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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콩 May 18. 2021

영화 1987을 다시 보며 5.18을 추억한다.

2017년에 "1987"이라는 영화를 봤다.
개봉 전부터 손꼽아 기다렸다가 주말 저녁에 아이들을 모아서 극장으로 갔다.



기대감과 설렘이 뒤범벅되어 있었다.


1987년도에 나는 대학 입학을 했고 치열한 대학생활을 했다.
단지 글 쓰는 것을 좋아해서 대학 교지 편집실을 지원하여 테스트받고 들어갔는데... 그곳이 학생운동권 중심에 있던 조직이었다.  

나는 그때 선배와의 면접에서 해맑게 말했다.


"대학교에는 이념서클(당시 운동권 성향 동아리를 일컫던 표현)이 많다해서 그런 이상한 곳에 들어가게 될까 봐 확실하게 건전한 교지 편집실을 지원했어요'


학생 운동권의 본거지를 일명 이념서클 지하조직 등으로 표현했기 때문이다. 선배는 빙긋이 웃었다. 나는 안심했다.

  

그리고 한 달 후부터 나는 선배가 시키는 대로 매일 배낭에다 화염병을 가득 담아서 가두시위 현장으로 날랐다.


시기가 그러해서 거의 매일을 최루탄 연기 속에서 살았는데
그 가운데 박종철 열사가 고문당해 죽고

또 이한열 열사가 시위하다 죽고,
그 죽음에 분노해 시위는 더 거세지고...
그러다 오빠한테 들켜서 집으로 끌려가기도 했다.



그런 날이 몇 개월 동안 지속되자 길거리에만 나서도 최루탄 냄새가 나 구토증이 생겼다. 내 몸과 아스팔트 곳곳에 매캐한 최루탄 냄새가 배어 있었다.  이런 짓을 언제까지 해야 하나 회의감이 들기도 했다.
앞서 움직이던 선배들이 하나둘 붙들려가서 구속되기도 하고... 그래서 무섭기도 하고...
그런데 그만둘 수도 빠져나갈 수도 없었다.
함께 동거 동락한 선배 후배 동료들이 있으니...


설상가상으로 그 와중에 교통사고까지 나서 한 달여 병원신세를 지기도 했다.



그런데 지성이면 감천이란 말이 이럴 때 소용되는 말이었다.  
시위 인파가 갈수록 늘어나 끝이 안 보이더니 드디어 전두환 정권이 손을 들었다.
6.29 선언!   드디어 호헌철폐가 되고 대통령 직선제가 이루어졌다.


지루한 듯 끝이 안 보이던 시위가 끝났다.


그 후로도 간간히 시위에 참여하기는 했지만 1987년 같은 치열한 싸움은 없었다.
가까스로  졸업을 했고 그때 함께 뛰던 남편과 결혼을 하여 아직까지 함께 살고 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는 가끔 대학생활에 대해 후회하기도 했다.
대학 때 내가 하고 싶었던 공부를 열심히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한동안 방송작가로 일할 때가 있었는데, PD들의 갑질? 이 좀 세서 나도 대학 때 데모하지 말고 공부를 열심히 해서 PD가 되었다면... 하고  아쉬워하기도 했다.

아무튼,  아이들을 데리고 학창 시절을 재현해놓은 영화 1987을 보았는데
과거로 회귀한듯한 장면 장면을 보면서 장면 장면마다 울었다.

그때 같이 뛰던 누군가는 죽고 ㅡ!
죽어서 꽃이 되어 세상을 바꾸는 향기로 남았고ㅡ!
나는 좀 비겁하게 살아남아 그 향기로운 삶을 누리고 있다.

그때 이뤄낸 대통령 직선제로 이 나라가 서서히 불타올랐고,
결국 2016년에 광화문 촛불집회로 이어져  국정농단의 주역들을 구속시키고 대통령을 탄핵하는 민주주의의 정점을 찍었다.





영화를 보고 나오니 당시 고2 아들놈이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엄마!  엄마 아빠도 저렇게 하셨었다는 거죠?"

눈물범벅이 된 나는 좀 쑥스러이 대답했다.


"그렇지.. 엄마 아빠 이야기지."

앞서가던 아들이 다시 멈춰 서서 내 눈을 맞추며 말했다.

"엄마 아빠 대단하세요. 덕분에 이렇게 좋은 세상이 온 거잖아요"

기분이 급 좋아진 밤이었다.
내 인생에서 멈춰진 시기라고 생각해왔는데,
아들의 눈빛을 통해  갑자기 그 날들이 살아 숨 쉬게 되었다.

세상을 바꾸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지... 다시 용기를 가져본다.


앞으로의 내 남은 인생에도 영화 같은 일이,

멋진 영화가 내 삶이 되는 일이 일어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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