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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갱도요새 Aug 03. 2021

이혼하고 싶지만 이혼 안 하고 싶어

feat. 관성의 법칙

이혼 사건 상담을 하면서 제일 난해한 경우는 이혼 여부에 대한 결심을 굳히지 못한 채 상담을 받으러 오는 사람들이다. 놀랍게도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이혼을 고민해서 변호사를 찾아오면서도 이혼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상담 과정에서 어떻게든 이혼을 하지 않을 핑계를 찾으려는 것 같은 사람도 있다. 기껏 변호사를 선임해놓고 집에 돌아가서 생각해보니 역시 이혼을 하지 말아야겠다며 선임료를 환불받아가더니 그다음 주에 다시 선임하겠다고 오는 경우도 있다. 소송이 한창 진행되던 중에 다시 잘 살아보기로 했다며 이혼 소송을 취하하고, 이틀 뒤에 다시 배우자로부터 폭행을 당해 다시 소를 제기한 경우도 종종 있다.


뉴턴의 운동법칙 중 제1법칙인 관성의 법칙은 "외부에서 힘이 작용하지 않으면 운동하는 물체는 계속 그 상태로 운동하려고 하고, 정지한 물체는 계속 정지해 있으려고 한다"라는 원칙을 말한다. 외부에서 힘이 가해지지 않으면 상태를 유지하려는 경향을 가진다는 것이다. 놀랍게도 관성의 법칙은 물체의 운동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이혼에도 관성의 법칙이 적용된다. 결혼한 사람들은 외부에서 힘이 작용하지 않으면 최대한 결혼한 상태를 계속 유지하려고 한다. 그래서 이혼을 고민하면서도 이혼을 안 하고 싶은 것이다.


TMI지만 아이작 뉴턴은 평생 결혼하지 않고 솔로로 산 것으로 유명하다.


렇게 이혼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모두 동시에 이혼을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헤어지기로 결심한 순간부터 실제 이혼에 착수하기까지 6개월~3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된다(https://www.mk.co.kr/news/culture/view/2012/11/782793/ , 매일경제, 男과 女 이혼 결심 후 행동까지 얼마나 걸릴까?). 이혼은 부부 사이의 갈등을 해결하는 매우 합리적인 수단이지만, 동시에 어쩔 수 없이 기존의 가족 형태를 변경시키는 결과를 낳게 된다. 익숙했던 것이 하루아침에 바뀌는 경험은 누구에게나 큰 충격을 주기 때문에 누구나 이혼을 진짜로 결심하기까지 끊임없이 이혼을 하지 않을 이유를 찾는다.


이혼하고 싶어 하면서 이혼을 하게 되는 그 순간까지 이혼을 하지 않을 이유를 찾는다는 것이 아주 모순적이지만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한다. 어떻게든 가족의 형태를 유지하려고 하고 결혼한 상태를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끊임없이 이혼을 하지 않으려고 자기 합리화를 한다. 그래도 이 사람만 한 사람 없다, 결국 그놈이 그놈이다, 어차피 똑같은 문제로 또 헤어진다, 아이가 클 때까지만 참자, 우리 애 결혼할 때까지만 참자, 나만 잠깐 참으면 된다, 아파트 실거주 요건 다 채울 때까지만 같이 살자 등 온갖 생각들이 다 동원되어 결혼한 상태를 유지하려고 한다.


하지만 뉴턴의 관성의 법칙에는 중요한 전제가 있는데 바로 '외부에서 힘이 가해지지 않을 때'라는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실에는 마찰력이 존재하기 때문에 위 조건이 충족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안타깝게도 결혼생활에서도 마찬가지다. 그 마찰력은 바로 이혼을 결심하게 만들었던 그 이유들이다. 굴러가던 가정이 그대로 굴러가야 하는데 이혼을 해야 할 원인들이 마찰력으로 작용해서 굴러가던 가정을 멈추게 하는 것이다.



이혼을 하고 싶은데 동시에 이혼을 하고 싶지 않아 합리화하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한다면, 모순적이라고 자책할 필요 없이 더 시간을 두고 충분히 고민해보면 된다. 이혼은 누구에게나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누구나 하루 이틀 고민한 것이 아니기에 하루 더 고민한다고 해서 결과가 드라마틱하게 바뀔 일은 없고, 아마 마음속 깊은 곳에는 이미 정답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가정을 유지하기로 했든 이혼을 하기로 했든 확신을 가지려면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에 확신이 들 때까지 충분히 더 고민하고 결심해도 된다. 확신이 들면 실행에 옮기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혼을 하지 않으려고 합리화를 해도 이혼을 고민하게 만든 원인이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는 이상 결국은 그 마찰력을 이기지 못하고 굴러가던 혼인 생활이 멈추게 될 것이다. 이혼을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면 아직 관성을 이겨낼 정도의 힘이 가해지지 않은 것이다. 문제는 운동하는 물체는 마찰에 의해 하던 운동을 멈출 뿐 상처 받지 않지만, 사람은 마찰에 의해 계속해서 상처 받는다는 것이다. 만약 가정을 유지하면서 계속 상처 받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면 혹시 관성에 의해 겨우 굴러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되돌아보고 조금 더 자기 자신을 보살피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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