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콩 Jul 27. 2021

세입자가 집 팔아먹고 도망갔어요!

햇살 좋은 어느 아침,

A 공인중개사무소에 60대 최여사가 고개를 빼꼼히 들이밀었다.


"아이고... 이 동네 오래 살아도  부동산 사무실 들어오긴 첨이네.. 요즘 경기가 어때요? "


한 아파트에 아무리 오래 살아도 이사 갈 계획이 없으면 부동산에 들를 일이 없다.  그러다 보니 동네 터줏대감이라도 안면을 트기 전까진 낯선 이방인일 뿐이다.


붙임성 좋은 최여사는 사무실에 들어와 커피를 청하며 한참을 떠들었다. 한번 안면을 터서인지 그 뒤로는 종종 들렀는데, 어떤 날은 남편이랑 함께 서 복사도 하고 팩스도 보내고 고맙다며 음료수도 사들고 왔다.


딸을 데리고 지나가다 아는 척하기도 하고, 세일해서 과일을 넉넉히 샀다며 몇 개 덜어놓고 가기도 하고... 그러다 보니 나름 친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아무래도 아들네 근처 동네로 옮겨야겠다고 집을 내놓았다.


집을 보러 가면 항상 깨끗이 잘 관리돼 있는 데다 가격도 착해서 매물 받은 지 얼마 안 되어 계약을 체결하게 됐다.


계약 날,

명의자인 남편이 지방 가서 못 온다며 최여사만 왔다. 등기부상 명의자인 남편이 못 온 거니 전화 걸어 통화도 시켜주고,  혹시 몰라 신분증을 미리 카피해두었다며 내놓았다.  공인중개사는  메뉴얼대로  주민등록 진위여부 확인도 마쳤다.  


최여사는 '곧바로 아들 동네로 가서 계약을 하기로 했으니 계약금도 현금으로 들고 와 달라.' 고 요청했다.  대신 잔금 날짜 등 모든 조건을 편하게 맞춰준다 했기 때문에 매수인도 흔쾌히 동의해서  모든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중도금도 현금으로 요청하더니 명의자인 남편이 직접 와서 받아갔다.  이렇게 넘어간 돈이 총 130.000.000원이었다. 10년 전에 인근 아파트 단지 중개사무소에서 일어난 일이다.


잔금 날.

매수인은 약속시간에 와서 기다리는데 최여사도 안 오고 매도인인 남편도 안 왔다.  무슨 일이 생겼나?  이삿짐이 늦어지나 하고 집에 가보니 문은 굳게 닫힌 채 인기척이 없었다. 전화해보았더니 착신 정지 상태였다.


하루가 다 가도록 끝내 매도인이 나타나지 않아서 공인중개사는 사색이 되었다. 매수인은 이사도 못하고 난리가 났다.


다음날 A중개사는 인근의 중개사무소마다 찾아다니며 "혹시 몇 동 몇 호 집주인 가족의 연락처를 아느냐"며 수소문하고 다녔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다. 그중 입주 시부터 쭈욱  영업을 해오던  B 중개사무소에서


"몇 동 몇 호요? 그 집이 팔렸다구요? 그럴리가요!  제가 전속으로  관리해드리는 집인데, 월세 세입자 들인지 몇 달 안됐는데요? "


라고 말했다.

청천 날벼락. 임대인 연락처를 받아서 확인해보니, 역시 집은 내놓은 적 없고 몇 개월 전에 월세입자가 들어와 살고 있다고 했다.


월세로 입주한 임차인이 주인행세를 하며 집을 내놓은 다음 중도금까지 받아서 사라진 것이었다,


말로만 듣던 부동산 사기였다. 결국 진정한 소유권자 여부를 확인하지 않은 책임으로 중개사가 손해배상 책임을 지게 되었지만 사기를 치겠다고 맘먹고 덤비는 상대를 가려내는 일은 쉽지 않다.


위 사건의 최여사는

일부러 해당 아파트의 소유자와 거래한 적 없고 개설 등록한 지 얼마 안 되는 중개사무소를 선정(?)하여 여러 번 드나들며 얼굴을 익혀서 경계심을 없앴다. 또한 가족들까지 대동하여 가정사로 수다를 떠는 등의 수법으로 진정한 소유자라는 인식을 주입시켰다.


계약 시에도 가짜 소유자인 남편과 (남편인지도 의문) 통화시키고 이사 갈 집 계약을 핑계로 현금을 요구하는 수법을 사용했다. 공인중개사들은 신분증을 받아서  민원 24 등의 사이트에서 '진위여부 확인'을 하지만, 임차인인 최 씨가 월세 계약 시 임대인 신분증을 카피한 것을 가져온 것이라 가려낼 수 없었다.(보통은 계약 당사자의 신분증을 카피해서 공인중개사가 보관하지만, 이 계약 시에는 의도를 가진 임차인 최 씨가 '본인도 주인과 계약한 것을 확실히 하기 위해 잘 보관하겠다'라고 우겨서 임대인의 동의를 받아 건네주었다고 한다.)


또한 신분증 사진이 오래되고 흐릿한 상태라, 다른 사람인 걸 구분해내는데 한계가 있었던 듯하다.


이와 같이 진정한 소유자가 아닌 사람이 일으키는 중개사고가 많다. 그러다 보니 소유자 확인 책임이 갈수록 강화된 판례들이 나오게 되었는데,


진정한 소유자임을 확인하는 방법으로


기본 중의 기본인

①주민등록증 진위 여부 확인  


매매계약 뿐 아니라 전월세 계약시에도

등기권리증 확인

 
그러나 요즘엔 위 2가지를 확인하여도 서류 위조 등이 교묘해졌기 때문에

진짜 그 동네에 그 사람이 살고 있는지 직접 가서 확인하여야 한다는

거주여부 확인 책임이 더해졌고,


직접 가서 거주 여부를 확인했다 해도 그 사람이 소유자인지 임차인인지 알 수가 없기에  이웃들에게까지 확인하여야 한다는

주변 사람들을 통해 진정한 소유권자인지 탐색 확인 


등이 법원의 입장이다.


매도의뢰를 받는 경우에 자칭 소유자와 전혀 면식이 없는 때에는 자칭 소유자라는 사람의 주민등록증 등의 서류를  조사하거나 확인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소유권의 귀속에 관해 의문을 품을 여지가 없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등기권리증을 확인하거나 소유자의 주거지나 근무지 등에 연락하거나 그곳에 가서 확인하는 등으로 소유권의 유무를 조사하고 확인하여야 한다.

따라서 이러한 주의의무를 다하지 않아 그 결과 위탁자에게 손해를 입게 한 때에는 불법행위로써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서울중앙지법 2008.11.20 선고, 2008가합50528]



요즘같이 매물이 부족한 시기에는 소유자에게 뭔가를 요구하거나 확인하기 어려운 입장이 되지만, 그럴수록  불측의 사고에 휘말리지 않도록 꼼꼼히 확인해야 한다.  


이런 사고가 생겼을 경우 공인중개사에게 100%의 책임이 내려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거래 관계에 대한 조사, 확인 의무는 거래 당사자에게도 있기 때문이다. 중개 의뢰를 하는 경우 조사·확인할 책임이 중개사에게 이전되지만, 전적으로 이전되는 것은 아니며 여전히 거래 당사자에게도  그 의무가 남아 있게 된다.


 따라서 중개 의뢰인이 조사·확인할 책임을 게을리하였다면 과실상계가 가능하다.  공인중개사뿐 아니라 계약 당사자들도 함께 확인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고 보는 것이 대법원의 입장인 것이다.


요즘엔 대형 부동산 플랫폼이 비대면 언택트 계약이나 직거래를 장점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가뜩이나 예상 못할 사고가 많고 정형화되기 어려운 중개시장의 특성상 다소 위험한 발상일 수 있다. 마트에서 공산품 사듯 할 수 없는 것이 부동산 거래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바쁠수록 돌아가라는 명언을 깊이 새기어 귀한 계약일수록 진정한 소유권자인지 철저히 탐색하고 확인하는 과정을 필수로 거쳐야 한다.

작가의 이전글 택배 아저씨와 음료수 두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