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 아들 둘을 둔 40대 부부가 집을 내놓았다.
집을 사서 입주한 지도 얼마 안 됐는데 왜 하필 신도시 입주물량으로 집값도 안 좋을 때 팔려하느냐 했더니, '큰 개를 두 마리 키우고 있는데 개가 마음껏 뛰어놀 수 있도록 마당이 있는 빌라로 가고 싶다' 고 했다.
개를 위해서 빨리 이사 가고 싶으니 다른 집보다 좀 싸게라도 팔아달라고 부탁했다.
집을 보러 가면 황소만 한 개가 덤벼드는 바람에 개를 무서워하는 나는 눈물 콧물 흘려야 했다. 다행히 남편이 재택근무(?)를 하는지 집을 보러 갈 때마다 개를 관리해주었다. 수리 상태도 좋고 가격도 급매라서 얼마 후 매매계약이 되었다.
드디어 이삿날이 되어 잔금을 하는데, 명의자인 와이프는 출근을 해야 해서 남편이 매도서류를 챙겨 들고 아이들 둘이랑 왔다. 매매 잔금 시에는 매수인의 담보대출도 있고 또한 각종 공과금 계산 등으로 복잡한데 10살, 12살 아들 중 10살짜리 둘째가 잔금을 하는 탁자로 와서 자꾸 참견을 하려 했다.
"여기는 지금 중요한 걸 해야 하니 저쪽 의자로 가서 기다리지 않을래?"
그래도 못 들은 척하고 아빠 옆에 딱 붙어서 서류들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보통 아이들은 저런 거 관심 없는데 참 특이한 녀석이네... 관리비를 정산하는데 주고받는 금액에 290원 돌려받을 잔돈이 생기니까 아빠가 웃으면서 매수인한테 '290원은 그냥 두세요..'라고 했다. 그러자 10살 아들이 "아빠! 290원은 돈 아니에요? 그런 작은 돈들이 모여야 큰돈이 되는 거예요!"
라고 야무지게 훈계(?)를 했다. 아유 그 녀석 똘똘하네 하면서 다들 대견한 듯 웃었다.
다시 정산을 하는데 역시 둘째가 “아빠 돈 계산 제가 도와드릴까요?” 하며 돈뭉치를 만지려 하길래 "아빠 헷갈리시니까 그냥 두고 저쪽으로 가 있을래?" 했더니 이 녀석이 하는 말.
"이거 다 우리 엄마가 힘들게 벌어 오시는 돈이에요. 그러니까 조금이라도 틀리면 안 돼요!"
분위기가 일순간 어색해졌고, 당황한 아빠가 마시던 생수병을 넘어뜨려서 물이 좀 쏟아졌다. 그러자 이 녀석이
"아유... 내가 그럴 줄 알았어. 아빠는 역시 맨날 사고만 친다니까! 그러니 엄마가 돈 벌어 오느라고 고생하지..."
사무실이 꽁꽁 얼어붙었다. 아빠는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닌 듯 아이에게 별다른 대꾸 없이 휴지로 물기를 닦아내기만 했다. 아마 특별한 직업 없이 실직 상태에 놓여있는 모양이다. 그래서 그동안 집을 보러 갔을 때도 반려견 관리를 하며 집에 있었구나..
요즘은 남의 자식 훈계하거나 교육시키면 큰 일 나는 시대이지만, 10살짜리 아들놈이 여러 사람들 있는데서 아빠를 면박 주듯이 말하는 분위기는 적응이 안됐다. 나는 가장에게 어떤 아쉬운 점이 있더라도 아이들 앞에서는 권위를 세워줘야 한다는, 존경받는 아빠로 만들어줘야 한다는 보수적인 관념을 가지고 살아온 세대다.
그런데 요즘 세태는 다르구나. 내가 좀 구닥다리 세대인 건가... 아이가 밖에서 저런 말을 자연스럽게 할 정도면 집안에서도 대접받는 아빠는 아닐 것이다. 사실 대접받기도 힘들 것이다. 최첨단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계활동을 못하는 가장이 설 자리가 있을 리가 만무하다. 그래도 아쉽다. 남의 집 속사정을 속속들이 알 수는 없지만, 아직 젊은 아빠가 어린 아들에게 저런 대우를 받는다면 이 가족의 미래를 어떠할까..
그는 서류와 잔금을 챙기고 일어설 때까지 아들에게 단 한 번도 제지를 하거나 주의를 주지 않았다. 대신에 밝게 웃지도 않았다. 다만 원래도 예의가 바르고 점잖은 품성이었던 듯 매수인과 나에게 시종일관 예의 바른 태도를 유지하고 떠났다.
그들은 반려견 두 마리를 마당 있는 곳에서 편히 뛰놀게 하기 위해 비수기에 급매로 집을 팔고 이사를 나갔다. 사무실 밖 주차된 차 뒷좌석에서 개 두 마리가 주인 가족을 알아보고 꼬리를 흔들며 창문에 얼굴을 비벼댔다. 아빠와 함께 걸어 나가다 또 하나의 소중한 가족 반려견을 발견한 아이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개 이름을 부르며 차로 뛰어갔다. 차에 올라타 사랑스럽게 껴안고 낄낄댔다. 잠시 멈춰서 그 모습을 일별 한 뒤 어두운 표정으로 운전석에 올라타는 가장의 어깨가 눈에 밟혔다.
2021년 3월 법무부는 반려동물의 법적 지위를 개선하는 내용의 민법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동물이 사유재산이 아닌 ‘가족’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이다. 그만큼 사회 인식의 수준과 삶의 질이 고급화됐다는 반증이지만, 동물의 지위는 높아진 반면 인간의 지위는 상대적으로 낮아진 것이 아닐까..
부디 이사 간 곳에서는 개 두 마리보다 존경받으며 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