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적자생존'은 환경에 가장 잘 적응하는 생물이나 집단이 살아남는다는 뜻이다. 그런데 다윈(C. Darwin)의 <종의 기원>이나 스펜서(H. Spencer)의 <생물학의 원리>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지금부터 말하려고 하는 '적자생존'은 진화론과는 차원이 전혀 다른 이야기지만 100세 인생 시대를 잘 살아가는 방법이라는 점에서는 연관성이 있다.
2. 신입사원 티를 막 벗었을 무렵 회사에서 마련한 교육 워크숍에 참가했다. 매년마다 하는 정례적인 교육 프로그램이었지만 "이게 머선 129?"란 말이 나올 정도로 당시의 교육은 나의 예상을 완전히 뛰어넘었다.
강사가 우리에게 부여한 첫 번째 과제는 놀랍게도 가족에게 남길 유언장을 작성하라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모두가 당황해서 시끌벅적 웅성대던 강의실이 곧 침묵에 빠져들었다. 주어진 시간은 30분이었지만 빈 노트를 내려다보고 멍하니 앉은 채 시간을 죽이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단 한 번도 유언장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다음 과제도 비슷했다.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나에게 딱 1년의 시간이 주어졌다고 할 때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일, 소위 버킷 리스트를 적어보라는 것이었다. 유언장보다는 수월한 과제였지만 이 또한 지금껏 제대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에 그리 간단치가 않았다. 왜 이런 것을 자꾸 시키는지, 왜 자꾸 대략난감한 상황을 만드는지 몹시 당황스러웠다.
그런데 사실 이 두 과제의 숨은 의도는 유언장과 버킷 리스트를 작성하는 행위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평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무언가를 머릿속에만 남겨 두지 말고 기록하고 적는 습관을 일상화하라는 것이었다.
강사의 말을 빌자면, "적자생존의 시대다. '적는 사람'이 살아남는다. 적어 놓고 들여다보면서 실천하는 것과 그때그때 기분에 따라 하는 행동은 차원이 다른 결과를 낳는다.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일들도 마찬가지다. 일단 적어 놓으면 언젠가는 실천하게 된다. 머릿속에만 있으면 망각에 의해 증발한다. 목표를 세우고 언제까지 어떻게 달성하겠다는 메모를 일상화해라. 만약 그것이 삶의 루틴이 된다면 그 이후의 삶은 지금과는 많이 달라질 것이다."
이름도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강사님의 말씀은 당시 30대 초반이었던 내게 엄청난 교훈을 주었다. 그날 이후 지금까지 '적자생존'을 내 삶의 첫 번째 원칙으로 삼고 실천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기회가 있을 때마다 주변 사람들에게, 특히 후배들에게 '적자생존'의 중요성을 설파해왔다. "오늘 당장 아주 작은 것부터 적어 봐라. 그리고 자주 들여다봐라. 필요하면 수정하고 보완해라. 일 년 후쯤이면 제법 많이 달라진 삶을 몸소 느낄 수 있을 것이다."라고.
3. 우선 매년 마음속으로만 다짐했던 새해 목표를 작은 수첩에 적는 것부터 시작했다. 수첩에 기록하기 이전에는 불굴의 의지로 뭔가를 꼭 성취해낼 것 같던 새해 목표들이 연말이 되면 머릿속의 흐릿한 기억으로 흐지부지 되었다. 그렇게 흔적도 없이 사라져 갔던 멋진 목표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그런데 목표를 기록한 이후부터는 그야말로 빼박캔트의 증거물로 남아 있어서 연말이 되면 스스로 어떤 부분은 뿌듯함을, 어떤 부분은 부끄러움을 느끼기도 했다. 적는 순간부터 저절로 관리가 되기 시작한 것이다. 내 삶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적자생존'을 실천하기 위해 수첩을 이용했는데 스마트폰이 나온 이후에는 노트 앱을 사용했고, 그 이후2014년부터는 '에버노트' 앱을 지금까지 계속 쓰고 있다. 어느덧 에버노트는 세상을 양분하는 나만의 잣대가 됐다. 이 세상 사람들을 두 부류로 나눈다면 그것은 에버노트를 쓰는 사람과 쓰지 않는 사람이다.
5. '적자생존'의 실천에 있어서 꼭 한 가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작은 성공'이다. 옛말에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잘 먹는다고 했다. 한번 성공의 맛을 본 사람은 어떻게 하면 성공할 수 있는지를 알게 되고 점차 큰 성공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에는 작은 목표를 세우고 빨리 작은 성공을 거두는 것이 중요하다. "새해부터는 한 달에 1권씩 책을 읽겠다."는 작은 목표를 먼저 달성하고 2권, 3권씩으로 늘려가는 것이 올바른 방법이다. 일단 작은 성공을 거두고 나면 남 따라하기만 하는 '팔로우'가 아닌 '퍼스트 무버'로 삶이 바뀌게 된다. 이것이 삶이 달라지는 출발점이다. 꼭 기억하자! 작은 성공!
6. 언젠가부터 버킷 리스트를 적어 놓고 달성한 것을 하나씩 지워나가기 시작했다. 그중에는 당장 실천할 수 있는 것도 있고 퇴직 이후에나 실천 가능한 것도 있다. 또 어떤 것은 버킷 리스트를 적기 시작한 이후부터 수정 없이 줄곧 그대로 유지된 것도 있고, 어떤 것은 변심으로 인해 삭제된 것도 있고, 또 어떤 것은 몇 번의 수정을 통해 좀 더 구체적으로 보완된 것도 있다.
계속해서 수정, 보완하다 보면 리스트에서 탈락하지 않고 매번 살아남거나 지속적으로 재등장하는 것이 생긴다. 그런 항목들이 진정으로 내게 의미 있는 것이고 죽기 전에 꼭 해야 할 일이다. 내 버킷 리스트는 한 번뿐인 인생에서 정말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찾기 위해 매일매일 머리와 가슴 사이 30cm를 오가는 여행의 산물이다. 그리고 수시로 수정하고 보완하고 있는 현재 진행형 기록이다.
현재 내 버킷 리스트에는 책 쓰기, 100명의 지인에게 초상화 선물하기, 코리아 둘레길 완주하기, 산티아고 성지 순례하기, 해외에서 한국어 교사로 활동하기 등이 등재되어 있다.
나의 버킷 리스트
7. 문화심리학자인 김정운 교수는 "후회는 ‘한 일에 대한 후회’와 ‘하지 않은 일에 대한 후회’로 구분해야 한다. ‘한 일에 대한 후회’는 오래가지 않는다. 이미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그 결과가 잘못되었더라도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고 얼마든지 정당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지 않은 일에 대한 후회’는 쉽게 정당화되지 않는다. ‘한 일에 대한 후회’는 내가 한 행동, 그 단 한 가지 변인만 생각하면 되지만, ‘하지 않은 일에 대한 후회’는 그 일을 했다면 일어날 수 있는 변인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죽을 때까지 후회할 수 있다"라고 말한다.
후회할 일은 만들고 싶은 사람은 없다.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 수만 있다면 좋겠지만 그런 삶은 지극히 드물다. 후회를 덜 남기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최선이라 생각한다. 한 번뿐인 인생에 후회를 덜 남기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방법은 여건이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들을 최대한 다 해보는 것이다. 버킷리스트를 작성하고, 하나씩 달성하고 지워나가 보자.
8. 인생에서 성취감을 얻지 못하고 결핍을 느끼는 이유는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결정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느냐'는 나중의 문제다. 중요한 것은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아는 것이다.
솔직히 100세 시대의 중간지점인 오십이라는 나이는 이미 성공과 실패가 어느 정도 결정되어 버린 시기다. 큰돈을 벌겠다고 아등바등하기보다는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그 대가로 돈을 벌 수 있으면 다행이라고 마음먹는 편이 의욕도 생기고 정신건강에도 훨씬 도움이 된다.
지난 50년은 생계유지, 자녀 양육 등 어쩔 수 없이 주어진 책임과 의무에 떠밀려 산 시간이 많았지만, 나머지 50년은 남이 내게 바라는 게 아닌,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내가 원하는 내 인생을 살자. 그렇게 마음먹었다면 우선 그 첫걸음으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내 손으로 한번 적어 보자. 지금 바로.
*** 독자의 의견을 미리 듣고 반영한 책을 써보고 싶습니다. 공감의 댓글 또는 저와 다른 견해를 달아주시면 실제 책 발간 때 꼭 포함토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