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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콩 Aug 13. 2021

경비아저씨!  경례하지 마세요.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지상으로 올라오는 통로에, 경비아저씨의 구부정한 뒷모습이 보인다. 쓰레기 줍는 집게와 밀대를 끌고 올라가고 있다. 내 차가 뒤따르는 소리가 들리자 그는 기계적으로 멈춰 섰다. 그리고 내 차를 향해 뒤로 돌았다.  그는 선팅된 차 유리에 반사돼 흐릿한 형체만 보이는 나를 향해 목례를 한다. 나도 인사를 한다. 내가 항상 깊게 고개 숙여 답례하고 있다는 걸 그는 알까 모를까.


나는 이 상황이 참 불편하다.


그전에는 어쨌는지 딱히 기억나지 않지만 불편하다는 생각이 없었던 것을 보면 아파트 경비아저씨들이 지나가는 차를 향해 멈춰 서서 인사하는 관행이 그리 오래되지는 않은 듯하다. 아니면 그전에도 그들은 내 차를 향해 인사를 했지만 나는 직진 본능으로 그들이 사이드에서 인사를 하는지 안 하는지 모르고 그냥 지나쳤을 수도 있다.


그런데 그 모습이 내 눈에 띈 건 작년 이맘때 쯤이다.


지하주차장에서 막 시동을 걸고 우회전해서 나오려는데, 무거운 짐들을 수레에 끌고 가던 경비아저씨가 수레 손잡이를 서둘러 내려놓고 내 차를 향해 고개를 깊게 숙이는 인사를 했다. 나는 나도 모르게 당황했다. 어머 참 친절한 아저씨네?  운전 중이라는 것도 잊은 채  나도 꾸뻑 답례를 했다. 물론 기분은 좋았다. 누군가 나에게 인사를 해준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 아닐 수 없다.


한번 경험을 한 후에는 출근 시간마다 인사하는 경비아저씨들이 눈에 띄었다. 같은 복장을 하고 있는  60대 후반 70대 초중반 남성분들의 체구는 어느 정도 비슷하다 보니, 그리고 대부분 출퇴근하는 차 안에서 차창을 통해 바라보다 보니 사실 그 사람이 그 사람 같다. 같은 복장 같은 행동은 그들을 같은 사람으로 느끼게 한다. 마치 교복을 입은 학생이나 군복을 입은 군인들이 다 똑같아 보이듯이 말이다.




나는 경비아저씨에 대한 생경한 기억이 있다. 중개사무소가 있는 아파트 단지에서 일어난 일이다. 어느 날 이사 나가는 세대가 있었는데 짐을 내릴 때 사다리차를 이용하지 않고 엘리베이터를 이용할 경우 90,000원의 비용을 지불하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날 이사할 세대의 주민이 미리 이사할 집에 청소를 하러 가는 바람에 엘리베이터 비용을 미처 받지 못한 모양이었다. 관리사무소에서 부동산으로 전화가 왔다.


"오늘 이사 가는 101동 903호 잔금 정산할 때 엘리베이터 비용 90,000원을 받아주실 수 있으세요?"


나는 오케이 했고 세대원이 오자 90,000원을 받아서 관리사무소로 전달해주었다. 그런데 그날 퇴근 무렵에 연로하신 경비원이 사무실 문을 꽝 열고 들이닥쳤다.


"여기 부동산에서 101동 903호 엘베 사용비 받았어요?"


"네 받아서 관리사무소로 전달해드렸는데요?"


그러자 그는 분을 삭이지 못하고 화를 냈다.


"그럼 말을 해줘야죠. 나는 그걸 책임지고 받아오라고 해서, 못 받으면 어떡하나 싶어서 그 집을 몇 번씩 간 줄 알아요? 혹시 안 주고 이사 가버릴까 봐. 다른 일 하다가 뛰어오고 또 다른 일 하다가 뛰어오고. 겨우 저녁때 다 되어서 그 사람과 연결이 됐는데,  엘베 비용 이미 줬는데 왜 그러냐고 나한테 화를 내잖아요.. 아니 받았으면 받았다고 말을 해줘야지 내가 하루 종일 그 고생을 안 하잖아요! 나는 밥도 제대로 못 먹고, 그거 못 받으면 내가 물어내야 하는데 내 하루 일당이... 휴"



나는 처음엔 이게 무슨 봉변인가 싶어 어리둥절했지만 흥분해서 횡설수설하는 그의 말을 듣고 상황이 이해가 되었다. 경비반장은 그에게 엘리베이터 사용비를 받아오라는 지령을 내렸고 관리사무소는 나에게 따로 부탁을 한 것이었다. 내가 이미 받은 걸 모르는 경비아저씨는 하루 종일 애가 타서 수시로 이사 세대를 드나들며 엘리베이터 비용을 받으려고 애를 쓴 것이다. 그걸 못 받으면 월급에서 공제할 건데 그게 도대체 며칠 분 일당이냐고..


옆에 있던 사무실 직원이  '우리는 관리사무소 부탁받고 일부러 받아주었는데 어디서 행패를 부리시냐'라고 화를 내었다. 나는 직원을 만류하고 착오가 있었던 듯하다고 화를 푸시라고 했다. 잠시 후 경비반장이 뛰어들어와서 왜 여기서 소란이냐고 경비아저씨를 나무라며 나에게 사과를 했다. 경비아저씨는 억지로 고개를 숙이면서도 끝내 화가 삭히지 않는 듯했다. 90,000을 받기 위해 하루 종일 그가 얼마나 동분서주하고 애가 탔는지 느껴졌다. 나는 그날 이후로 그 경비아저씨를 본 적이 없다.


 




한번 경비아저씨의 경례를 경험한 뒤로 나는 지나가는 경비아저씨들을 유심히 보게 되었다. 그들은 도로를 등지고 가지치기를 하거나 쓰레기를 줍거나 재활용품을 치우거나 무거운 짐을 나누는 중이라도 등 뒤로 차 소리가 들리면 어김없이 일을 멈추고 몸을 돌려 경례를 하거나 머리를 숙였다.


불편한 마음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그동안 내가 전혀 의식하지 않았어도 그들은 내 차 소리가 들리면 언제나 그렇게 차 쪽을 향해 경례를 하고 있었다는 거 아냐!  어떤 일에 열중해 있더라도 귀로는 입주민이 지나가는 발소리라든지 차 소리들을 분별해내는 안테나를 곧추세우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피곤한 일인가..


여느 때와 같은 아침, 나는 이른 출근을 하면서 마음을 다잡았다. 경비아저씨를 만나야 해. 지하주차장에서 막 지상으로 올라서자 쓰레기를 줍고 있는 경비아저씨의 뒷모습이 보였다.  그는 언제나처럼 빗자루를 내리고 나를 향해 돌아섰다. 평소와 달리 서행하고 있던 나는 재빨리 창문을 내렸다.


"안녕하세요. 인사 안 하셔도 됩니다."


말이 빨라 무슨 소리인지 듣지 못했는지 그가 차로 바짝 다가왔다.


"인사 안 하셔도 됩니다. 일하느라 힘드신데 차가 지나갈 때마다 인사하려면 더 힘드시잖아요. 앞으로는 인사하지 마세요."


그는 뭐라고 말하려는 듯하다가 그냥 웃었다. 그리고 다시 경례를 했다. 그는 나보다 20살은 족히 돼 보였다.


나는 그와 헤어져 나오면서 관리사무소에 전화를 했다.


출퇴근길에  차량 운행을 하다 보면 일하시던 경비아저씨들이 멈춰 서서 경례를 하는데, 불편하다. 생각해봐라 일하기도 힘든데 청각을 곤두세워 차가 지나갈 때마다 굳이 인사를 할 필요가 있느냐 차가 한두 대도 아닌데. 그건 너무 힘들고 불필요한 일이다. 혹시 관리소에서 그런 지침을 내렸다면 시정해달라. 그냥 경비아저씨들이 맡은 바 업무만 충실히 하고 입주민들에게 과도히 예의를 갖출 필요는 없다고 본다.


전화를 받은 관리소 직원은, 정 후문 경비실에서는 진출입자에게 경례를 하는 걸로 알고 있다. 하지만 단지 내에서 일을 하다 지나가는 차량이나 입주민에게 인사를 하는 것은 몰랐다. 아마 그렇게 하고 있다면 그건 위탁업체에서 내린 지침일 수도 있다. 확인해보겠다고 했다.


나는 위탁업체에 그런 지침이 있다면 완화시켜 줄 것을 요청해달라고 했다. 한국인의 정서나 인지상정으로  지나가다 만난 입주민과 가볍게 목례를 할 수는 있지만, 지나가는 차마다 멈춰서 인사할 필요는 없다. 여기는 군대도 아니고 기업체 시설도 아니지 않은가.


관리소 직원은 고맙다며 끊었다.


한동안 매스컴에서, 입주민이 경비직원한테 갑질을 하고 폭력을 행사하여 자살을 하는 등의 사건이 보도되었다. 실질적인 위해가 가해져야만 '폭력'이 아니다. 또한 일방적인 언어폭력이 있어야  갑질이 아니다. 만약 어느 경비에게 주어진 업무가 출입구에 서서 진출입하는 입주민에게 인사하고 안내하는 것이라면 그렇게 해야 맞지만, 그 외 단지내 청소나 수목 정리 재활용품 정리 등 아파트 관리에 준한 다른 업무가 주어졌다면 그 일에 충실하면 된다. 언제 어디서 어떤 업무를 하든 입주민과 입주민 차량을 향해 경례를 해야 한다는 것은 부당행위를 강요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나는 가끔 생각한다. 20년 후의 우리는 어디서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  시대상의 격변으로 4차 산업이 가속화되고 인간 고유의 역할을 AI가 대체하는 분야가 늘어가고 있다. 한편으로는 편해졌지만 그만큼 인간의 설자리가 줄어든 역설적인 발전이 마냥 달갑지는 않다.


최첨단 과학 기술의 발전 역시 인간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인간을 위한다는 것'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 그냥 사람을 존중하는 문화가 유지되면 된다. 그 '사람'이  대통령이든 대기업 재벌이든 정치인이든 경비아저씨든.... 그러려면 누가 누구에게 일방적으로 '경례' 하고 '90도 인사'하는 문화부터 사라져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인사를 받는 쪽에서 먼저 요청해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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