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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성필 Dec 25. 2018

아버지께 받은 세 번의 시계 선물

아이들과 나누고픈 내 부모님과의 추억 - Episode 27

초등학교 2학년 때 수학(산수) 수업시간에 시계 보는 법을 처음 배웠다. 요즘 아이들은 시계 보는 법을 언제 배우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초등학교 입학 전에 유치원을 다닐 때 배우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시계야말로 우리 주변의 많은 것들이 디지털화되어가는 세상에서 아날로그로 존재하는 가치가 오롯이 유효한 것 중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디지털 액정에 현재 시각이 아라비아 숫자로 표시되어 보이는 시계와 시침과 분침이 틱톡 소리를 내면서 어우러져 시간을 알려주는 아날로그시계는 비교할 바가 못 된다. 물론 영점 몇 초 단위의 정확한 시간 체크를 필요로 하는 분야에서는 디지털시계가 훨씬 더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 각각의 다른 쓰임에 따른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공존이다. 스마트폰 속의 구글 캘린더 앱과 사무실 책상 위 탁상달력이 공존하듯 말이다.     


아버지께서는 지금까지 내게 세 번의 시계 선물을 주셨다. 첫 번째는 초등학교 2학년 어린이날이었다. 내가 학교에서 시계 보는 법을 배웠다면서 어린이날 선물로 시계를 고집하자 딱 어린이들이 차고 다닐 만한 '미키마우스'가 그려져 있는 시계를 선물해 주셨다.


흰색 바탕에 미키마우스가 그려져 있고, 노란색과 검은색이 교차하는 시계 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은 마블코믹스, DC코믹스 등의 영향으로 아이언맨을 비롯한 여러 캐릭터들이 인기를 누리고 있지만 당시 어린이들에겐 미키마우스가 최고의 캐릭터 중 하나였다. 아버지께 받은 첫 번째 시계 선물이라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계속 차고 다녔다.    


두 번째 시계 선물은 중학교에 입학할 때였다. 이제부터는 공부하는 데 필요한 시간을 잘 관리하라는 말씀을 하시면서 디지털 액정의 '카시오' 시계를 선물해 주셨다. 1980년대 전자제품 강국인 일본에서 만든 제품답게 시계 디자인이 오밀조밀하면서도 예쁜 것이 내 맘에 쏙 들었다.


카시오 브랜드는 당시에 꽤나 좋은 시계였는데 선물로 받은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 친구들과 야구를 하다가 액정 부분을 깨트려 먹었다. 야구할 때 왜 시계를 차고 나갔을까 후회막심이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아버지께 사실대로 말씀드리고 시계 수리를 부탁드렸는데 액정 수리를 마치고 돌아온 시계는 더 이상 카시오 로고가 보이지 않는 다른 액정 디자인으로 바뀌어 있었다. 엄청 마음이 아팠다.    


세 번째이자 아버지께서 주신 마지막 시계 선물은 대학교 졸업 때이다. 당시 나는 졸업과 동시에 이어진 취업에 실패하고 소위 말하는 백수 처지가 되었는데 그래도 힘내서 좋은 직장을 구하길 바란다면서 아버지께서 해주신 선물이다.


백화점 시계 코너에서 나보고 직접 브랜드를 고르라고 하셔서 나는 '엘르'에서 제조한 메탈 시계를 골랐다. 다행히 대학 졸업 후 석 달 뒤에 취직을 하게 되었고 첫 출근길에 차고 갔던 시계도 바로 그 시계다. 그리고 그 시계는 결혼 전까지 내 왼쪽 손목을 덮어주며 나와 함께 했고, 지금은 예전에 쓰던 사물을 모아 둔 함지박에 잘 보관되어 있다.     


나는 시계에 대한 컬렉션 욕심이 있는 편이다. 십여 년 전부터 '타이맥스' 브랜드에서 제조한 다양한 디자인의 시계를 모으고 있다. 타이맥스 시계는 비교적 저렴한 가격이면서도 꽤나 세련된 디자인에 대중적인 친근함이 있어서 좋다. 나토밴드, 가죽 밴드, 우레탄 밴드 등 다양한 밴드 스트랩뿐만 아니라 여러 종류의 컬러와 디자인을 소장하고 있다.


둘째 지훈이가 중학생,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내가 가지고 있던 시계들 중에서 그 나이에 어울릴 법한 것들을 선물로 주었더니 좋아하면서 받았다. 선물이 지닌 의미가 늘 그렇듯 받는 사람이 좋아하면 주는 사람의 기분도 한껏 기쁘기 마련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시계를 선물로 주고받는 것은 왠지 모를 특별함이 있는 것 같다. 마치 함께 했던 시간에 대한 추억과 그리고 앞으로 함께 할 시간에 대한 기대와 약속을 선물하는 의미를 담고 있는 듯 말이다.      


지금까지 살면서 아버지께 시계 선물만 받은 것은 아니지만, 다른 선물들에 비해 유독 기억에 강하게 남아 있는 이유는 졸업과 입학 등 나름 내 삶의 중요한 모멘텀과 함께한 선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작 나는 아버지께 단 한 번도 시계를 선물로 해드린 적이 없다. 비단 시계만이 아니라 다른 선물도 변변하게 해 드린 기억이 잘 나질 않는다.


아무리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곤 하지만, 내가 남달리 효도를 실천한 것도 아닌데 정성을 담은 선물 하나 제대로 못 해 드린 것이 마음에 걸린다. 돌아오는 아버지 생신 때에는 기억에 남을 만한, 아니 아버지께서 기뻐하실 만한 의미가 담긴 선물을 준비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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