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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콩 Aug 06. 2021

버려진 건물들의 이유있는 항변

지인이 토지 매물을 내놓았다.


"시세 알아보셔서 적절한 가격에 팔아주세요."


사무소가 아파트 단지 상가에 있기 때문에 아파트 등 주거용 건축물을 주로 중개하는터라, 외진 지역의 토지를 취급할 일이 별로 없다. 그런데 특별히 의뢰를 한 것이니 미리 둘러보고 권리분석 및 시세 파악을 하려고 시간 내어 나서게 되었다.



개업 공인중개사라도 어찌 보면 전문 분야가 다 다르다. 공인중개사는 모든 중개대상물에 대해서 중개를 할 수 있지만, 본인이 주로 중개하고 있는 주 중개대상물에 대한 노하우가 많이 쌓이기 마련이라서 나름 전문성을 갖게 된다.



정보와 도움을 얻기 위해 해당 지역에서 오랫동안 토지 중개를 하고 있는 중개사와 만나서 주변을 둘러보기로 했다.  토지는 특히 지리적 여건이나 주변의 입지 상황에 따라서 시세가 달라지기 때문에  사무실에 앉아서 대충 확인해보는 것보다는 직접 임장활동을 해야 한다.



그런데 사진도 찍고 주변 상황을 점검하며 돌아보는 와중에 한적한 들판 여기저기에 회색 건물들이 눈에 띄었다. 접경지역 외진 마을이라 인가도 드문 들판 한가운데에 덩그마니 서 있는 건물들이 왠지 낯설었다. 직업정신이 발동한 나는 회색 건물의 구조를 보며 주거용 건축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4층 건물에 층마다 동일한 모양의 창과  출입구 구조를 보며 머릿속에 의문부호를 그렸다.



??

빌라네... 이곳의 빌라가 분양이 될까? 수요가 있을까?



딱히 계절에 상관없이 황량해 보이는 들판 한가운데에다 누가 빌라를 지었을까?  아무리 주택이 부족한 시절이라지만 생활 편의시설이 전혀 없고 인적마저 드문 이곳에 빌라를 매입해 거주하려는 사람이 있을까? 분양가는?



그래서 물었다.



"와우~~ 여기에도 빌라가 분양이 되나요? "



동행하던 중개사가 담담히 말했다.



"건축이 중단된 상태입니다."



보통 건물을 지어 분양을 하려면 수요가 있겠는지 토지대금과 건축비, 인근 시세 등을 따져서 분석해본 뒤 토지매입을 결정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빌라를 건축해 분양하는 업자들은 주변에 위치한  중개사무소를 복수로 방문하여 "만약 저곳에 빌라를 짓는다면 분양가는 얼마 정도가 적정하겠느냐?"  "그 금액에 분양하면 분양이 잘 되겠느냐?"를 묻는 시장조사를 한다. 수지가 맞겠다고 판단하면 일을 진행하고 아니면 다른 매물을 찾아 떠난다.



그런데 그건 정상적인 빌라 건축시장의 모습이고 그와 상이한 시각으로 접근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일단 토지가만 저렴하면 그만이다. 주변 상황이나 시장성을 따지지 않는다. 최소한의 비용으로 토지를 매입할 수 있으면 일단 공사부터 시작한다. 그런 다음 주변시세와 감정평가 금액을 부풀린 다음 담보대출을 일명 '이빠이~' 받아서 사라진다는 것이다.



대출금을 최대한 많이 뽑아내는 것이 최종 목표이기 때문에  토지 상태로는 대출금이 한계가 있어서 어떻게든 공사를 시작하여 건축물을 올린다. 토지 상태로는 담보대출금이 별로 안 나오기 때문이다. 토지도 지목에 따라 대출 설정비율이 다르지만,  지목을 대지로 변경해서 건축물을 올리기 전과 후가 또 감정가가 달라서 대출금액이 현저히 차이 난다. 그러다 보니 토지매입가도 뽑고 차액을 남기려면 건축물이 어느 정도는 올라가야 하는 것이다.   



그런 다음 건물이 채  완공되기 전에 언제라도 대출금이 입금되면 그 즉시로 건축을 중단하고 사라진다. 그러다 보니 뚝딱뚝딱 건축 중이던 빌라만 흉한 몰골로 덩그러니 남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그런 건물들은 결국 버려진 채 있다가 수년이 흐른 뒤에 경매에 붙여져서 누군가에게 헐값으로 인도된다. 인수자는 공사를 마무리한 뒤에 분양이 안되어  미분양 상태가 되면 일단 임대를 놓는 방식으로 전환한다. 여기서 자칫 악순환이 반복될 수 있다.  근래 들어 빌라를 매입해 노숙자 등의 명의로 소유권 등기한 후에 높은 금액으로 전세를 놓은 후 전세금만 챙겨 사라지는 중개사고와 연관 지어 볼 수 있다.

 

현재 시장 상황 상 전세매물이 부족하기 때문에 빌라를 매입하기는 싫지만 전세로는 입주하려는 사람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이 심리를 이용해 최대한 높은 금액으로 전세보증금을 받은 후 착복하고 사라지는 경우도 생기는 것이다. 계약 만기 때 전세금을 반환받을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임차인에게는 안심 전세나 보증보험의 가입을 유도한다. 결국 직접적인 피해자는 보증보험회사나 은행권이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이다.


돈이면 다인 세상... 돈을 벌 수 있는 일이면 어떤 꼼수, 편법이라도 능력이라고 생각하고 휘두르는 자본주의의 병폐다. 유독 그런 쪽으로만  머리가 비상하게  돌아가는 사람들이 꼭 있다.



설명을 듣고 다시 주변을 둘러보다 보니 모든 건물이 다 의심되었다. 특히나 논바닥이며 야산에 뻘쭘하게 서 있는 회색 건물들.  건축된 지 얼마 안 되어도 사람 손이 타지 않는 건물은 말 그대로 황폐하다.



인간의 욕심으로 자연이 훼손되고 생태계가 파괴되어 기상이변과 변종 바이러스가 출몰하게 된 오늘날. 다시 누군가의 기발한 아이디어와 황금만능주의적 사고가  '또 다른 파괴'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 누군가는 그렇게 해서 원하는 것을 취하게 되었을지 몰라도, 덕분에 우리는 더 많은 것을 잃을 준비를 해야 한다.


버려진 건물은 머지않은 시간에 우리에게 응당한 대가를 요구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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