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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콩 Jul 22. 2021

택배 아저씨와 음료수 두병

두 달 전,  


 아주머니가  전화를 해서  차량 30분 거리의 아파트를 매매해 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물론이다. 개업공인중개사들은 서로 물건을 공유하기 때문에 다소 떨어진 지역이라도 공동중개가 가능하다.


 미리 마땅한 물건을 찾아서 손님과 만나기로 약속을 하였는데, 당일 날은 일이 겹쳐서 사무실 소속 공인중개사가 대신 가서 보여드렸다.



집을 보여드리고 돌아온 소속공인중개사는, 그 손님을 잘 아느냐고 물었다.  통화 한번 한 것 밖에 없는데 어떻게 알겠냐고 했더니,



"그러게요~  그런데 그 아파트에 사시는 분이 왜 그 아파트 단지 부동산으로 가지 않고, 멀리 떨어진 우리한테 전화를 했을까요?"



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래? 그 아파트에 사신대?  흠... 뭐 그럴 수도 있겠지.. 예전에 거래했던 사람이거나 누가 소개했거나... 얼굴 보면 알겠지 뭐.."



보여드린 집이 마음에 들었는지 가격 조율을 원하였고 잘 조정이 되어서 며칠 후 계약을 하게 되었다. 공동중개이므로 그쪽 아파트 단지 부동산 사무실에서 계약서를 작성하게 되었다.


어떤 손님일까 내심 기대하고 갔는데, 전혀 안면이 없는 분이었다.  그런데 아주머니는 날 보더니 "OOO중개사님이시죠?" 하면서 아주 반가워했다.



나는 속으로... 흠... 나도 이제 한물갔나 봐,,, 예전엔 사람들을 잘 기억했는데 요샌 돌아서면 가물가물해...라고 생각하면서 어색하게 웃었다.



어쨌든 나를 보는 아주머니의 눈빛은 묘하게 따뜻했다. 무한 신뢰가 담겨있었다. 덩달아 내 마음도 따뜻해졌지만, 나는 도저히 기억 안나는 내 무딘 기억력을 탓하며  나름 '기억나는 듯' '알고 있는 듯' 하려고 애썼다. 순간순간 접점을 찾으려고 노력했다.(왜냐면 의외로 손님들은 일부러 찾아왔는데 기억 못해내면 섭섭해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계약내내 많이 피곤했다. 그러나 끝끝내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했다. 휴...돌머리



나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름 중개업에 특화된(?) 기억력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했다. 한번 통화 한 사람은  뜨르릉~ 전화번호만 떠도 누구인지  알았다.   업무적으로 알게 된 사람의 전화번호는 휴대폰에 저장하지 않는다는  나름의 원칙이 있었는데, 대신 번호를 이미지 메이킹으로 기억해서 수년이 지나도 번호만 뜨면 숫자 배열을 보고 아 106동 9층 임대인!이라고 알 정도였으니. 아 옛날이여어♪♬



두 달 후 잔금을 치렀다.

모든 것이 순탄하게 마무리되었지만, 멀리서 일부러 나를 찾아 계약을 해준 손님께 너무 감사했다. 그래서 잔금이 끝난 후에 입주선물을 사서 아파트로 올라갔다.


그런데 이삿짐을 옮기느라 분주한 사람들 속에서 낯익은 얼굴을 발견했다. 그분도 나를 보더니 아주 반가워했다. 부동산 사무실에 가끔 들르시는 택배 아저씨 중 한 분.


어? 택배 아저씨가 여길 왜? 이사하는 날도 택배를 주문하셨나?... 하는데,  아주머님이 내 손을 잡아당겨 한쪽으로 끌고 갔다.



"아들이에요 우리 아들.."

아들이 사업하다가 말아먹고 몇 해 전부터 택배일을 시작했어.

택배가 정말 힘든 일이에요.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쉬지도 않고 일하는데  버는 것도 얼마 안되는 것 같아..

원래 하던 일이 잘 안돼서 바닥부터 시작해서 만회해보겠다고  밥때도 놓치고 사람 취급도 못 받고 다니는가 싶어서  내가 가슴이 찢어져,,, 마음이 안 좋아.

그런데 언제부턴가 부동산 사장님 이야길 자주 했어요. 부동산에 택배 배달할 때마다 꼭 쫓아 나와서 음료수를 두 개씩이나 준다고..... 거기 다녀온 날이면  나한테  항상 말했어요.

"우리 이사 갈 일 생기면  꼭 그 부동산에서 계약해요, 어머니."

언제 그럴 일이 있겠나 싶었는데 이번에  집을 옮겨야 하게 되니까 아들이 부동산 전화번호를 주면서

"꼭 거기서 계약해주세요~ 어머니! "

라고 했어요.  시킨대로 연락해서 같이 집 봤다니까

"잘하셨어요~ 어머니!" 

그랬어 울 아들이.


                                          




18년 전 부동산 사무소를 오픈한 뒤 처음으로 방문한 택배 아저씨가 땀을 뻘뻘 흘리고 계셔서  너무 죄송했다. 그래서  '날도 더운데 택배를 시켜서 너무 죄송해요.' 라면서 음료수를 드렸다.



그 뒤로는 사무실에 방문하는 우편집배원이나 택배 아저씨들한테 음료수를 챙겨드리는 게 습관이 되었다.  처음엔 한 개씩만 드리다가 어느 순간부터 두 개씩 드렸다. 한 병이면 되지 왜 두 개씩이나 주느냐고 묻는 분도 있었다.



 "하나는 지금 드시고 하나는 일하시다 목마를 때 드세요~"



나는 친절이 몸에 밴 사람도, 마음이 착한 사람도 아니다. 그런데 어떤 상황에서  한번  '이렇게 하는 것이 좋겠다'라고 생각했으면 그냥 쭉 그렇게 하는 습관형?  지속형? 인간이다.



주던 걸 안 주면 빚진 것처럼 마음이 불편하고, 우연히 눈이 마주치면 오늘은 왜 안 주느냐고 묻는 것 같았다. 그래서 직원이  바뀌면 업무지시사항 브리핑하는 항목에  '택배 아저씨와 집배원 아저씨 음료수 드리기'가 있다.  이 택배 아저씨한테 이렇게 했으니 다른 택배 아저씨한테도 그렇게 해야 하고, 한번 했으니 계속해야 한다  뭐 그런 나름의 규칙이 생겨서  모든 택배 아저씨들한테 음료수 두 개씩 챙겨드리는 것이 사무실 규칙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집으로 배달할 것도 일부러 사무실로 가져다주는 분도 있고, 사무실에 왔다 문이 닫혀서 손님이 돌아가려 하면 택배 아저씨가 '손님 왔다 돌아간다'라고 전화로 알려주는 경우도 있었다.   



단지 내 마음이 편하자고 내가 스스로 원해서 한 일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특별한" 일이었던 모양이다.



갈수록 더 더워지는 듯하다. 이런 날은 시원한 사무실에 앉아서 밖을 내다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운이다. 길거리를 오고 가는 수많은 차량 중에 택배 화물 차량을 발견하는 것은 너무나 쉽다.  

 

우리가 사무실이나 집에서 편히 물건을 수령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분들께 충분히 감사할 일이다. 그리고 그 고마움을 음료수 한 두병으로 표시할 수 있다면 그것도 참 간편하고 경제적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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