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위대한 유산
by 양삘 YangFeel Dec 04. 2018

아버지의 열정이 담긴 난초 키우기  

아이들과 나누고픈 내 부모님과의 추억 - Episode 22


어릴 적 살던 동네 어귀에는 화초나 분재, 작은 묘목 따위를 키우면서 판매도 하는 꽃 화원 가게들이 있었다. 나는 초등학생이었던 시절부터 아버지와 같이 매년 봄마다 화초를 한 아름 사 가지고 와서 집 마당에 작은 화단을 만들곤 했다. 화단에 직접 심어 가꾸기도 했고, 일부는 화분에 심어서 키우기도 했다. 옮겨 심는 법과 흙 다지는 법, 물주는 법을 아버지께 꽤 자세하게 배웠다. 마당이 있는 연립주택에 사는 십여 년 동안 매년 그렇게 하다 보니 나름 취미생활 중 하나로 자리 잡게 되었다. 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그 취미생활은 현재까지도 이어져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 베란다에 많진 않지만 화초 몇 가지를 꽤 정성 들여 키우고 있다. 그중에 키우기 까다롭다는 난초도 있는데 벌써 3년째 꽃도 피고 촉도 늘었다.  


내가 중학생이었던 어느 날 아버지께서는 취미생활로 난초 키우기를 시작하셨다. 처음엔 한 자릿수였던 난초 화분이 점점 개수가 늘어났다. 당시만 하더라도 우리나라에서 출간된 난초 키우기에 관한 제대로 된 전문서적이 없어서였는지 아버지께서는 일본어로 된 난초 관련 잡지를 사서 보셨다. 게다가 일본어로 된 잡지를 보기 위해서 아침 일찍 교육방송에서 하는 일본어 교육을 들으시며 공부를 하셨다. 옆에서 지켜보던 나는 좋아하는 것을 제대로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이 그저 존경스러울 따름이었다. 정말이지 누구라도 그렇게 할 수 있지만, 아무나 그렇게 실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단한 열정이셨다.  


난초는 키우기가 쉽지 않은 식물이다. 물을 주기적으로 적당히 주어야 하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서 직사광선을 피해야 하는 등 손이 많이 간다. 한 마디로 정성이 없으면 난초를 키우기 어렵다. 어떤 난초는 화분을 관통시키듯 물을 주기도 하고, 어떤 것은 분무기로 수분만 보충하듯 물을 주기도 하고, 심지어 집에 있는 난초 중에 한 눈으로 봐도 멋스러운 자태를 뿜어내는 난초는 아버지께서 미술시간에 사용할 법한 붓 같은 것으로 물을 적셔 일일이 잎 하나하나를 닦아주기도 하셨다. 그 모습에 완전 질린 나는 절대로 난초를 키울 수도 없고 키우지도 않겠다는 다짐을 하기도 했다.


아버지는 난초 키우기에 관한 직간접적인 경험과 교류의 폭을 넓히기 위해 친목 모임인 '대구 난우회(蘭友會)'에 가입을 하셨고 정기적으로 산행을 가셔서는 야생 난과 야생초들을 채집해 오시기도 했다. 그리고는 작은 화분들을 구입해서 직접 옮겨 심으시고 정성스럽게 키우셨다. 어느새 집에는 난초와 야생초 화분이 꽤 많이 들어찼고 관리하는 데 상당한 시간과 정성을 요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마침내 아버지께서는 큰 결심을 하신 듯 연립주택의 마당 한가운데 4~5평 규모의 비닐하우스 온실을 만드시고 모든 난초와 야생초 화분을 온실을 옮기셨다. 온실은 습도와 바람을 조절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설비를 갖추었고 비록 규모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작지만 동네에 있는 웬만한 화원과 견주어도 크게 손색이 없었다. 솔직히 나는 처음에는 아버지께서 도대체 왜 이렇게 일을 크게 벌이실까란 생각도 들었지만, 온실이 완성되고 그 안에 여러 가지 설비가 갖춰지고, 난초를 비롯한 각양각색의 화분들이 가득 들어차자 흥분을 감추지 못했고 마치 내가 계획해서 진행한 일인 양 뿌듯함을 느꼈다.   


아버지께서는 몇 년 동안 열정을 쏟아 키운 난초를 지인분들께 선물하시기도 하고 난초 화원에 내다 파시기도 했다. 가계에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취미생활로 시작하신 것이 전문가 수준의 경지에까지 이르러 가계 수입에도 도움을 준다는 사실이 마냥 신기했다. 몇 년 후 아파트로 이사하게 되면서 온실과의 인연은 그리 오래가진 못했지만, 고등학교 친구들이 집에 놀러 왔을 때마다 그 온실을 매우 부러워했던 기억이 또렷하다.


아파트로 이사 온 후에도 베란다에 온실 수준은 아니지만 난초를 키울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서 아버지께선 꽤 오랜 기간 동안 난초 키우기를 벗 삼아 삶을 같이 하셨다. 참으로 좋은 취미생활을 선택해서 긴 세월 동안 유지하시는 모습을 보니 새삼 대단하시다는 생각과 함께 부러운 생각까지 든다.


과연 내게는 아버지처럼 긴 세월 동안 좋아하고 즐겨하는 취미생활이 있는지 언뜻 생각나지가 않는다. 그나마 손에 꼽으라면 등산과 독서, 영화 관람 정도가 아닐까 한다. 그리고 최근에 생긴 글쓰기까지. 사실 세상이 워낙 빠르게 변화하다 보니 볼거리, 먹거리, 할 거리가 너무 다양해지고 있어 굳이 한 가지 취미만을 오랜 세월 동안 유지할 이유도 없다. 이것저것 여려 경험을 해보고 즐기는 것도 절대 나쁘진 않은 것 같다. 다만, 가끔씩 삶이 나를 속일 때 그 취미생활을 통해 위안을 받고 새로운 용기를 얻을 수 있다면야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나는 평소에 아이들에게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을 하라고 틈날 때마다 얘기한다. 아버지 세대는 물론이고 내가 살아왔던 시대에는 직업과 취미생활이 따로 구분되어 있었다. 먹고 살 돈을 벌기위해 선택한 직업과 내가 좋아하고 하고 싶었던 일을 하는 취미생활이 엄격히 구분되던 시대였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 대개의 경우엔 대동소이했다. 그렇지만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시대는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일 것이다. 이제는 내가 좋아해서 취미생활로 한 일들로도 돈을 벌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좋아하는 것을 하다보면 즐기게 되고, 즐기다 보면 잘 하게 되고, 잘 하게 되면 돈도 벌 수 있다. 핵심은 내가 좋아하는 것의 발견과 그것에 투입되는 열정이다.

     



   



keyword
magazine 위대한 유산
소속 직업컨설턴트
살아 숨 쉬고 있다는 느낌을 찾기 위해 글쓰기를 시작했습니다. 한번 뿐인 인생. 내 운명의 지배자는 나! 하고 싶은 것 하면서 삽시다!
댓글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