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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갱도요새 Apr 27. 2021

한국이 아니라 윤여정이 잘 한거다

'우리'로 엮지마세요

윤여정 배우가 연일 화제다. <미나리>로 온갖 상을 휩쓸고 유머러스하게 수상소감을 말하는 멋진 모습은 내가 봐도 설렌다. 이 글을 주말에 써서 저장해두었는데, 오늘은 오스카상 수상소식까지 들린다. 나도 그렇게 멋지게 나이 먹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데 윤여정 배우의 수상이 마치 '우리'의 대단한 쾌거인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봉준호 감독에 이어서 또 한국이 주목을 받는 것에 쾌감을 느끼나보다. 심지어 한국 관광공사는 한국영화를 활용한 K-박스 배달 마케팅까지 한다고 한다(“한국이 가득 담긴 ‘K-박스’ 열어보세요”, http://news.heraldcorp.com/view.php?ud=20210421000497,  영화 ‘기생충’ 블루레이 DVD, ‘미나리’ 레시피 가이드북, 넷플릭스 가이드북, 한국관광 안내서, 허니버터칩, 짜파구리 컵누들, 홍삼파우치, 오미자 음료 등 한국 스낵제품으로 구성된다고 한다.). 내가 보기엔 좀 아니다 싶은데, 마케팅 전문가들이 보기엔 맞나보다. 심지어 <미나리>는 미국인이 미국 자본으로 만든 미국 영화인데도.


한국인들은 '우리'에 취하는 경우가 많다. 2002년 월드컵 4강에 올랐을 때 전국민이 다 축구에 미쳐있었던 것도 그렇고, 올림픽 시즌만 되면 갑자기 다들 온갖 스포츠 분야의 전문가가 되는 것만 봐도 그렇다. 김연아를 통해 한국의 압도적인 승리를 보고, 알파고를 이긴 이세돌을 보며 국뽕에 취한다. 얼굴 한 번 본적 없는 박지성 선수는 우리 지성이형이고, 손흥민 선수는 우리 쏘니다. '우리'로 묶는 문화가 너무 강하다. 그들이 잘하는 것에 동전 한 푼 보탠 적 없으면서 '우리'의 성취인 것처럼 좋아하고 대리만족한다. 


섬너(W.sumner)의 내집단 외집단 이론을 굳이 떠올리지 않아도 우리가 늘 우리에 취해있다는 사실을 모두 다 느낄 것이다. 왜냐면 우리 한국사람은 역시 국뽕 한사발 들이켜야 기분이 좋으니까!


'내가 승리한 것이지 인간이 승리한 것이 아니다'라는 밈으로 더 유명한 인터뷰. 이세돌의 패배는 이세돌의 패배인데, 이세돌의 승리는 우리의 승리인양 기뻐한다.


실상은 우리는 아무것도 보태준 게 없고, 아무 성취도 한 것이 없다. 그냥 윤여정 배우가 연기도 잘하고 영어도 잘하는데 심지어 유머감각까지 갖춘 거다. 한국 영화계는 여전히 설탕공장 갬성의 거푸집으로 찍어낸 똑같은 영화가 판을 치고, 윤여정처럼 세계가 주목하는 배우에게 주어지는 배역도 매번 뻔하다. 한국 축구는 여전히 큰 발전이 없고, 여러 스포츠 종목들도 올림픽 기간에만 반짝할뿐 각종 폭력과 비리, 성폭행 등 안 좋은 뉴스만 연일 터진다. 미친듯이 노력해서 엄청난 성취를 거둔 개인들이 존재했을 뿐이다.


많이들 '우리'라는 단어가 주는 편리함에 올라타서 아무 노력도 없이 성취감만 얻으려고 한다. '우리' 중 누군가의 노력에 편승하고, '우리' 중 하나에게 나를 투영해서 타인의 성취에 기뻐한다. 아무 노력도 하지 않아도 된다. 우리 중에 누군가가 해낼테니까. 윤여정 배우가 혼자 고생해서 상을 받지만, 성취는 갑자기 한국 영화계의 성취인 것이다. 자랑스러운 우리 한국 배우, 국격을 높인 우리 대배우, 한국 영화사의 쾌거 같은 낯간지러운 단어를 잘도 쓴다. 정작 윤여정 배우는 한국영화계에서 본인의 역할에 한계를 느껴서 미국인 감독이 만드는 독립영화에 도전한 것일텐데 말이다.




이혼소송이나 상속 관련 소송을 하다보면 가정에서도 '우리'로 묶는 문화 때문에 모든 갈등이 생긴다는 걸 매일 느낀다. 우리 엄마, 우리 아빠, 우리 부모님, 우리 딸, 우리 아들, 우리 자식, 우리 집사람, 우리 남편, 우리집, 우리가족. 가족구성원에는 정말 놀라울 정도로 많은 우리 시리즈가 있다. 모든 가족구성원을 '우리'로 묶어서 우리 중 누군가의 노력을 통해 얻은 결과에 기대어 살아가고, 우리 중 누군가에게 자신을 투영하려는 생활방식이 수많은 갈등을 만들어내고 있다.


'우리' 집사람에게 '우리' 부모님에 대한 효도를 강요한다. 배우자가 당연히 그걸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실은 내 부모님이고, 내가 노력해서 챙겨야 하는 것인데도 말이다.

'우리' 아들이랑 결혼한 '우리' 며느리한테 온갖 생활방식을 강요한다. 우리 며느리가 아니라 남의 집 귀한 딸이고 당신 자식과 결혼했을 뿐 당신과는 남인데.

'우리'딸, '우리'아들에게 모든 걸 다 바치고 헌신하면서 그들 인생에 사사건건 간섭하고 자신을 투영하려고 한다. 자식이 있어도 내인생을 살아야 되는 것이고, 자식들의 성취가 내 성취는 아닌데 말이다. 


'우리 가족' 문화에 너무 익숙해서 내 인생을 내가 주도적으로 살아가야 하는데 우리중 누군가에게 기대서 사는 것이다. 그래서 결혼을 하면 갑자기 챙겨야 할 우리 프리라이더가 너무 많아진다. 혼자 살 때는 나만 챙기면 됐는데 갑자기 우리를 챙겨야 하는 것이 누구에게든 버겁다. 심지어 갑자기 생긴 그 프리라이더들이 '우리'라는 명목하에 이래라 저래라 간섭까지 한다.


'우리'라는 단어로 엮지 말고, 그냥 가족 구성원 개개인의 삶과 사고방식을 존중해주면 가정에서의 갈등이 눈에 띄게 줄어들 것이다. 일단 이혼 소송 단골 사유 중 하나인 '시부모의 지나친 간섭' 같은 항목은 아예 없어질 거다. 근데 그걸 못해서 다들 맨날 싸운다. 그래서 이혼전문변호사는 돈을 번다.


물론 우리끼리 잘 뭉친다는 건 좋은 일이기도 하다. 끈끈한 유대감이 안정감을 준다. 혼자보단 둘이 나을 때가 많고, 둘보단 셋이 나을 때가 많다. 그래서 가정이 잘 굴러갈 때는 별 문제가 없다. 문제는 조금씩 갈등이 쌓여서 더 이상 '우리'가 아닌 것처럼 느껴질 때, 가정이 삐그덕거려서 '우리'로 엮이고 싶지 않을 때부터 생긴다. 윤여정 배우가 오스카상을 받을 땐 자랑스러운 우리 한국 영화계의 대배우지만, 과거에 이혼했을 땐 이혼녀가 어떻게 TV에 나오냐고 손가락질 받았던 것과 똑같다.


변호사를 찾아올 때는 '우리'가 더 이상 '우리'가 아니게 되었을 때다. '우리'에 익숙했던 사람들은 나 혼자 떨어져 나오는 과정에 서툴다. 이혼은 '우리' 중에서 '나'를 분리해내는 작업을 하는 건데 그게 혼자 하기에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서 이혼 소송할 때 힘든 것 중 하나가 부부가 같이 이룩한 공동재산을 나누는 부분이다. 윤여정의 오스카상 수상이 어디까지가 윤여정의 노력이고 어디까지가 한국 영화계의 성취인지 제3자가 감히 어떻게 알겠는가. 아마 영화계 관계자도 모를거고, 윤여정 배우 본인조차 모를 것이다. 이혼할 때 재산분할도 똑같다. 법원도 잘 모르니까 대충 뭉뚱그려서 판단하는 거다. 그래서 법원은 10년 이상 혼인기간이 유지되면 부부가 각자 50% 정도는 기여했다고 보아서 5:5로 재산분할을 하려는 경우가 많은데, 이걸 아무리 설명을 해줘도 어떤 의뢰인들은 이해를 하지 못한다. 


"내가 힘들게 피땀 흘려 번 돈인데 그 여자가 돈을 왜 가져가요? 한 푼도 못 줘요."

"내가 어떻게 일궈낸 재산인데 그 파렴치한 자식이 받는다고요? 제가 돈을 더 받았으면 받았지 절대 못줘요." 


우리 가족이 같이 노력해서 일궈온 것일텐데 의뢰인의 머리 속에 갑자기 우리는 없고 나만 남는다. 10년, 20년, 30년 넘게 '우리'에 편승해서 살아왔으면서 갑자기 '나'의 노력만 강조한다. 이런 사람들은 대개 자기만 희생하면서 살아왔다는 피해의식에 사로잡혀있다. 그래서 재산분할 기여도 산정방식에 대해 아무리 알려줘도 이해할 의지 자체가 없다. 피곤한 유형의 의뢰인들이다. 여태까지 '우리'로 잘 살아왔으면 서로의 노력을 좀 인정해주면 좋을텐데 말이다.


아무튼 그래서 또 이혼전문변호사는 돈을 번다. 우리 재산을 내 재산으로 바꾸는 과정이 너무 복잡하고 험난해서. 




이런 글을 쓰면서도 윤여정 배우의 인터뷰를 자꾸만 찾아보게 된다. 보태준 것도 하나도 없으면서 괜히 벅차오른다. 나도 정말 어쩔 수 없는 한국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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