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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성필 Oct 29. 2018

부모님과 함께한 팔공산 갓바위와 순두부

아이들과 나누고픈 내 부모님과의 추억 - Episode 10

일요일 새벽 4시 30분. "일어나서 준비해라".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시절까지 자주 들을 수 있었던 아버지의 목소리였다. 그 시절 일요일 아침에 자주 부모님과 함께 팔공산 갓바위에 올랐다. 집에 차가 없던 시절이라 이른 아침에 버스를 타고 - 간혹 택시를 타기도 했지만 - 갓바위까지 40~50여 분 이동해서 등산을 했다. 마침 집 근처에 갓바위까지 한 번에 가는 버스가 있어서 편하게 이동할 수 있었다. 버스 정류장에 내리면 바로 산행을 시작할 수 있는데, 등산로 대부분이 흙과 나무로 다져진 계단 형태로 되어 있어서 비교적 수월한 산행이었다. 혹자는 계단 형태가 더 힘들고 불편하다고도 한다. 정상까지 올라가는 데 소요되는 시간은 사람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대략 한 시간 남짓 걸렸고 내려오는 시간은 그 절반이면 충분했다.


마지막 걸음을 내딛고 정상에 올라서면 앞쪽으로는 탁 터진 시야에 맑고 높은 하늘이 눈에 들어오고, 뒤쪽으로는 갓을 쓴 큰 부처님 형상의 석상이 자리 잡고 있다. 팔공산은 원래 '공산'이라고 불렀는데, 신숭겸을 포함한 고려의 개국공신 8명을 기리기 위해 '팔공산(八公山)'이라고 고쳐 불렀다고 한다. 해발 850m의 '갓바위'는 바로 그 팔공산의 봉우리 중 하나인 '관봉(冠峰)'에 조성된 원각상(圓刻像)이다. 


갓바위를 바라보며 정성 들여 기도하면 한 사람에 하나씩 소원을 들어준다는 이야기에 전국 각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다. 특히 매년 입시철이 되면 수험생을 둔 부모님들이 찾아와서 정성을 다해 합격 기원 기도를 드리는 장면이 방송 뉴스를 통해 소개된다. 갓바위 앞 쪽의 공간이 입추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기도를 드리는 학부모님들로 채워진 영상을 한 번씩은 다 보셨을 것이다.



으레 이름난 등산 코스가 있으면 그 길을 따라 등산객이 찾을 만한 음식점들이 즐비하다. 특히 갓바위로 올라가는 등산로엔 버스 정류장 인근에서 시작해서 꽤 높은 지점에 도달할 때까지 두부를 파는 음식점들이 마치 줄을 서듯 연이어 늘어서 있다. 내가 부모님과 함께 갓바위를 자주 찾은 이유 중 하나는 한 시간 남짓 가쁜 숨을 몰아쉬며 올라간 뒤에 정상에서 바라보는 가슴 벅찬 일출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산행 후 들린 음식점에서 맛보는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순두부 맛 때문이었다. 


짭짜름한 양념장을 곁들여 후후 불면서 숟가락으로 떠먹는 순두부 맛은 어느 산해진미와도 견줄 수 없을 정도다. 그 순간만큼은 내가 순두부고, 순두부가 곧 나였다. 그리고 식당에서 함께 파는 콩비지도 결코 잊을 수 없는 맛이다. 그 어떤 조미료나 첨가된 재료 없이 원 재료의 맛을 그대로 살린 순두부와 콩비지의 맛은 정말 일품이었고, 중고등학교 시절엔 돌도 씹어서 소화시킬 수 있는 때였으니 성인 두 사람 분은 족히 먹었던 것 같다. 내가 그렇게 맛있게 잘 먹었던 인상이 오래 남아서인지 요즘도 고향 집에 가면 어머니께서 순두부와 콩비지를 자주 밥상에 차려 주신다.     


집사람과 결혼하기 전에 대구에 내려왔다가 짬이 나서 같이 갓바위를 찾았던 적이 있다. 예전의 그 순두부와 콩비지가 생각나서였다. 버스를 타고 갓바위까지 가서 정상까진 오르지 않고 중간 정도 지점에 있는 음식점에서 순두부에 막걸리를 마시고, 콩비지에 공깃밥 한 그릇까지 잘 먹었던 게 기억이 난다. 


결혼 후 집사람이 내 어머니만큼의 맛과 솜씨는 아니지만 그래도 꽤나 맛있게 된장찌개, 두부조림, 콩비지 같은 것을 자주 밥상에 올린다. 지금은 세월의 훈장에다 20년 차 주부의 관록이 붙어서 나름의 맛 세계를 구축했다. 내 아이들을 보면 참 신기한 것이 인스턴트와 패스트푸드에만 익숙해져 있을 것 같은데도 슬로 푸드인 순두부와 된장찌개도 곧잘 즐겨 먹는다. 그러고 보면 식성이라는 게 타고난 것이라기보다는 길러진다는 게 맞는 말인 것 같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학생 때는 미처 먹을 수 없었던 이것저것 다양한 음식을 맛보았지만, 그 와중에도 아주 가끔씩은 갓바위의 순두부가 생각날 때가 있다. 순두부라면 서울에도 맛있게 하는 음식점들이 꽤 있다. 하지만 내가 기억하는, 내가 추억하는 순두부는 부모님과 같이 이른 아침의 산행을 마치고 먹는 음식 이상의 무엇인가가 깃들어 있는 것이기에 특별함이 있다. 마지막으로 갓바위에 오른 지가 벌써 20년이 넘었다. 기회가 되는대로 다시 한번 올라가 보고 싶다. 순두부 집은 그대로이고, 그때 그 맛은 그대로인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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