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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성필 Dec 18. 2018

어릴 적 동네 목욕탕과 야쿠르트

아이들과 나누고픈 내 부모님과의 추억 - Episode 26

가족과 떨어져 외가에서 더부살이를 할 때 외할아버지 손에 이끌려 외가 바로 옆에 위치한 대중목욕탕을 다니곤 했다. 한 동네 사는 사이를 넘어 바로 이웃집에 사는 목욕탕 주인아저씨는 목욕탕 이용요금의 반만 내는 나에게 유독 잘 대해 주셨다. 자주 간 것은 아니지만 어떨 때는 요금을 안 받았던 것도 같다. 여섯 살 무렵의 기억이라 가물가물 하긴 하지만 아마도 부모님과 떨어져 외가에서 생활하는 내가 기특하면서도 못내 안쓰러워 보이셨나 보다.


목욕탕반대편 담을 맞대고 사는 이웃집에는 미숙이라는 이름을 가진 누나가 살고 있었다. 성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의 나이였을 텐데 외가에 얹혀사는 어린 나에게 늘 즐겁고 친절하게 잘 대해 주었다.


나는 거의 매일 오후가 되면 빠짐없이 그 집 대문 앞에 서서 큰 소리로 "미숙아, 놀~자"를 외쳐댔다. 그러면 어김없이 누나가 나와서 어린 나와 놀아주곤 했다. 'TV는 사랑을 싣고'와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해 그 누나가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찾아보고 싶기도 하다. 부모님과 떨어져 지내는 기간 동안 내게 너무나도 잘해 주었던 고마운 누나다.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는 돌아가실 때까지 계속 그 동네에 사셨는데 나는 한 번씩 외가에 놀러 갈 때마다 목욕탕 앞을 지나가면서 어릴 적 기억을 반추해보곤 했다. 그리고 중학생이었을 때 어느 날 그곳을 지나다 보니 목욕탕은 없어지고 다른 건물이 들어서 있었다. 아무리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고 하지만 왠지 모르게 내 소중한 억의 일부를 잃어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잠깐 슬픈 감정기도 했다.


아버지와 같이 정기적으로 대중목욕탕에 가기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때로 기억한다. 집에서 큰길을 하나 건너면 대중목욕탕이 있었는데 이름이 '문화 목욕탕'이었다. 내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기간 동안은 매주 일요일 아침에 한 번씩 아버지와 같이 목욕탕을 찾았다. 목욕탕에서 아버지는 내 등을 밀어주셨고 나는 아버지의 등을 밀어 드렸다. 그리고 목욕을 마치고 나올 때면 내 손에 어김없이 야쿠르트 하나를 들려주셨다. 더운물에 목욕을 하고 나서 뽀얀 느낌으로 마시는 야쿠르트는 정말 꿀맛이었다.


그러다가 내가 중학교를 다닐 때 즈음에 인근에 호 사우나가 생겼고 아버지와 나는 조금 더 비싼 이용료를 내긴 했지만 매주 일요일 아침 행선지를 그곳으로 바꿨다. 우선 목욕탕의 규모와 시설 자체가 동네의 대중목욕탕과는 비교가 되질 않았고, 사우나 실에서 땀을 쏙 빼고 나면 그렇게 개운할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호텔 사우나를 이용하면서도 바뀌지 않은 것은 목욕 후에 마시는 야쿠르트의 맛이었다.


한 번은 아버지께서 교통사고를 당하셔서 팔에 깁스를 하셨는데 목욕탕에 가면 내가 깁스한 부위 위로 비닐을 두르고 고무줄로 고정시켜서 물이 들어가지 않도록 해드렸다. 나도 입사 후 축구 동호회에서 축구시합을 하다가 팔을 다친 적이 있었는데 깁스 위에 비닐을 둘러주는 집사람을 바라보면서 어릴 적 아버지와 목욕탕에 얽힌 옛 추억을 잠시 떠올렸던 적이 있다.   


서울에서 아파트 생활을 한 이후로는 대중목욕탕을 간 기억이 많지 않다. 집에서 매일 샤워를 하고 가끔은 반신욕도 하니 굳이 목욕탕을 찾을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어릴 때 목욕탕에서의 기억이 몸에 배어 있는 탓인지 어쩌다 온천을 가게 되면 근심 걱정 다 내려놓고 탕 안에 누워있는 것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몸이 기억하고 반응하는 것이다.


요즘 아이들은 대중목욕탕 문화를 잘 모른다. 목욕 후 마시는 야쿠르트의 맛도 결코 모를 것이다. 아마도 아버지 손을 잡고 목욕탕을 다녔던 추억은 내 세대가 마지막인 것 같다. 세상은 변하고 있고, 우리도 그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분명 예전에 비해 무엇인가 허전한 부분이 있지만 그 부분은 목욕탕에 얽힌 추억이 아닌 다른 것으로 채울 수밖에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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