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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성필 Oct 24. 2018

논산 훈련소와 어머니의 편지

아이들과 나누고픈 내 부모님과의 추억 - Episode 6

대한민국 국적의 남자라면 누구나 국방의 의무가 있고, 병역 면제자가 아니라면 꼭 한 번은 군대에 다녀와야 한다. 나는 22살 가을에 입대했다. 가능하면 빨리 입대를 하고 싶었는데 마침 군 수송병을 모집하는 기회가 있어서 얼른 지원을 해버렸다. 운전 면허증을 가진 것이 나름 기술 병과로 분류되어 전방으로 입소하지 않고 논산 훈련소로 가게 되었다.

    

사실 입영 통지서를 받을 때만 하더라도 아직 한 달 여의 시간이 남은 탓인지 그다지 실감이 나진 않았다. 그런데 입대하기 바로 전날 머리를 짧게 자르고 나니 나중에 어떻게든 해결될 것이란 심정으로 질렀던 카드 결제 청구서가 날아온 것처럼 현실감이 한꺼번에 확 느껴졌다. 


그날 저녁 아버지께서는 수십 년 전이긴 하지만 본인의 군 생활 경험을 바탕으로 몇 가지 당부 말씀을 하셨다. 그중에서 아직까지 기억에 남아있는 한 가지는 "군에서는 상사의 명령에 따르는 것이 최우선이다. 네가 생각하는 것과 다소 다르더라도 참고 따라야 한다"는 말씀이셨다. 이 말씀이 무슨 뜻인지를 알기까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고, 군 생활 동안 다소 부조리한 상황과 맞닥뜨릴 때마다 아버지의 말씀을 곱씹으며 비교적(?) 무사히 잘 넘길 수 있었다. 


입대하는 날 눈물 나게 고맙게도 친구 1명과 후배 2명이 기차 타고 바람 쐰다는 구실로 논산 훈련소까지 같이 와 주었다. 그들과 작별한 후 훈련소 입소대대에서 군복과 군화 등 개인물품을 지급받고 입고 갔던 사복을 군복으로 갈아입고 나니 비록 수 초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앞으로 30개월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막막한 감정이 폭풍처럼 밀려들었다. 입고 갔던 사복은 집에 소포로 보내졌는데 수개월 후 첫 휴가를 나와서 들으니깐 어머니께서 그 소포를 받고서 많이 우셨다고 한다. 내가 어디 전쟁터에 나간 것도 아닌데 자식을 군에 보낸 이 세상 모든 어머니의 마음은 그렇지 않은가 보다.    


입대할 당시 30개월은 긴 시간이라며 사귀던 여자 친구에게 기다리지 말라는 생뚱맞은 이별 통보를 날렸던지라 마땅한 위문편지조차 올 곳이 없었다. 그래서 매주 한 통 이상 보내주시는 어머니의 편지가 큰 위안거리였고, 춥고 고달픈 훈련소 생활을 버틸 수 있게 만들어준 힘이 되었다. 


어김없이 "사랑하는 아들아~"로 시작되는 편지에서 어머니께선 마치 일기를 쓰시듯 일상적인 일들에 대한 이야기를 편하게 전해 주셨고 그런 소소한 이야기들이 나에겐 따스함, 그리움, 가족의 소중함 등 훈련소 생활 동안 잠시 잊고 지낼 수밖에 없었던 감정들을 떠 올리게 해 주었다. 물론 그 편지들은 지금도 잘 보관하고 있다. 

동봉해서 보내주신 가족사진은 훈련소 생활 내내 늘 내 군복 상의 왼쪽 주머니에 마치 호신구처럼 자리 잡고 있었다. 


둘째 지훈이가 조만간 군에 입대할 날이 올 것이다. 이런저런 소식통을 통해 들으면 내가 군 생활할 때와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많은 변화와 개선이 있었다. 사병 급여도 엄청나게 올랐고, 내무반을 동기들끼리 쓰고, 복무기간도 18개월로 단축되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군은 군이요, 자식을 군에 보낸 부모의 마음은 애타는 마음이다. 당사자가 되어보지 않고선 절대 모른다.    

 

아직은 전혀 계획도 없고 현실감도 없지만, 내 아버지께서 나에게 해주신 조언과 내 어머니께서 내게 보내주신 편지들처럼 나도 지훈이에게 할 수 있을까? 아버지 시대의 군 생활과 내가 군 생활을 하던 시대의 상황이 많이 틀리고, 또 지금 시대의 군 생활과는 엄청나게 다를 것이지만, 적어도 군 문제에 있어서는 군 생활을 하는 당사자와 더불어 그 자식을 둔 부모의 마음이 예나 지금이나 같을 것이다. 자식을 군에 보낸 대한민국 모든 부모님들 파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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