 나타나듯이 소리도 잘 안 들리고 불편했다. 다시 계산하고 다시 계산하고 해서 겨우 마무리하려는 찰나 갑자기 세입자가 소리쳤다.
"앗!!! 중개사님 귀에서 피가 뚝뚝 떨어져요~~!!!"
헉.. 손으로 만져보니 새빨간 피가 뚝뚝... 먹먹할 뿐 통증은 없고 면봉이 멀쩡하길래 괜찮은 줄 알았는데, 귓속은 타공이 된 모양이었다. 그 길로 병원으로 달려갔다.
병원을 향해 운전해 가면서도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머리 말리다 면봉으로 찔렀다고 해야 하나... 그런데 면봉으로 귀 닦다가 고막 터졌다고 하면 의사 선생님이 믿어주실까? 쓸데없는 고민에 빠져 병원에 도착했다.
막 진료실에 들어가려는데 마침 둘째 시누이가 전화를 했다. 병원 왔으니 나중에 통화하자 했더니 병원엔 왜 갔냐길래 "아고막이 터져서요..." 하고 끊었다.
의사 선생님께 자초지종을 설명했더니 예상과 달리 심드렁한 표정. 의외로 나같이 면봉이나 귀 후비다가 고막 터져 방문하는 환자가 많다고 한다. 유사 사건이 많다니 휴 나만 이상한 건 아니군... 다행...
고막이 터졌으니 재생 페이퍼를 대보고 잘 붙으면 다행이지만, 안되면 인공고막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날 밤에 남편한테 무지하게 잔소리를 들었다. 나이가 몇 갠데 면봉을 꽂고 자기가 자기 손으로 귀를 치냐고... 머리는 장식품이냐고..(남편의 고정 레퍼토리..) 그리고 일단 귀에 찔린 거 같으면 병원부터 가볼 것이지무슨 배짱으로 잔금 하러 갔냐고..
시누이가 회사로 전화해서 혹시 부부싸움했냐고~'어떻게 부부싸움을 했길래 고막이 터졌냐'
고 난리를 쳤다고 한다.
어이없어서 아니라고 부부싸움 안 했다고 해도 시누이가 안 믿으니 소리 지르다가 회사 동료들도 다 들었는데, 자기를 범죄자로 확신하는 표정이라나 뭐라나... 그리고 그날 밤 집에 있던 온갖 면봉들이 모조리 퇴출되었다.
2주 후에 병원에 들렀더니 다행히 잘 재생이 돼서 수술은 필요 없다고 했다.
지금은"면봉으로 귀를 닦을 땐 어떠한 일이 있어도 손에서 놓지 않겠다. 귀에 꽂아놓지 않겠다!"
고 몇 번을 약속한 뒤에 다시 면봉 사는 걸 허락받아서 잘 쓰고 있다. 우리 집에서는 이 사건이 일명"면봉의 저주" 혹은 "면봉 고막 타공 사건"으로 구전되어 내려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