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다 드라마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혼할 때 받는 돈을 전부 위자료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위자료로 1,000만 원을 받았다고 하면 뭐 그거밖에 못 받냐고 놀라고, 다른 손해배상 소송에서 '위자료'라는 말을 쓰면 "저 이혼 안 했는데요?"라고 놀라는 경우도 있다. 얼마 전 미우새에서도 탁재훈이 계속해서 김구라에게 위자료를 준 거냐고 묻자 김구라가 위자료가 아니고 넓은 의미의 재산분할이라고 정정하기도 했다. 이혼을 경험해 본 탁재훈마저 위자료의 의미를 모르고 있다. 일이 이지경까지 온 것에는 TV가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날카로운 목소리로 '위자료 10억 아니면 이혼 못해!' 따위의 말을 하는 드라마가 아직도 많다.
위자료는 모든 정신적인 손해에 대한 배상을 뜻한다. 쉽게 말하면, 잘못한 사람이 그 잘못으로 피해를 본 사람에게 '나 때문에 네가 스트레스를 받아서 미안하다'라며 주는 돈이다. 얻어맞아도 가해자로부터 위자료를 받고, 길을 걸어가다가 교통사고를 당해도 운전자로부터 위자료를 받는다. 이혼을 하면 이혼을 할 수밖에 없게끔 만든 배우자로부터 위자료를 받는 것이다.
위자료는 '정신적 손해'에 대한 배상이다. 그밖에 실질적인 손해가 있으면 그건 따로 배상을 받을 수 있다. 예를 들어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 치료비나 간병인비, 사고로 일을 하지 못한 기간에 대한 급여 상당액은 따로 배상을 받는 것이다. 우리 법원은 실질적인 손해에 대해 적절한 배상이 이루어지면 정신적인 손해도 상당 부분 배상이 되었다고 판단하고, 그렇게 해서도 회복되지 않는 정신적인 손해에 대해서만 위자료를 지급하게끔 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 민법은 정신적 손해에 대해 위자료를 지급해야 한다고 규정해놓고 그걸 얼마로 정해야 하는지는 따로 법에 기준을 마련해놓지 않았다. 그래서 판사마다 판결이 제각각이면 안 되니까 대법원에서 나름대로 실무상 위자료 산정기준을 마련해두고 있다. 늘 바쁜 법원의 특성상 업데이트가 잘 안 되는데, 세월호 참사나 가습기 살균제 사건 등 나라에 큰 이슈가 터질 때마다 기준이 바뀌어 조금씩 증액되긴 한다.
일반적으로 교통사고 등 불법행위로 사망 사고가 있을 경우 피해자가 무과실일 때 1억 원 정도를 위자료로 받을 수 있다. 사망에 대한 위자료가 1억 원 정도이다 보니 이혼 사건에서는 위자료가 터무니없이 적다. 사회통념상 죽는 것보다는 이혼이 정신적 손해가 덜하니까 1억 원 이상으로는 절대 인정될 수 없는 것이다. '이혼해서 위자료로 10억 원 받았다' 같은 말은 다 뭘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생각하면 된다. 자극적인 이혼이나 불륜 사건 뉴스 댓글에 늘 "위자료 몇억 청구해라"라는 댓글이 달리는데, 변호사로서는 답답할 따름이다.
이혼소송에서는 대개 1,000만 원~3,000만 원 수준에서 위자료가 정해진다. 변호사가 사건의 내용도 보지 않고 함부로 결과에 대해 단언을 해서는 안되지만 이혼소송에서 3,000만 원 이상으로 인정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것에 대해서는 단언할 수 있다. 간혹 이보다 높은 금액의 위자료가 인정되기도 하는데, 이건 한쪽 배우자가 이혼 외에도 지나친 손해를 가한 경우이다. 화가 난다는 이유로 차로 배우자를 들이받거나 하는 경우다.
부정행위, 폭행 등 명백하게 한쪽 당사자의 책임이 있는 이혼에서는 위자료가 쉽게 인정되지만 성격 차이나 경제적 문제로 이혼하는 경우는 대개 양 당사자 다 서로에 대해 조금씩은 잘못이 있다. 깊게 파고 들어가면 원인을 제공한 당사자가 있기야 하겠지만 법원이 그렇게까지 내밀한 영역을 일일이 확인할 수는 없고, 명확한 입증자료가 있는 것이 아닌 이상 그냥 둘 다 잘못했다고 판단하고 쌍방의 위자료 청구는 기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이혼 판결문에 제일 많이 등장하는 문구는 "원고와 피고의 혼인관계가 파탄에 이른 데에는 원고와 피고 모두에게 그 책임이 있다"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혼하는 당사자들이 법원의 판결을 받아보고 더 큰 고통을 받는 경우가 많다. 대개 이혼소송은 가사조사니 재산조회니 하다 보면 판결을 받기까지 짧아도 1년 이상의 기간이 소요되는데, 그 기간 동안 상대방의 서면을 받아보면서 괴로워하고, 결혼 상태도 이혼 상태도 아닌 자신의 불안정한 상태에 스트레스를 받다가 최종적으로 받아본 판결문에서는 둘 다 잘못했다며 위자료가 인정되지 않거나, 인정되더라도 미미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의뢰인들에게 웬만하면 조금 양보하고 조정으로 마무리 짓자고 하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TV에서 위자료가 몇 억씩 될 거라는 환상을 심어주지 않았다면 판결문을 받아본 당사자들이 좀 덜 힘들어할까? 하지만 드라마에서 "삼천만 원 위자료 안 주면 이혼 못해줘!"라고 하기에는 모양이 빠지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요즘처럼 뭐든지 다 비싸진 시기에 위자료도 좀 비싸질 필요가 있지 않나 싶기도 하다. 다른 건 다 오르고 월급만 안 오른다지만, 위자료도 안 오르긴 매한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