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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갱도요새 May 16. 2021

변호사도 뇌동매매한다

수익률은 물어보지 마세요

이혼소송의 백미는 단연 재산분할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이 사람을 위로하는 단위로 쓰인다. 당장이라도 때려치우고 싶은 직장도 월급으로 버틸 수 있고, 무슨 사고를 당하든 돈으로 보상받는다. 그래서 이혼소송을 하면서 사람들은 재산분할로 한 푼이라도 더 받으려고 노력하고, 변호사는 그 과정에서 집요하게 상대방의 재산을 추적한다.


양육권이나 위자료 문제가 이혼 당사자들에게 감정적으로 매우 힘든 것에 비해 재산분할은 그나마 좀 덜하다. 물론 '내가 얼마나 희생하면서 살았는데'로 시작되는 감정적 호소를 피해 갈 수는 없지만 그래도 상대방의 재산을 조회하고 기여도를 입증하는 것은 양육권 다툼이나 유책사유 입증보다는 좀 더 객관적인 분야다.


수없이 많은 재산분할을 겪으면서 우리나라 가정 경제의 일면을 속속들이 본다. 정말 놀라울 정도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부동산 외에는 가진 재산이 없다. 그야말로 부동의 자산이다. 예금이나 보험도 있긴 있는데 미미한 수준이다. 사람들이 재산을 증식하는 방법도 부동산이다. 그래서 기여도를 입증하는 과정에서 필히 기재해야 하는 내용은 어디 아파트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했고, 그 뒤에 돈을 모아 무슨 아파트를 샀는데 그 아파트 가격이 올라 어디 아파트를 새로 샀고, 그 아파트가 또 올라 무슨 아파트를 새로 샀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아파트가 최종적으로 이혼하는 시점에 부부가 가진 유일한 자산이다. 그러니 '부동산 정책은 송구스럽다'라는 정부의 발언은 우리나라 가정 경제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는 뜻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서 요즘은 드디어 부동산 말고 다른 곳으로 돈이 쏠린다.






재산분할에서 제일 실속 없는 부부는 바로 전문직 부부다. 그중에 특히 더 실속이 없는 것은 문과 이과 양쪽 전문직의 끝판왕(?)이라고 할 수 있는 변호사 부부와 의사 부부(혹은 변호사와 의사 부부)다. 물론 원래부터 재산이 많았던 전문직은 해당사항이 없고, 자수성가형 전문직이 문제다. 다들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다 보니 재테크에 관심을 가질 시간조차 없다. 근데 근로소득이 많아서 또 재테크에 관심이 없어도 먹고사는데 아무 문제가 없다. 그래서 재테크를 못한다. 마냥 현금으로 쥐고 있다. 제로금리 시대라 은행에 넣어도 소용없다고들 하지만, 진짜 글자 그대로 현금으로 들고 있다. 재산분할 집행하러 집이나 사무실에 가서 쌍방 변호사 입회 하에 금고를 열고 그 자리에서 돈다발을 센다. 집도 그냥 엄청 좋은 집에 월세로 산다. 그래서 재산이 불어나질 않는다. 그래도 근로소득이 월등하게 높아서 잘 산다.


그런데 얼마 전 동기 오빠 결혼식이 있어서 동기 변호사들이 우르르 모여서 식사를 했는데, 충격적인 이야기가 오고 갔다. 분명 그 자리에 앉아있는 변호사들 열댓 명이 다 30대 초중반부터 연봉 1억 이상은 버는 사람들인데 '근로소득의 시대는 끝났다'라고 신세한탄을 하고 있는 것이다. 먹고 살기 너무 힘들다, 남들은 다 불로소득으로 얼마씩 버는데 일하는 것에 현타가 온다는 얘기를 다들 했다. 우리나라 근로소득자 중 연봉이 1억 넘는 사람은 전체 근로자의 4.4%밖에 안 되는데(물론 축소신고하는 사람도 많겠지만) 그런 사람들이 모여서 근로소득의 시대가 끝났다고 한탄하고 있다면 정말로 근로소득의 시대는 끝난 것이 맞다. 돈을 모아 부동산을 가지는 것이 가정경제의 핵심이었는데, 근로소득으로 더 이상 부동산을 살 수 없게 된 것이다.


실제로 최근에 근로소득의 시대가 끝났다는 걸 피부로 느낀다. 변호사들이 모이면 재테크 얘기는 잘 안 했는데, 요새는 너도 나도 투자정보 얘기를 한다. 하지만 여전히 변호사들은 일하는 시간이 너무 많고, 투자정보를 제대로 알아볼 시간은 없다. 부동산이며 주식이며 다 공부를 해야 분석을 하고 제대로 투자를 할 텐데 공부할 시간이 없다. 시간이 좀 생기더라도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데에 쓰기도 모자랄 정도로 적은 시간이다. 그래서 변호사들이 선택하는 투자전략은 바로 '뇌동매매'다.



뇌동매매 :  투자자의 독자적이고 확실한 시세 예측에 의한 매매거래가 아닌 남을 따라 하는 매매를 말한다. 즉, 투자자 자신이 확실한 예측을 갖지 못하고 시장 전체의 인기나 다른 투자자의 움직임에 편승하여 매매에 나서는 것이다. 뇌동매매는 간혹 주가를 급등 또는 급락시킴으로써 주식시장을 혼란시키기도 한다.
(다음 시사경제용어사전)


주식투자를 하는 사람들은 다 아는 말이다. 눈물을 머금고 손절하면서 뇌동매매하지 말라는 조언을 항상 들을 테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또 뇌동매매를 한다. 변호사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변호사들이야말로 뇌동매매의 끝판왕들이다.


변호사들끼리 우스갯소리로 하는 얘기가 '우리한테 투자정보가 들어왔을 정도면 끝물이다'라는 것이다. 투자에 관심을 가질 시간조차 없는 사람들한테까지 들어온 투자정보라면 이미 상투 잡는 시점이라는 거다. 실제로 그렇다. 게다가 변호사들은 매우 보수적이다. 맨날 이게 이 법에 저촉되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하지 말라고 자문해주는 사람들인 데다가, 평소에 늘 투자해서 망한 사람들이나 사기꾼들만 보기 때문에 정말 보수적이고 리스크를 싫어한다. 그래서 상승여력이 남아있는 시점에 정보를 입수해도 그게 계속 오르는지 판단하는데 한세월이 걸린다. 그래서 변호사들이 매수를 시작한다면 진짜로 거기가 고점이다.


그러니 매도 타이밍이 궁금하다면 주변에 변호사 지인을 두면 된다. 그 변호사 지인이 분할매수를 하겠다며 들어가서 두 번째 매수를 하는 시점이 바로 고점이다. 최근에 동기들이 너도나도 비트코인을 사기 시작한 시점부터 가격이 급락했고(다들 7,500~7,600만 원대에 물려있다), 철강주 상승세의 끝은 어디인지 다들 궁금해했는데 변호사들이 철강주를 사기 시작한 지난주에 떨어지기 시작했다.(라고 쓰고 있는 나도 샀는데, 조정장일 것이라고 강제로 행복회로 돌리고 있다. 올라야 한다.)



근데 또 변호사들은 정보가 오면 끝물이라는 걸 알면서도 뇌동매매할 수밖에 없는 게, 그 끝물인 투자정보를 주는 사람이 대개 또 변호사이기 때문이다. 뭔가 변호사가 말하면 더 신뢰감이 가고, 왠지 남들이 모르는 고급정보일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드는데 그건 변호사들끼리도 그렇다. 뭔가 클라이언트로부터 받은 고급 정보일 것 같고, 실제로 시장에선 상승세가 보이고, 주변 변호사들도 다 사니까 알면서도 또 속는다. 근데 알고 보면 그냥 끝물 정보가 변호사들 사이에 돌고 도는 것일 뿐이다. 그래서 맨날 고점에 물려서 팔 때까진 손실이 아니라며 엉엉 운다.


그래서 이런 끝물 뇌동매매에 몇 번씩 호되게 당한 변호사들은 결국 나라와 운명을 함께하는 투자전략을 취한다. 코스피 시가총액 1위인 삼성전자만 무작정 매수한다. 이래저래 삼성전자의 어깨가 무겁다.


부동산 정책은 실패했고 부동산 가격은 미친 듯이 올랐다. 연봉 1억 넘게 버는 변호사들도 이제 근로소득은 답이 없다고 판단하고 주식이든 코인이든 뇌동매매를 하기 시작했다. 매우 고소득자임에도 근로소득만으론 미래에 대한 확신이 전혀 서지 않을 정도로 시장경제가 무너지고 있다. 근로소득으론 답이 없는 것을 알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할 의욕을 상실한 상태다. 인플레이션 우려까지 겹쳐 그야말로 경제 대혼란의 시대다.


그런데도 금융위원장이라는 사람은 코인 투자를 하는 20대, 30대를 보며 '잘못된 길로 가는 것에 대해 어른들이 얘기해줘야 한다'라는 정도의 상황인식밖에 못하고 있다(도대체 어른이 몇 살부터인 거지?). 이쯤 되면 아무도 이 경제상황이 어떻게 튈 것인지 모르는 것 같다.


내일은 빨간 불이 들어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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