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러지약이있음을 양형에 참작하여 주십시오
밥도둑계의 일인자는 역시 간장게장이다. 음식 이야기를 쓰고 싶어서 <밥도둑의 변호인>이라는 글 묶음 제목을 떠올렸을 때 가장 먼저 떠올린 음식도 간장게장이었다. 내 동생이 가장 사랑하는 음식도 간장게장이었다. 게장덕후에는 크게 양념게장파와 간장게장파가 있는데, 어느 편이든 밥도둑으론 간장게장을 더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게딱지에 밥까지 비벼먹을 수 있어서 밥을 훔쳐간 죄질이 더 나빠서 그렇다.
내가 가장 좋아한 게장은 할머니가 만들어준 게장이었다. 아마 처음 먹어본 게장도 할머니가 만들어준 것이 아닐까 싶은데 안타깝게도 첫 게장의 기억이 없다. 내가 '게장'이라는 단어를 인식할 무렵 이미 나는 게장을 좋아하고 있었다. 게장은 '게장'이라는 단어도 몰랐던 어린이를 게장의 세계로 이미 끌어들였을 정도로 대단한 음식이다. 치아교정을 해서 게껍질이 자꾸 교정기에 끼는 것이 싫었던 시절에도 게장을 먹었다. 장염에 걸려서 거의 나아갈 무렵 너무 먹고 싶었던 게장을 먹었다가 또다시 장염이 도져서 1주일을 고스란히 더 고생하기도 했다. 아무튼 게장에는 사람을 멈출 수 없게 만드는 대단한 힘이 있다.
할머니는 나랑 동생이 게장을 좋아한다는 걸 잘 아셔서 종종 큰맘 먹고 게장을 왕창 만들어주셨다. 게가 결코 싼 가격이 아니었을 텐데. 할머니가 게장에 사이다를 넣는다고 해서 너무 충격받았던 기억이 난다. 사이다가 요리에 들어간다고? 콜라 슬러쉬만 왕창 먹던 어린 시절에 너무나 큰 충격이었다. 나는 게장을 잘 발라먹지는 못해서 늘 게다리에 살이 꽤 남아있었는데 동생은 다리살까지 아주 쪽쪽 잘 먹었다. 나는 역시 동생은 못 하는 게 없다고 감탄했다. 할머니는 내 동생이 게살을 쪽쪽 빼먹는 게 너무 기특하고 보기 좋다면서 자주 못해줘서 미안하다고도 했다. 거동이 불편해지시면서 할머니가 했던 말도 게장 더 못 해줘서 어떡하냐는 거였다. 그 말이 간장게장만큼 짰다.
대학생 시절에는 시각 장애인을 위한 점자책을 만드는 타이핑 봉사활동을 했는데, 그 근처에 '아현동 간장게장'이라는 간장게장집이 있었다. 타이핑한 책을 전달할 때마다 친구들과 그 게장집에 가서 야무지게 돌게 간장게장을 먹었다. 돌게 간장게장은 대학생들도 가볍게 사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엄청 저렴했다. 살이 막 엄청 많은 것은 아니라서 게살은 그야말로 호로록 뽑아 먹으면 순식간에 끝났고, 아그작아그작 게껍질을 씹어먹고, 된장찌개에 밥 비벼서 계란말이랑 슥삭슥삭 먹었다. 그 순간이 너무 행복해서 큰맘 먹고 꽃게장을 1kg 포장해서 집에 사 왔더니 엄마가 얘가 처음으로 반찬을 사 온다며 웃겨했다. 사온 게장을 맛있게 먹고 그 집에 가족들이랑 또 갔다. 주황색 앞치마를 두르고 동생이랑 뭐가 그렇게 행복한지 광대 승천하며 웃고 있는 사진도 남아있다.
그렇게 우리 자매는 게장을 사랑했는데, 얼마 전부터 동생은 더 이상 간장게장을 먹지 못한다.
엄청 어려운 일도 뭐든지 척척 잘 해내는 동생은 작년 여름에 척척 결혼을 하고 올해 2월에 척척 임신을 했다. 동생은 입덧도 심했고, 졸리다면서 잠도 계속 잤다. 매일 핸드드립 해서 먹던 커피를 110ml 작은 커피잔에 반 정도 채워서 조금만 마셨고, 모유수유까지 생각하면 와인을 한동안 못 마실 테니 와인셀러를 나한테 주겠다는 말까지 했다. 고기 굽는 냄새도 역해서 못 먹었다. 못 하는 게 너무 많았다. 동생은 육회도 좋아했는데, 엄마 아빠가 육회도 못 먹게 해서 슬퍼했다. 내가 안타까워하자 동생은 복통과 설사로 하루 종일 화장실에 붙어 있으면서도 '나한테 이렇게 막 대하는 건 자식뿐이야. 근데 생각해보니까 나도 엄마 아빠한테 너무 막 대한 것 같아.'라고 의젓하게 말했다. 그 힘든 와중에도 부모님한테 미안한 마음을 가지다니 내 동생이지만 진짜 대단한 사람이었다.
평소에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었던 일을 당연하게 못하게 될 정도로 임신은 여성 신체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온다. 동생은 좋아하던 새우를 먹고 갑자기 입술이 간지럽다고 했다. 그렇게 내 동생은 갑자기 갑각류 알러지가 생겼다. 그렇게 좋아하던 간장게장도 더 이상 먹을 수 없었다. 나는 임신하면 없던 알러지가 생길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이번에 처음 알았다. 출산장려정책의 일환인지 모르겠는데, 우리 사회는 임신하면 여성의 신체에 어떤 부작용이 생기는지 전혀 알려주지 않는다. 아니, 임신을 시도만 해도 엄청난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는 건 아마 대부분의 사람이 모를 것이다. 내 동생이 그랬다.
동생이 임신을 한 것으로 알았는데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기까지 한 달이 좀 넘게 걸렸다. '포상기태'라는 질병이었다. 태어나서 처음 들어본 병명이었는데 임신한 여성 1,000명 중 한 명 꼴로 발생하는 질병이라고 했다. 태반이 비정상적으로 증식하는 질병인데, 수술을 받은 이후에도 남아있는 조직이 융모암으로 발전할 수 있어서 1년 간 피임을 하면서 추적검사를 해야 한다고 했다. 제대로 임신이 된 것도 아니고, 그냥 임신을 시도만 했을 뿐인데도 동생은 너무 많이 아파야 했다. 왜 아이를 가지려고 노력했는데 아파야 하냐며 울었다. 가족들이 아무리 안타까워해봤자 동생 대신 아플 수도 없었고, 고통을 고스란히 견뎌야 하는 건 동생이었다. 동생 집에 있는 '임신 축하 선물세트' 박스를 보면 간장게장을 국물 채로 들이킨 것처럼 속이 짜고 쓰렸다.
나는 동생이 아프지 않을 수만 있다면 동생이 아이를 낳지 않아도 아무 상관이 없다. 부디 다른 가족들도 그렇게 생각하면 좋겠다. 그 누구도 동생에게 임신을 강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니, 이 세상 그 누구도 다른 누구에게 임신을 강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자신이 원해서 여러 번 시도를 해도 부작용으로 고통받아야 하는 것이 임신이다. '애는 언제 낳을 거야?', '둘째도 낳아야지', '자식 많이 낳아야 애국자야' 같은 말을 그 누구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자식을 낳고 싶다고 결심을 한다면 그렇게 옆에서 잔소리를 해대지 않아도 낳으려고 노력할 것이고, 그렇게 노력하는 과정에서도 실패와 부작용으로 고통받는다. 그 고통을 옆에서 조금도 덜어주지 못할 사람들이 툭툭 던지는 말로 부담감만 지우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이를 낳든 낳지 않든 동생은 행복하고 멋있게 살아갈 것이다. 아이가 있으면 알콩달콩 예쁘게 키울 것이고, 아이가 없으면 또 없는 대로 내 동생은 척척 뭐든지 다 해내며 눈부시게 살아갈 거다. 나는 동생이 어떤 선택을 하건 동생이 행복하기만 하면 좋다. 어떤 선택을 하건 동생에게 힘들거나 어려운 일이 생기면 나는 무슨 일이든 도와줄 수 있다. 나는 그저 동생이 마음껏 간장게장을 먹으면서 행복하게 살면 좋겠다. 동생이 아이를 낳는다면 나는 기꺼이 그 아이를 위해 게살을 야무지게 발라줄 수 있다.
아무튼 간장게장은 나쁜 밥도둑임에는 틀림이 없다. 동생이 먹고 싶어도 못 먹게 되었으니까. 그래도 다행인 것은 알러지약을 먹으면 조금은 게장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게장은 알러지약을 먹고 먹을만한 가치가 있는 음식이다. 게다가 알러지가 갑자기 없어질 수도 있다고 하니까 부디 그러길 바라야겠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피고인 간장게장은 갑각류 알러지를 갑자기 앓게 된 모든 피해자들이 더 이상 간장게장을 먹지 못하고 괴로워하게 된 사실을 모두 인정하고 반성하고 있습니다. 다만 알러지약이 있음을 참작하시어 부디 집행유예를 받을 수 있도록 양형에 참작하여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