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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갱도요새 Jul 04. 2021

황혼이혼, 쉽지만은 않아요

그래도 다들 합니다

요즘 들어 부쩍 황혼이혼에 대한 관심이 높다. 뉴스에도 황혼이혼과 관련된 기사가 심심찮게 올라온다. 작년 총 이혼건수 중 37.2%가 황혼이었다고 한다. 코로나 때문에 법원이 계속 휴정을 해서 작년 이혼건수는 전년대비 좀 줄었는데, 황혼이혼건수는 오히려 늘었다. 올해도 1분기에만 황혼이혼건수가 1만 건 이상이다. 이혼 상담을 하면서도 황혼이혼이 늘어난 것을 부쩍 느낀다.


그게 뭐 대단한 현상은 아니고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다들 평균수명이 길어지면서 더 이상 배우자를 참고 견딜 수 없는 것이다. 예전엔 '몇 년만 더 참고 죽자' 했지만 요샌 남은 여생이 너무 길어져서 참고 견디는 것보다 헤어지는 것이 효용이 더 높아진 거다. 


나이가 많으신 분들은 이혼이 부끄럽거나 창피한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이혼을 한다는 사실 자체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경우가 많고, 이혼을 결심한 당사자도 수시로 갈팡질팡해서 주로 자녀들이 설득해서 이혼이 이루어진다. 이혼 자체에 대해 부정적이다 보니 상대측에서 절대 이혼은 못해주겠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별거를 할지언정 법적으로 이혼은 못 해주겠다는 경우도 수두룩하다. 그래서 태생적으로 협의이혼이 되긴 어렵고, 결국 변호사를 찾아와 재판상 이혼을 하는 수밖에 없다. 


또 다른 난관은 재산분할이다. 부부가 20년~30년 이상 모아 온 재산을 분할해야 하는데, 이걸 당사자들끼리 결정하는 것이 쉬운 일만은 아니다. 특히 나이 많으신 남자분들은 혼자선 밥 한 끼도 못 해 먹으면서도 가사노동의 중요성을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터무니없는 재산분할 액수를 말하곤 한다. 예를 들어 10억 원 이상 재산이 축적되어 있는데 재산분할로 3천만 원밖에 못주겠다는 식이다. 그래도 억 단위로 논의가 되어야 좀 양보를 해서라도 협의이혼을 하는데, 천만 원 어쩌고 하면서 재산분할 이야기를 한다면 결국 변호사를 찾아올 수밖에 없다. 


얼마 전 <아침마당>에 나와서 이혼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말하는 전원주 배우. 나이 드신 분들은 이혼을 해야 하는 상황보다 이혼 그 자체에 대해 부정적인 경우가 많다.


대한민국은 엄하신 아버지와 자애로운 어머니로 시작하는 천편일률적인 자기소개서를 모든 청년들이 제출해온 희한한(?) 나라다. 그 현상은 황혼이혼에까지 이어져서 엄하신 아버지보다는 자애로운 어머니 편을 드는 자녀들이 많다. 그래서 황혼이혼을 의뢰하는 여성 의뢰인들은 꼭 자녀들과 함께 상담을 오는데, 남성 의뢰인들은 그냥 혼자 와서 '자식들은 다 엄마 편이다'라며 하소연을 한다. 왜 그렇게 우리나라 아버지들은 자기 편도 없게끔 엄하게 살아가는 것인지 의문이다. 


다행히도 그런 아버지들에게도 변치 않는 든든한 자기편이 있는데, 바로 돈이다. 아버지들은 경제력이 있어서 수임료를 본인 지갑에서 낼 수 있는데, 어머니들의 수임료는 자녀들의 지갑에서 나온다. 안타깝게도 여기서 어머니의 자애로움이 얼마였는지 결정되곤 한다. 아버지에게 맞고 사는 어머니가 안타깝다며, 맨날 바람피우는 아버지를 더 이상 참지 말라며 어머니에게 이혼 소송을 하시라고 부추기던 자녀들은, 변호사 비용을 듣고 나면 다시 돌아가 고민해보겠다고 한다(그렇게 엄청 비싼 비용이 아닌데도 그렇다.). 그러면 안타깝게도, 자애로운 어머니는 엄한 아버지를 더 참고 사셔야 한다.


Image by Reimund Bertrams from Pixabay


변호사에게 황혼이혼 사건은 그리 편한 사건은 아니다. 의뢰인의 자녀들이나 그 자녀들의 배우자들, 손자 손녀들까지 개입해서 사건에 대해 물어본다. 사건 진행이 어떻게 되는 건가요, 돈 얼마나 받을 수 있나요, 승소 가능성이 얼마나 되나요 같은 질문은 그냥 그러려니 하고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그러나 시도 때도 없이 전화해서 이 증거를 제출하면 유리한가요, 이러이러한 내용을 서면에 쓰면 유리한가요, (자녀가) 제 명의로 재산을 옮겨놔도 되나요, (20년도 더 된 일을 이야기하면서) 이러이러한 일도 있었는데 사건에 반영해주실 수 없나요 등등 의뢰인의 온갖 가족 구성원들이 사건과 별 관계없거나 도움이 되지 않는 질문을 퍼붓는 것이 썩 유쾌하지만은 않다. 


늘 의뢰인의 배에 사공이 너무 많다. 게다가 미묘하게 그 사공들의 이해관계가 조금씩 다르다. 자녀가 여럿인 경우 한 명은 의뢰인 편, 다른 한 명은 의뢰인의 배우자 편인 경우도 있다. 상속과도 연결되기 때문에 가족관계가 복잡한 경우(재혼을 해서 각자에게 전혼의 자녀들이 있는데 이혼을 하는 경우 등 온갖 가족관계가 다 있다.) 특히 더 사공들의 이해관계가 다르다. 이런 가족 구성원들이 각자 다 다른 말을 하는 경우가 있고, 변호사가 똑같은 말을 모든 가족 구성원한테 다 해줘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제발 소통의 창구를 하나로 통일해달라고 의뢰인에게 신신당부를 하는데, 잘 지켜지지 않는다. 원칙적으로는 일을 맡긴 의뢰인 본인의 말만 들으면 되지만, 그렇게 하면 각종 가족 구성원들이 변호사가 일을 대충 한다는 등의 불만을 토로한다.


황혼이혼은 그만큼 여러 가족 구성원의 인생을 결정짓는 문제다. 오래 이어져온 혼인기간 동안 얽히고설킨 가족들의 인생이 황혼이혼에 의해 한순간에 바뀌기도 한다. 황혼까지 이어온 많은 것들이 바뀐 채로 해가 진 인생의 저녁이 시작되는 것이다. 저녁 있는 삶을 모든 사람이 바라는 것처럼 저녁은 정말 중요하다. 많은 것을 변화시켜서라도 얻고 싶은 간절한 저녁이 있다면, 황혼이혼이 정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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