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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성필 Dec 16. 2018

맥주보단 소주. 이것도 유전인가요?

아이들과 나누고픈 내 부모님과의 추억 - Episode 24

오래전에 어느 가족 모임 자리에서 아버지께서는 술을 알코올 도수의 높고 낮음이 아닌 양을 기준으로 취하신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래서 맥주보다는 소주를 선호하신다고. 술을 양으로 취하신다는 말씀은 소주 2병을 마신 효과와 맥주 2병을 마신 효과의 차이가 그리 크지 않다는 뜻이다.


소주와 맥주의 알코올 도수는 평균적으로 따져도 예전에는 15도 이상, 지금도 10도가 훨씬 넘게 차이가 나는데 무슨 소리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나도 소주와 맥주의 알코올 도수 차이에서 비롯되는 효과를 실질적인 차이보다 훨씬 적게 느끼는 편이다. 아마도 아버지의 DNA를 물려받은 탓인가 보다.


그래서 양이 많아 배도 부르고 취기도 빨리 오르는 맥주를 즐겨 마시지 않는다. 그렇다고 맥주를 안 마시는 것은 아니다. 십수 년 전 대유행이 시작되어 지금까지도 직장인들 사이에서 술 문화의 대명사로 자리 잡고 있는 소주와 맥주를 섞은 '소폭'의 성분인 맥주는 안 마시려고 해도 안 마실 수가 없다. 꼭 맥주를 마셔야 하는 자리에선 그나마 크래프트 맥주를 즐긴다.          


실제로 나는 소주를 좋아한다. 거기엔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가격이 저렴해서 술 한 잔 하고 기분 전환하는 데 소요되는 가성비가 좋다. 둘째 어느 정도가 나의 주량인지를 정확히 알고 있어서 마시는 양과 속도의 조절이 가능하다. 물론 가끔씩 몹시 기쁘거나 슬플 때는 브레이크가 고장 난 폭주 기관차가 되는 날도 있다. 셋째 여러 가지 맛난 음식들과 두루두루 궁합이 잘 맞아서 좋다. 특히 감칠맛 나는 제철 횟감과 함께하는 소주는 그야말로 압권이다. 그 외에도 술자리에서 맥주에 비해 화장실을 덜 가서 좋고, 요즘은 소주의 도수가 17도까지 낮아져서 많이 순해지긴 했지만 한 잔을 입안에 톡 털어 넣었을 때 자동으로 내뿜어져 나오는 캬~ 소리가 좋다.


고등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 친구의 외갓집에 놀러 갔다가 동네 삼촌들의 강권(?)에 못 이겨 마셔본 것이 소주에 대한 첫 기억이다. 당시만 해도 소주의 알코올 도수는 25도였고, 시골 삼촌들이 스테인리스 밥그릇에 따라주시는 소주를 멋모르고 꿀꺽 넘겼다가 식도에 불이 나는 줄 알았다. 도대체 이 쓰고 맛없는 것을 왜 마시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 됐다. 그랬다가 고등학교 2학년, 3학년 친구들과는 가끔씩 중간고사나 기말고사가 끝난 날 학교 아래 시장에서 떡볶이, 순대 등을 안주로 막걸리나 소주를 마시곤 했다. 나름 입시 공부로 받은 스트레스 해소 차원에서였는데 즐거웠던 추억으로 남아 있다.  


내가 대입 학력고사를 치른 날 아버지께서는 입시를 치르느라 하룻밤 신세를 진 서울 작은 아버지 댁에서 저녁상을 물리시고 작은 아버지와 소주잔을 기울이셨다. 자식이 처음 치르는 대학 입시 때문에 속이 타셨나 보다. 그러면서 나에게도 그동안 고생했다고 하시면서 소주를 한 잔 따라 주셨는데 나는 마치 소주를 처음 마시는 척 연기를 했던 기억이 난다. 물론 아버지께서는 이미 내가 고등학교 친구들과 술을 조금씩 마시고 다녔다는 것을 다 아시고 계셨을 테지만 그날이 아버지와 소주잔을 나눈 첫 번 째였다.


명절 때가 되면 우리 사남매가 부모님 댁에 모여서 저녁을 먹는데 아버지와 나, 그리고 세 명 매제들이 함께하는 밥상엔 늘 술이 빠질 수가 없다. 명절이다 보니 아무래도 법주나 어머니께서 손수 담그신 과실주를 자주 마셨다. 내가 늘 술자리 분위기를 주도하는 편인데 너무 많이 마신다고 어머니의 잔소리를 듣는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아들과 사위들과 같이 즐겁게 술을 마시고 얘기도 나누고 하셨는데 최근에는 팔순을 지난 아버지께서 술을 거의 하시지 않아서 아쉽다.


성년이 된 딸내미는 가끔 친구들을 만나면 술을 마시고 들어오는 날이 있다. 몇 달 전에 아파트 현관문이 열리는데 돌아보니 한 손에 캔 맥주를 들고 들어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서 그게 뭐냐고 물었다. 친구들과 생맥주 몇 잔씩 하고 헤어졌는데 자기는 술이 좀 부족해서 편의점에서 캔 맥주를 하나 사서 오는 길이란다. 선대의 부전자전에 이어 후대의 부전여전이 이어지고 있음을 강하게 느꼈다. 정말이지 피는 못 속이나 보다. 둘째 지훈이가 술에 관해 또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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