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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성필 Dec 17. 2018

부모님을 위해 처음 끓여본 된장찌개

아이들과 나누고픈 내 부모님과의 추억 - Episode 25

독실한 불교 신자이신 어머니께서는 지금까지도 해마다 '방생(放生)'을 다니신다. 방생은 살생(殺生)과 반대되는 개념이다. 살생을 금하는 것이 소극적인 선행이라면, 방생하는 것은 적극적으로 선(善)을 행하는 일로 권장되는 데서 비롯된 것인데 다른 사람들이 잡은 물고기나 짐승들을 사서 강이나 산에 놓아 살려 주는 일을 말한다. 어릴 때 나도 몇 번 어머니를 따라 방생을 가서 물고기를 강에 놓아주기도 했다.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어머니께서 다니시던 절에서 신도 분들과 함께 '방생'을 가셨다가 차가 고장이 나서 저녁 시간을 훨씬 지나 귀가하신 적이 있었다. 그날따라 아버지께선 야근이 있으셨는지 저녁 시간이 지났는데도 들어오지 않으셨고 당시엔 휴대폰은커녕 시외전화도 하기 힘든 시절이었으니 배는 몹시 고픈데 어머니와 연락이 닿지 않아 애가 다. 처음에는 라면을 끓여 먹으려다가 문득 귀가가 늦으시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위해 저녁밥상을 차려보자며 여동생들과 의기투합했다.


우선 밥을 짓기 위해 쌀을 씻어서 안치기로 했는데 물의 양을 어느 정도 해야 하는지 난감했다. 그때 여동생이 어머니가 보통 밥솥에 손을 담갔을 때 손목을 덮을 정도까지만 물을 부으면 된다고 하신 말씀을 여러 번 들었다고 했다. 팩트 체크가 필요한 상황이었지만 인터넷도 없고 요리책도 없던 시절이라 일단은 여동생의 말을 믿고 따를 수밖에 없었다. 맑은 물이 나올 때까지 쌀을 씻은 후에 적당한 양의 물을 부어서 일단은 쌀을 안쳤다.


다음으로 반찬거리가 무엇이 있는지 냉장고를 뒤져보니 일단은 김치와 멸치볶음이 있었다. 마침 적당한 국거리도 없었을뿐더러 나와 여동생은 국을 끓이는 방법을 알지 못하니 기본 반찬에 더해 평소에 어머니께서 자주 끓여주시는 된장찌개를 만들어 보기로 했다. 어머니께서 만들어 주신 것을 맛있게 먹기만 했지 한 번도 만들어 보질 않았으니 찌개 안에 들어갈 재료가 무엇인지 생각이 잘 나지 않았다. 일단은 부엌에 있는 감자와 호박을 나름 잘게 썰어서 넣었고, 그다음으로 부엌 구석에 있는 된장 항아리에서 된장을 몇 숟가락 퍼서 냄비에 넣고 끓였다.     


골프를 치는 사람이면 '온탕 냉탕'이라는 용어의 뜻을 잘 아실 것이다. 나와 여동생이 끓이는 된장찌개가 그랬다. 너무 짜서 물을 부으면 싱거워지고, 간을 맞추려고 잘 알지도 못하면서 국간장을 부었다가 너무 짜서 또 물을 붓는 식이었다. 처음엔 조그만 냄비로 시작한 된장찌개가 이제 우리 집에서 제일 큰 냄비로 옮겨 탔다.


찌개에 들어간 물의 양이 늘어남에 따라 감자와 호박도 추가로 더 투입되는 등 시나브로 우리 집 부엌은 된장과 간장 끓이는 냄새로 가득했다. 이미 싱크대 위에는 거의 모든 종류의 냄비가 다 나와서 뒹굴고 있었고, 그 와중에도 찌개의 맛과 간을 맞추지 못한 우리들은 발을 동동 구르며 점점 얼굴이 상기되어 갔다. 참으로 눈치 없게도 뱃속에서는 꼬르륵하는 소리가 주기적으로 울리기 시작했다. 사면초가였다.


그때 초인종이 울렸고 저녁 8시가 넘은 시각에 어머니가 집에 도착하셨다. 어머니는 부엌에 들어서시는 순간 난장판이 된 상황을 보시고 몹시 놀라셨지만 이내 우리의 속마음을 이해하시고는 함박웃음을 지으셨다. 어머니의 손길이 닿자마자 된장찌개는 정상적인 맛으로 돌아왔고, 우리들이 끓여 놓은 한 솥 가득한 된장찌개 덕(?)에 그 후로 몇 끼니를 계속 된장찌개가 등장하는 밥상을 마주하게 된 웃지 못할 일이 이어졌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내가 만들어 본 요리는 라면을 제외하고는 김치볶음밥이 전부다. 국이나 찌개류는 아예 시도조차 해보지 않았다. 그나마 김치볶음밥도 대학교 다닐 때 자취를 하면서 익힌 것이다. 한 우물만 파서 그런지 김치볶음밥 하나는 꽤 맛있게 만든다. 물론 다른 사람들에게 대접한 경험은 없다.


이 세상 모든 자식들이 그러하듯이 어머니표 된장찌개와 김치가 제일 맛있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 나와도 그것 두 가지만큼은 절대로 대체 불가라고 생각한다. 집사람도 요리를 잘하는 편이지만 김치와 된장찌개에 있어서는 내 어머니의 적수(?)가 못 된다.


명절 때는 물론이고 가끔 대구 출장길에 부모님 댁에 들리면 어김없이 된장찌개가 밥상에 놓이는데 적어도 나에게는 다른 어떤 음식과 반찬보다도 맛있다. 비단 음식의 맛뿐만 아니라 어머니의 정성과 사랑, 그리고 나의 고향에 대한 향수와 어머니에 대한 마음이 된장찌개 속에 녹아져 들어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흔히들 말하는 '고향의 맛'이라는 것이 바로 그 맛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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