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는 그때, 친구라는 말이 국산말인 줄 알았는데, 국어선생 얌생이가 친할 친자에 옛 구자를 써서 오래 두고 가깝게 사귀는 벗이라고 썼던 게 기억난다. 억수로 멋있는 말 아이가?"
영화 <친구>에서 준석(유오성)이 동수(장동건)에게 한 말이다. '오래'와 '가깝게'가 동시 충족되는 경우에 한해서라면 지금 내 곁엔 오래 가깝게 사귀어온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그리고 언젠가 찾아올 생의 마지막 순간에는 몇 명이나 내 곁에 남아 있을까?
올해 103세가 되신, <백 년을 살아보니>의 저자 김형석 교수는 "가깝게 지냈던 두 친구를 십여 년 전에 보내고 난 후에는 내 인생을 사는 것 같지가 않았다. 어머니와 아내가 떠나니까 집이 텅 빈 것 같았는데 친구가 떠나니 세상이 텅 빈 것 같았다"라고 말한다. 종자기가 죽자 백아가 거문고의 줄을 끊은 심정과 다르지 않을 것 같다.
2. 꿈 많고 순수했던 고교 1학년 때 유안진 교수의 <지란지교를 꿈꾸며>를 처음으로 읽었다. 마침 밤새 비가 내리는 날이었는데 창밖의 빗소리를 들으면서 벅찬 감정을 추스르느라 밤을 꼬박 지새웠다. 그리고 내 평생 단 한 사람이라도 이런 친구를 만나게 되기를 소망했다. 지란지교(芝蘭之交)는 지초(芝草)와 난초(蘭草)의 교제라는 뜻으로, 벗 사이의 맑고도 고귀한 사귐을 이르는 말이다.
저녁을 먹고 나면 허물없이 찾아가
차 한잔을 마시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입은 옷을 갈아입지 않고 김치 냄새가 좀 나더라도 흉보지 않을 친구가 우리 집 가까이에 있었으면 좋겠다.
비 오는 오후나, 눈 내리는 밤에 고무신을 끌고 찾아가도 좋을 친구 밤늦도록 공허한 마음도 마음 놓고 열어 보일 수 있고 악의 없이 남의 얘기를 주고받고 나서도 말이 날까 걱정되지 않는 친구가...
사람이 자기 아내나 남편, 제 형제나 제 자식 하고만 사랑을 나눈다면 어찌 행복해질 수 있으랴 영원이 없을수록 영원을 꿈꾸도록 서로 돕는 진실한 친구가 필요하리라
(중략)
그러다가 어느 날이 홀연히 오더라도, 축복처럼 웨딩드레스처럼 수의를 입게 되리라. 같은 날 또 다른 날에라도.
세월이 흐르거든 묻힌 자리에서 더 고운 품종의 지란이 돋아 피어 맑고 높은 향기로 다시 만나 지리라.
<지란지교를 꿈꾸며> 중에서...
3. 상식만천하 지심능기인(相識滿天下 知心能機人). '서로 얼굴을 아는 사람은 세상에 가득하지만 마음까지 아는 사람은 얼마나 있을까?'라는 뜻으로 <명심보감 교우 편>에 나오는 말이다. 점점 '나' 중심의, 개인화되어가는 현대사회에서 서로의 마음까지 알아주는 우정이 가능하기는 할까? 인생의 전반전에 이렇게 마음까지 알아주는 친구를 이미 옆에 두고 있다면 꽤 성공한 인생이라 자부해도 좋을 것이다.
혹 그렇지 못한 경우라도 실망하거나 조급해할 필요는 없다. 아직 후반전이 50년이나 남았다. 좋은 친구를 만날 시간은 충분하다. 다만, 친구를 대하는 마음가짐만은 꼭 달라져야 한다. 기회나 상황 탓을 해서는 안 된다. 그래야 오랫동안 내 옆을 지켜줄 친구가 생긴다. 그 친구는 새롭게 만나게 될 수도 있고, 이미 알고 지내는 사람 중에 우정이 더욱 깊어지는 경우도 될 수 있을 것이다.
4. 평소 '굳이 많은 친구를 사귀고 싶지 않다. 내 무덤 앞에서 진심으로 슬퍼해 줄 진정한 친구 한두 명이면 족하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만약 그 한두 명의 친구가 나보다 먼저 세상과 작별하면 어떻게 될까? 게다가 내가 친구들이 떠난 뒤에도 수십 년을 더 살게 된다면?
기대수명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시대에서는 서로의 마음까지 알아주는 한두 명의 '찐' 친구도 좋지만, 그보다 좀 덜 깊은 우정이라 할지라도 친구는 많을수록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해 본다. 그래야 내 삶이 덜 고독할 것 같다.
친구는 많을수록 좋다는 생각은 나의 오래된 지론이다. 그래서 가깝게 지내는 사람과 정례적으로 만나는 모임이 꽤 많다. 그중에는 20년이 훌쩍 넘은 모임도 있다. 한창 사회에서 바쁘고 왕성하게 활동할 40~50대 나이라 전 멤버가 한 번에 다 모이는 것은 쉽지 않다. 그래도 세월이 쌓이니 띄엄띄엄 만나도 늘 즐겁다.
사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누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면 모이기가 쉽지 않다. 예컨대 매 분기 중간 달의 두 번째 화요일처럼 모이는 날짜를 미리 정해 놓는 게 좋다. 그리고 가급적이면 회비를 걷어서 운영해야 그 모임이 건강하게 오래간다.
2001년 7월부터 20년 넘게 이어져 온 광고업계 친목 모임 <양사모>
5. 사람이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꼭 그 나이인 것은 아니다. 서류상으로 등재된 나이와 스스로 느끼는 나이 사이엔 분명 간극이 존재한다. 때론 플러스로 때론 마이너스로. 2018년 어떤 네덜란드인이 서류상에 등재된 나이를 고쳐달라며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고 한다. 자기가 느끼는 나이는 49세인데 비해 공식적인 나이가 69세로 되어 있어서 일과 연애에서 차별을 받는다는 것이 소송의 내용이었다. 한번 웃고 넘길 수도 있지만 왠지 이런 일이 왕왕 벌어질 것도 같다.
100세 인생 시대에서는 왕성하게 활동하는 기간이 늘어남에 따라 새로운 배움의 장소, 봉사활동, 취미생활, 2막으로 시작한 일터, 여행지 등에서 서로 다른 여러 세대들이 뒤섞일 개연성이 훨씬 커졌다. 아울러 그런 활동이나 장소에서 새로운 친구를 만날 기회도 상대적으로 많아졌다.
반드시 내 나이 또래와만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고정관념을 깨트린다면 나이 차를 넘어서는 우정을 나눌 수도 있을 것이다. 앞 세대는 뒷 세대에게 먼저 경험한 세상에 대한 '지혜'를 전해줄 수 있고, 반대로 뒷 세대는 앞 세대에게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의 새로운 '지식'을 알려줄 수도 있다. 요즘은 선배들이 알려주는 것 이상으로 후배들에게 더 많이 배우는 세상이다. 열린 만남을 위해서는 내 생각이 먼저 열려야 한다.
6. 나의 몇몇 모임 중에는 나이 차이가 제법 나는 후배들과의 정기적인 만남이 있다. 멤버 중에는 띠 동갑보다 더 나이 차이가 있는 친구도 있다. 다들 자신의 삶에 열심인 친구들이다.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도 그들의 관점에서 하는 얘기로 들으면 다르게 들린다. 그래서 배울 게 많다. 그리고 다양함, 변화무쌍함, 의외성이 있어서 늘 즐겁다. 이 친구들을 만나는 시간 동안에는 시간이 멈춘 듯 늙지 않는 것 같다.
다만, 꼰대가 되지 않도록 경계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매너다. 나이가 들면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꼰대 짓을 전혀 안 할 수는 없겠지만 가벼운 눈웃음으로 지나갈 수 있을 정도는 묵인된다. 그것만 주의한다면 후배들과도 격의 없이 그리고 허물없이 잘 지낼 수 있다.
웹툰, 웹드라마 등 디지털 콘텐츠 분야 후배들과의 정례 모임
7. 걷기 모임, 러닝 크루, 등산모임, 산악자전거 동호회, 프리다이빙 동호회, 당구 동호회, 골프 모임 등 다양한 레포츠 활동을 함께 하는 모임을 적극 권유하고 싶다. 100세 인생 시대에 가장 중요한 건강을 돌보는 동시에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도 만날 수 있다.
건강하고 열정적인 삶의 원동력은 이런 레포츠 활동으로 체력을 다지고,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고, 여러 사람들과 즐겁게 얘기하고 웃는 데서 얻을 수 있다. 친구를 만나서 매번 술, 커피, 밥만 먹을 수는 없다. 함께 하는 활동이 있으면 더 건강하게 오래 볼 수 있다. 대화의 주제도 건강해지고 다양해진다. 아! 독서모임도 좋을 것 같다.
8. 미래에는 틀림없이 이동 수단이 더 편리해지고 빨라질 것이다. 세계는 넓고 살기 좋은 곳은 많다. 굳이 친구들과 가까이에 모여 살 필요는 없다. 어떤 사람은 환경이 바뀌는 것을 두려워하기도 하는데 막상 도전해보면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해봐야 안다. 국내에서도 다양한 곳에서, 경우에 따라서는 해외에 적당한 곳을 택해서 사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유붕자원방래 불역열호(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멀리서 벗이 나를 찾아와 주면 얼마나 반가울까? 소주잔을 앞에 두고 밤을 지새우며 얘기를 나누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나는 적당한 시점을 골라 제주도에서 살 계획을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다. 이미 공공연하게 친구들에게 나중에 꼭 놀러 오라고 홍보 중이다.
9. <사자(死者)의 서(書)>는 고대 이집트에서 죽은 사람의 관 속에 미라와 함께 넣어두는 문서로, 사후세계의 안내서로 쓰였다. 이 문서에 따르면 모든 사람은 두 번 죽는다고 한다. 영혼이 육신을 떠날 때 한 번 죽고, 그를 기억하는 마지막 사람이 죽을 때 다시 한번 죽는다는 것이다.
죽은 자가 그를 아는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지는 속도는 다 다르다. 어떤 이는 그리 오래지 않아 당신을 기억에서 완전히 지울 수도 있을 것이고 또 어떤 이는 자신이 죽는 날까지 두고두고 당신을 그리워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설마 모든 사람의 기억에서 빨리 사라지기를 바라는 사람이 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그 부분은 죽은 자가 살아있을 때 충실히 해야 할 몫이다. 죽은 후엔 어쩔 도리가 없다.
삶이 길어졌다고 해서 우정의 개념이 달라질 것은 없다. '지란지교'의 시작과 끝은 모두 오늘 하루를 친구와 어떻게 보내느냐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오늘 내가 친구와 나눈 대화, 행동 하나하나가 우리 사이의 우정의 발현이고 인생의 편린으로 남는다. 친한 사이일수록 만남의 매 순간이 서로를 향한 진심으로 충만해야 한다. 후회 없는 오늘이 되도록 애써야 한다. 결국 그것이 모여 나와 친구의 인생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