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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성필 Dec 09. 2018

산타클로스와 크리스마스 선물의 진실

아이들과 나누고픈 내 부모님과의 추억 - Episode 23

산타클로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은 첫 기억은 일곱 살 유치원 시절이다. 이전까진 크리스마스가 무엇인지도 잘 몰랐던 것 같다. 나는 교회 부속으로 설립된 유치원을 다녔는데 크리스마스를 앞둔 어느 날 원장 선생님이 전 원생들을 강당으로 다 모이게 하셨다. 그리고 갑자기 산타클로스가 등장했다.


사슴이 끄는 썰매를 타고 나타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나름 산타의 복장을 다 갖추고 큼지막한 빨간색 선물 자루를 끌면서 우리 앞에 극적으로 나타났다. 유치원 수업시간에 배운 대로 산타의 존재를 철석같이 믿었던 우리들은 환호성을 질렀고, 산타 할아버지는 우리들의 이름을 한 명씩 차례로 불러서 앞으로 나오게 하고는 자루 속에서 같은 이름이 쓰인 선물을 찾아 손수 건네주셨다.    


마침내 내 이름이 불러져서 앞으로 나가자 산타 할아버지는 무슨 선물을 받고 싶으냐고 내게 질문을 했다. 내가 뭐라고 답했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지만 내가 받은 선물은 검은색 점퍼였다. 그 점퍼의 사이즈가 커서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까지 입고 다녔던 터라 분명히 기억이 난다. 그 시절에는 쑥쑥 자라는 아이들의 옷값을 감당하기 어려워 바지도 큰 것을 사서 단을 접어 입었고 점퍼도 소매를 접어 입을 정도로 큰 사이즈를 사서 입었다. 아무튼 꽤나 괜찮아 보이는 점퍼였는데 나는 금방 시무룩한 감정에 빠졌다. 다른 친구들이 선물로 받은 각종 장난감이 더 좋아 보였기 때문이다.


내 표정을 읽으신 유치원 선생님들은 내가 받은 선물이 친구들 것보다 훨씬 좋은 것이라고 나에게 설득과 위로의 말을 전했지만 내 기분은 쉽게 풀어지지 않았다. 나는 장난감이 훨씬 더 좋은데 왜 원하지도 않은 옷을 선물하셨는지 산타 할아버지가 야속하기만 했다. 내 인생에 있어서 크리스마스 선물과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매년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나는 어머니의 지원을 받아서 동생들과 같이 거실에 크리스마스트리를 꾸몄다.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트리에 별도 달고, 반짝이 색종이도 오려서 붙이고, 전등도 달고, 하얀 솜까지 장식했다. 그 당시 나와 동생들은 해마다 이번에는 꼭 산타 할아버지가 오시는 것을 지켜보겠다며 밤늦게까지 거실에서 TV를 보면서 버텨봤지만 결국은 잠과의 승부에서 매번 패하는 바람에 단 한 번도 산타클로스의 실체를 확인하지 못했다.


부모님은 내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 산타클로스의 존재와 크리스마스 선물에 대한 진실을 알게 되기 전까지 매년 나와 동생들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준비하셨다. 그리고 크리스마스이브 날 우리가 잠든 밤늦게 크리스마스트리 밑에다 가져다 두셨다. 나와 동생들은 크리스마스 날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거실에 나와 보면 어김없이 각자가 받고 싶었던 크리스마스 선물이 놓여 있는 것을 보고 무척 신기해하면서 기뻐했다.          


당시 내가 크리스마스 때 받고 싶은 선물은 레고 블록 또는 플라모델이었고, 여동생들은 바비인형 시리즈였다. 나는 크리스마스 때뿐만 아니라 생일이나 어린이날에도 레고 블록이나 프라모델을 선물로 받기를 선호했는데 그렇게 몇 년을 모으니 양이 어마어마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아파트로 이사하면서 대부분 내다 버렸고 대학에 진학하면서 서울생활을 하는 동안 나머지도 어머니의 손에 의해 정리가 된 것 같다. 결혼 이후 취미생활로 프라모델 만들기를 잠깐 한 적이 있었는데 그리 길게 가진 못했다.    


나는 초등학교 5학년 즈음에 같은 반 친구들과 얘기를 나누다 산타클로스와 크리스마스 선물의 실체를 깨닫게 되었다. 내가 빨리 알게 된 편인지 늦은 편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리고 빨리 알게 되는 것이 좋은 일인지 아닌지도 잘 모르겠다.


아무튼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께 내가 알게 된 사실을 확인하고 나서 진실을 두세 살 터울의 동생들과도 공유했다. 솔직히 그때 내가 느낀 감정은 그저 무덤덤했다. 크리스마스 선물의 출처가 산타클로스든 부모님이든 나는 내가 원하던 선물만 받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에서다. 그리고 중학교에 진학한 이후에는 크리스마스를 핑계로 부모님께 별도의 용돈을 받았고 그 돈으로 또 레고 블록과 프라모델을 사 모았다.  

 


둘째 지훈이가 나를 닮아서인지 레고 블록을 무척 좋아한다. 생일, 어린이날, 크리스마스 선물을 모두 레고 블록 한 종류로 받기를 원하는 것도 나를 닮은 것 같다. 물론 그 또래 아이들이라면 대부분 레고 블록을 좋아하겠지만, 지훈이는 어릴 때부터 레고 디자이너가 꿈이라고 선언할 만큼 좋아하는 정도가 남달랐다.


특히 완제품을 사서 조립하는 수준에 그치지 않고 여러 종류의 부품을 사다가 직접 만드는 것을 즐겨했다. 그중에서도 피겨 만드는 것을 좋아해서 부품에 얼굴도 그려 넣고, 옷도 만들어 입히고, 지팡이나 채찍 같은 소품도 만들곤 한다. 가끔씩 동네 인근 아파트에서 벼룩시장이나 알뜰장터가 열리면 피겨를 가져다 팔기도 했다. 나는 기본적인 공부시간을 지키는 것을 전제로 지훈이가 좋아하는 것을 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고 있다.           


몇 해 전에 기회를 보다가 아이들에게 산타클로스의 존재에 대한 진실을 얘기하자 여진이는 금방 눈물을 터뜨렸다. 그야말로 멘털이 붕괴된 것 같은 표정이 한동안 지속됐다. 속으론 얘가 왜 이러나 하면서 웃음이 났지만 그랬다가는 큰일이 생길 것 같아서 잘 위로하고 달래줬다. 세 살 더 어린 지훈이는 무슨 일이 일어나 것인지 잘 몰라서 오히려 충격이 덜한 듯했는데 여진이의 경우엔 놀라움과 허탈함을 가라앉히는데 꽤 애를 먹었던 것 같다.  


산타클로스로부터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고 함박웃음을 짓던 경험을 뒤로하고 어느 날 갑자기 산타클로스와 크리스마스 선물의 진실을 알게 되는 과정 누구나 한 번은 일이고 어릴 때의 추억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아무리 기술이 발달하고 디지털화되어가는 세상이지만 지금도 이 세상 아이들의 부모인 누군가는 아이들을 위해 산타클로스 역할을 자처하고 매번 크리스마스 선물을 준비한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또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있다. 이번엔 또 무슨 선물을 준비해야 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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