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콩 Jun 20. 2021

아이가 다섯, 30대 미쓰~리!

애 다섯을 혼자 다 낳았나요?


"우리 아들 한번 만나보지 않을래요?"


40대 노총각 아들 명의로 아파트를 매수한 아주머니가 등기권리증을 찾으러 와서 꺼낸 말이다.


아들이 일만 하느라 혼기를 놓쳤는데 간혹 소개로 선을 봐도 딱히 맘에 드는 처자가 없었단다. 그러던 중 이사 준비하느라 여러 차례 우리 사무실에 들르면서, 상냥하고 친절하고 예쁘기까지 한 중개보조원 이 실장이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아들도 아들이지만 어머니 눈에  딱 며느리감이다 싶게 탐이 나고 살가웠는지,  등기권리증을 건네자마자 쭈뼛쭈뼛  꺼낸 말이 거의 '대리 프러포즈' 수준이다.


"우리 아들이 요새 외롭대요 어제는 갑자기 엄마 나 이제 집도 샀으니 장가가고 싶어 ! 그러지 않겠어요? 그래서 내가 그 왜 부동산 실장 아가씨 참 싹싹하고 야무져 보이더라 했더니 자기도 좋다고 하드라구요. 아직 결혼 안 하셨죠? 미쓰 리?  우리 아들 좀 한번 만나보면 어때요?


아이쿠..


실장님과 나는 마주 보고 박장대소를 했다.

그리고 내가 말했다.


"딸린 식구가  여섯이나 되는데 감당하실 수 있겠어요?"




근무하던 직원이 타 지역으로 이사를 가게 되어서 구인광고를 냈다.  그런데 막상 휴가철을 앞둔 시기라서 조금 고민했다. 휴가철 끝나면  바로 추석 연휴가 이어지니 당분간은 그냥  혼자 있어볼까 하는 마음도 있었다.


일하는 사람이 바뀌면 새로운 사람과 적응하는 것도 나름 스트레스다. 일도 새로 가르쳐야 하고 서로 성격도 맞춰야 하지만, 중개업무는  누군가의 재산을 다뤄야 하는 일이기에 일정기간의 경험을 쌓기 전에는 아무리 단순 보조 무라도 초보자한테 맡기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이번에는 몇 달 간이라도 혼자 해보면서 명절 연휴 후에 경력자를 수소문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어 즉시 광고를 내렸다. 그런데 다음날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 구인광고를 봤는데요? 혹시 직원 안 뽑으셨으면 면접 보러 지금 가도 될까요?"


전날 광고를 내렸는데 그전에 보고 메모해두었다가 전화를 한 것이라 했다.

뽑았다고 거짓말하기도 그렇고 광고를 보고 전화한 사람한테 굳이 안 뽑기로 했다고 하기도 미안해서 일단 면접을 보러 오라고 했다.


어떻게 보면 그냥 거절 못하고 형식적으로 보는 면접이었고 내심은 채용할 의욕이 별로 없는 미안한 면접인 셈이었다.  그러나 구인할 의사가 있다고 해도 면접 온 사람이 100%  마음에 드는 경우도 드물고,  위치나 근무 조건 등 여러 사유로 인연이 안 되기도 한다.


잠시 후 밝고 참하게 생긴 30대 초 중반쯤의 여성이 방문했다. 싹싹하고 예쁘게 말도 잘했다.


내가 면접을 볼 때 가장 먼저 물어보는 것이 자녀의 연령대다. 아이들이 너무 어리면  근무시간에 제약을 받고 중간에 그만두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외모를 보아하니 아직 젊어서 아이들이 어리겠구나  그럼 돌려보내고 예정대로 몇 달 후에 경력자 구해봐야지 하고  마음먹었다.

어차피 몇 달간은 혼자 고생해보기로 했으니..


나: 실례지만.... 자녀분은 연령대가 어떻게 되시나요?

여성: 아 네... 그게.. 큰애가 고1이고요  막내가 6살이에요.

나; 아? 터울이 많이 지네요?

여성: 그게 아니고요. 다양해요. 6살 8살 그리고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

나 : 네? 아이가 몇인데요?

여성: 다섯이에요.


나: 헉.......

여성:.....

나: 실례지만.. 혹시 다섯을 혼자 낳으신 건가요?


혹시 애 다섯을 혼자 낳으신 건가요?


무슨 이런 면접이 있담. 무슨 이런 무식한 질문이 있담.  그런데 나는 그렇게 묻고 말았다. 여성은 기분 나빠하지도 않고 밝게 웃으며 차분히 설명을 해주었다.


고등학교 때 현재의 남편과 만나 연애를 하게 되었고 아이가 생겨 대학 진학을 못하고 결혼하게 되었다. 그런데 양가가 모두 이 어린 부부를 지원해줄 조건은 못되어서 스스로 삶을 개척해야 했다.


출산을 앞두고 남편에게는 영장이 날아왔고 입대를 하게 되었다. 남편은  준비 없이 형성된 가족의 생계를 위해  1년 군 복무 후에 말 그대로 '말뚝'을 았다. 월급을 받아 가족을 부양하면서  매달 30만 원씩을 떼어 적금을 부었더니 아이 기저귀 값과 분유값도 모자랐다고 한다. 그래서 분유에다 물을 많이 넣어 아이에게 먹일 때가 제일 마음이 아팠다고 회상했다.


그렇게 허리띠 졸라 매가며 30만 원씩 적금 든 돈으로 보증금이 마련되자 남편은 군복을 벗었다. 아이 낳고 키우느라 대학 꿈도 접었지만 더 늦기 전에 원래 하고 싶었던 건축 설계 일을 시작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남편은 독학으로 원하는 공부를 시작하였고 성실한 태도로 경력을 쌓아 마침내 독립적인 사업장을 갖게 되었다.


그 사이 아이는 다섯으로 늘어났다. 긍정적인 사고와 책임감,  성실 근면한 생활태도를 가진 부모의 영향인지 아이들 역시 밝고 건강하게 잘 자랐다.




여기까지 듣고 나는 바로 말했다.


"언제부터 출근할 수 있으세요?"


그리고 우리는 함께 일하게 되었다.


아이를 낳았어도 책임지지 못하고 불행한 올가미를 씌워주는 철없는 부모 이야기를 가끔 접할 수 있다.

실업문제와  경기불황이 이어질수록 무책임한 부모의  아동학대  이야기가 매스컴을 장식한다.


인공지능 초융합 가상현실 등 4차 산업 혁명이 가속화될수록,  인간 고유의 감성은 사라져 가는

것 같다. 우리는  미래를 똑똑한 로봇들과 함께 살아가는 대신  끈끈한 가족애는 맛볼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어린 나이에 부모의 도움 없이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다섯이나 낳아 기르고 경제적인 기반까지 마련해온 젊은 부부가 너무 대견했다.


"나중에 아이들이 크면 내가 말해줘야겠다.

엄마 아빠가 얼마나 훌륭한 사람들인지... 그런 부모 밑에 태어난 너희들이 얼마나 행복한 사람들인지 내가 꼭 말해줘야겠다."


자식들에게 좋은 부모는,  이미 자신의 부모들에게도 효를 행할줄 아는 좋은 자식인 경우가 많다. 이들은 부모들이 병치레를 할 때마다 다른 형제자매들 보다 솔선하여 병간호를 도맡고 있었다.

 그러니 그들은 복을 받을 것이고, 그들의 다섯 자녀들도 복을 받으며 살아갈 것이다.


요즘엔  부동산이나 주식이나 가상화폐로 돈방석에 오른 사람들보다,  애 다섯 가진 미쓰~리가 제일 부럽다.

작가의 이전글 혹시 제 차가 박았나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